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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룹이 되어

by 변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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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룹이 되어


변명희


“저어~ 거기요, 조심하세요. 위험해요.”

일행 중 한 남자가 뛰어오더니 내게 던진 말이다. 친구들과 장난하며 강변 둑길을 걷고 있었다. 물에 빠질 수 있으니 안쪽으로 걸으라는 것이었다. ‘무슨 간섭이람.’ 생각하면서도 꼬리를 내리고 조신하게 걸었다. 처음 만난 날부터 모종의 작정이라도 했던 것일까.

1983년 겨울 어느 날, 그는 공식적인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 얼마 후 외국에 나가 살면서부터는, 그 나라의 관습대로 내 이름 뒤에 그의 성(姓)을 붙여서 썼다. 고목에 붙은 매미처럼 심리적으로도 의존적 존재가 되는 것 같았다. 점차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지고 자신감도 떨어졌다. 언어소통의 어려움도 있는 데다, 빵 한 봉지 우유 한 팩의 찬거리나 옷가지를 살 때도 그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녀야 했다. 철저하고 섬세한 성격의 그는 내가 운전하는 것을 그냥 보고 있지 못했다. 어쩌다 내가 운전을 해도 쉬지 못하고 신경을 쓰니 점차 나는 운전석에 앉는 일이 뜸해졌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미국 중부에서 캐나다에 다녀올 때도 그는 지도를 외워서 혼자 운전했다. 하루는 16시간 가까이 운전하면서도, 맥도날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잠시 피로를 풀고는 다시 출발할 정도였다.

방향감각이 둔한 길치이다 보니 나는 여전히 동네 기사에 불과하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까지는 혼자 외출하면 그가 지도를 그려주며 설명을 곁들이고, 수시로 확인을 했다. 지금까지도 기차표든 비행기 표를 내가 구입해 본 적이 없다. 터미널에서도 공항에서도 그는 표를 사고, 나는 뒤만 따르면 되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는 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컴맹에다 기계치인 내게 해결사 역할은 당연하였다. 노심초사하는 그의 성격 탓에 완전 바보가 되었노라 불평도 하며 그럭저럭 살다가는, 얼마 전 느닷없는 태풍을 만났다.

그가 암 수술을 받게 되었다. 병원에서 주는 보호자 명패를 내가 목에 걸었다. 눕고 일어나는 그를 부축해주는 것이 낯설었다. 며칠 동안 간이 침상에서 잠을 자는 것도, 링거 줄을 매단 걸대를 끌며 걷는 그의 옆을 지키는 것도 사뭇 어색하기만 했다. 물이나 휴지를 찾는 그를 보조하는 것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고목에 붙은 매미지만, 이번에는 매미의 위세가 고목의 그것을 능가하는 형국이 되었다. 그러다 퇴원하는 날에는 원무과에서 정산은 그가 하고, 나는 보퉁이를 챙기며 서 있으니 역시 그편이 자연스러웠다. 제자리로 돌아온 풍경이었던 게다.

부산행 열차가 가을 벌판을 달리고 있다. 스륵스륵 지나는 황금색 조각 논들이 비단결이다. 2박 3일 일정의 업무상 여행을 계획하며 내게는 묻는 둥 마는 둥, 그이 혼자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무조건 함께 가자는 뜻으로 보였다. 뜻밖이었다. 가끔 동행하는 경우에는 먼저 내 의사를 묻고, 결정 장애를 가진 나는 이랬다저랬다 몇 번씩 번복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말을 꺼내기 무섭게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오래전 예정되었던 것처럼 자연스레 함께 길을 나섰다. 그의 속내를 묻지는 않았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수술하고 이제 겨우 3주밖에 안 됐다는 생각에.

멀리 두 줄기 레일이 태화강 남천을 휘돌아 간다. 자늑자늑 흔들리는 억새의 은빛 왈츠와 물비늘 반짝이는 강물이 평온한 배경이 된다. 문득 저렇게 나란히 동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무량한 방패막이가 되어주던 그를 대신해 때로는 내가 우산을 들고 함께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무탈하고 평범했던 일상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기적인가. 꿈에서도 다시 접하고 싶지 않은 지난 몇 달간의 악몽은 앞으로의 삶을 리셋하라는 신호인지 모른다. 일찍이 발견한 덕에 커다란 암초는 비켜섰지만, 그것은 나에게 순항의 깃대를 바로 잡으라는 바람이었지 싶다.

그런데 어쩌랴.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갑자기 앉은 자리가 버겁다. 수술을 받고 퇴원하던 날에도 마지못해 조수석에 앉아서는 “왼쪽, 왼쪽으로 붙는 게 좋아.”하며 미덥지 못한 나를 이끌어주지 않던가. 애초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가 선두 지휘하는 편이 나을 거란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습관처럼 오늘 역시 숙소도 교통편도 모른 채 그저 따라가고 있다. 지도와 일정표를 들여다보던 그가 안경을 콧등에 걸고는 자울자울 졸고 있다. 물에 빠지지 않게 조심하라고 큰소리치던 호기는 간데없고, 근육이 빠져나가 주름진 손등에는 핏줄이 튀어나왔다.

저 손으로 또 가방을 끌 것이고. 나는 언제나처럼 쫄랑쫄랑 따라갈 것이다. 마음만은 홍시 빛 슈룹1)이 되어.


1) 슈룹: 우산의 순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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