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 나를 담금질한 시간"

TBWA KOREA에서의 반 년

by 도드리

1. TBWA 주니어보드로서 보낸 약 6개월의 시간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월 2회 정기모임에 학사 일정에 지장을 받지 않고"라고는 했으나, 과제량이 대단했고 이래저래 거의 매주 TBWA에 가게 되었다.

조별 과제도 많았는데, 또 이 과제 때문에 동기들과도 매주 얼굴을 마주해야 했다.


그래도, 모든 게 설레고 신기하기만 했다.


지금은 자리에서 물러나신, TBWA 강철중 사장님의 강의 및 만남.

당시 우리나라 광고계를 주름 잡던 기라성 같은 광고 현역들과의 만남, 그리고 강의.

경치가 끝내줬던 휴게실 옆 테라스.

광고 선배들과 J타워 옥상에서 마시던 소주.

처음으로 가봤던 광고 편집실.

늦은 밤, 과제를 마치고 동기들과 한 잔 기울였던 가로수길의 술집들.

가로수길을 지나 강변까지, 광고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걷던 밤의 한강변.

윤성아 CD님께 과제를 보여드리기 위해 청일점의 압박을 견디며 들어갔던 이대 강의실.

박웅현 ECD님의 2달간의 수업, 그리고 함께 했던 잊지 못할 광란의 워크샵.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6개월이 지나갔다.



2. 지금은 모두 좋은 추억이지만 그 당시에는 불만도 많았다.


당시 SKT의 <생각대로 T> 캠페인 런칭 준비가 한창이었는데, 처음 광고주 OT를 받았을 무렵부터

우리에게도 과제가 나와 캠페인 아이디어에 참여해야 했다(이외에도 LG생활건강, 동아제약, 닛산 등 주요 광고주들의 과제를 함께 해나가야 했는데, 요구하는 과제 수준이 꽤 높다 보니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또, 영상 광고를 직접 촬영/편집하거나 광고 공모전에 응모하는 미션이 주어지기도 했다).


현업에 따라 과제를 받다 보니 시험 기간에도 과제 준비를 해야만 했다.

4학년이다 보니 학점에도 신경을 써야 하고, 시험 준비와 과제 준비를 동시에 하느라 밤을 여러 번 꼴딱 새기도 했다.

과제가 아니었다면, 시험 공부 때문에 밤을 새는 일은 없었을텐데..


또, 정기 모임 때 모임 시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먹을 것을 부실하게 주는 게 큰 불만이었다.

개인적으로,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니 일 때문에 밥을 제대로 못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사실은 그저 돼지일 뿐이고..)

항상 1인당 김밥 1줄씩만 저녁으로 주니 왠지 부아가 치밀었다(생각해보면 이게 제일 큰 불만이었던 듯).

참다 못해 다같이 김밥이 지겹다고 얘기했더니 샌드위치로 바꿔줘서 기뻐했던 기억도 난다(결국 그냥 순수한 돼지였었던 듯).



3. 그리고, 나는 법(how to fly)을 배웠다.


박웅현 ECD님(이하, 박CD님)이 수업은 약 2달간 이루어졌다.

주니어보드의 알토란 같은 main dish 같은 교육 과정이자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만한 화려한 마무리와 같은 것이었다.


첫 강의 때의 박CD님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별다른 말씀도 없이 등장하시자마자 회의실 앞쪽의 큰 화이트보드에 판서를 하기 시작하셨다.

광고, 더 나아가서는 모든 업무와 인생의 근간과 같은 이야기들, 아주 본질적인 것들이 가득 문자로 들어찼다.

(박CD님이 2달간 우리에게 설파하셨던 것들은 <책은 도끼다>를 비롯한 그 분의 저서에도 오롯이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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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들은 평소에 내가 갖고 있던 생각들과 너무나도 닮아 있어서

어줍잖은 자만심과 자존감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뭔가 대단한 이야기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내 생각이랑 다를 것도 없는데?'


거기에서 멈춰 버렸다면 난 더 이상 배운 것도 성장한 것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1주, 2주...수업이 계속되고 과제를 해나갈 수록 조금씩 변해갔다.


'창의력의 근간은 인문학적 토양이다'라는 지론은 박CD님이나 나나 같았지만

그것을 활용하는 법에 있어서는 그 분만의 체계성이라든지 노하우, 깊이 측면에서 남다른 포인트가 분명하게 있었다.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이나 방법에 있어 일간 닮아 있는 부분들도 있었는데,

깊은 공감 속에 더욱 선명하게 나만의 도구로 확고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광고 공부를 하지 않았다.


E.H. 카를 읽었고 곰브리치를 읽었다. 거울을 보며 자화상을 그렸다.

나는 '상대성 이론'을 공부하고 발표했다. 달라이 라마와 티벳 불교에서의 환생과 윤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은 스타워즈를 소개했고 아메리칸 어패럴을 소개했다. 그리고 서로 질문하고 공유하고 토론했다.


어느 새, 박CD님은 나의 롤모델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 분과 나 사이의 공통분모를 너무나도 많이 찾아냈다.

내가 광고쟁이가 된다면, 꼭 저런 모습일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인생 자체가 너무나 즐겁고 축복일 것만 같았다.


나는 비로소 나는 법을 배운 것 같았다.



4. 그리고...


반 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15명 중 2명의 친구가 수료하지 못했고, 1명의 친구는 정식 인턴이 되었다.

나는 시간을 간신히 쪼개서 다른 회사의 정식 인턴 과정을 동시에 해냈고, 둘 다 무사히 수료했다. 운이 좋았다.


CW였던 5명의 친구들 중 3명은 진짜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가 되었고 1명은 AE가 되었다. 그리고 남은 1명은 광고쟁이가 되지 못했다.

정식 인턴을 했던 친구는 광고 회사에 가지 않았다. AE였던 친구 5명은 아무도 광고회사에 가지 않았다.

AD였던 친구 5명 중 2명은 진짜 광고회사의 아트 디자이너가 되었고 나머지 3명은 다른 회사 혹은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되었다.


우리는 우리들 중 누군가의 결혼식 때마다 만났고 그 외에는 아주 가끔씩 만난다.

다들 너무나 바쁘게 살고 있다. 아마도 내가 가장 바쁘지 않은 것 같다.


진짜 광고쟁이들이 된 친구들은 TBWA에서 우리에게 배움을 주었던 분들과 이래저래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듯하다.

나는 몇 년간 박CD님께 1년에 한 번 정도 안부 연락을 드렸고 정말 우연찮게 몇 번 신사동 언저리에서 뵈었다.

그렇게 몇 년간 짧은 인사와 안부를 주고 받다가 그마저도 박CD님이 책을 몇 권 내고 '더' 유명해져서 여기저기 출강을 다니기 시작할 때쯤부터 그만 두었다. 그 분의 안부는 내가 잘 알 수 있으니 여쭈지 않아도 될 것이고, CD님은 내 안부를 궁금해하지 않으실 것 같아서였다.


얼마 전엔가 우리 회사에도 강연을 오셨었는데, 그 때도 가지 않았다.

'더는 배울 것이 없어서'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롤모델이 더 이상 롤모델이 될 수 없게 된, 현실에 남겨진 패배자'같은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다.



끝내 광고쟁이가 되지 못한 최후의 1명.



그게 바로 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고 이야기'는 6편에서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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