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WA KOREA에서의 반 년
1. 광고대행사에서는 실제로 어떻게 일을 할까?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할까?
직접 광고대행사에 들어가서 경험해보고 싶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수업까지 빼먹으면서 대홍기획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은 있었지만,
3일 짜리 단기 알바에서 훔쳐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당시에 광고대행사에 입사하지 않고 대학생의 신분으로 대행사를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제일기획, 이노션 등 대형 종합광고대행사에서 간간이 뽑는 인턴쉽에 지원하여 합격하는 방법 정도였는데
광고주의 자제가 아니고서는 화려한 수상 경력과 스펙 없이는 뽑히기 힘들었다. 게다가, 뽑는 인원도 매우 적었다.
이 외에도 한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바로 TBWA KOREA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TBWA Junior Board"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인턴쉽 프로그램과는 달리 '배움의 장'을 열어 "광고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자"는 것이 목적이었던만큼
요새는 흔하게들 하고 있는 '대학생 기업 참여 프로그램'의 느낌도 꽤 있었던 프로그램이었다.
문제는 이 'TBWA 주니어보드'도 경쟁률이 엄청나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단 것이었다.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서 뽑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광고쟁이를 꿈꾸는 무수한 공모전 수상자들과 광고 동아리 출신들, 광고학과 출신들에 밀려 나는 3번이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결국, 나는 주니어 보드가 되지 못한 채 4학년 졸업반이 되었다.
<신사동 가로수길 입구에 위치한 J타워에 입주해있는 TBWA KOREA / 주니어보드 동기 김양이 찍음>
2. 마지막 도전일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 학기에는 취업 준비 때문에 사실상 뽑히더라도 활동이 어려웠다.
그리고 아마 뽑아주지도 않을 게 너무 자명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다시 한 번 더 지원서를 냈다.
지금도 독립광고대행사로서의 TBWA의 위치는 견고하지만, 당시만 해도 TBWA는 광고를 꿈꾸던 학생들에게는 로망 그 자체였다.
대기업 인하우스 에이전시들의 틈바구니에서도 보란 듯이 선전하고 있었고
SKT라는 굴지의 광고주를 클라이언트로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만드는 광고에는 크리에이티브가 있었고 진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스타 광고인 박웅현 CD가 그 중심에 있었다.
이 때 갑자기 선발 방식이 변경되었는데,
AE, CW, AD 3가지로 지원 구분을 두고 각 지원 포지션에 맞는 필기 시험이 추가 되었다.
나는 당연히 내가 하고 싶었던 CW(카피라이터)로 지원했다.
깐느에서의 수상으로 버프를 받았던 걸까.
서류를 통과했고, 그 뒤 필기(작문) 시험과 면접까지 일사천리로 모두 통과하여 5명의 CW에 선발되는 기쁨을 안게 되었다.
면접에서는 SKT의 <사람을 향합니다> 캠페인 등을 진행하며 역시 꽤 알려져 있던 윤성아 CD님이 계셨는데,
그 때의 기억과 후에 합격한 뒤에 나에게 해주셨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다.
윤CD님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였냐"라고 물었고, 나는 순간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질 않아
CD님 뒤에 있는 창문 밖의 노을지는 신사동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뭔가에 홀린듯이 대답했었다.
"인생의 순간 순간이 모두 소중하기 때문에 그 어떤 순간만이 도드라지게 내게 다가와 기억에 남는 것 같진 않다.
모든 순간이 내게는 같다. 그냥 지금 이 순간 역시 마찬가지이고, 다른 무수히 많았던 소중한 순간들처럼 기억에 적당히 남을 것 같다."
뱉어놓고는 '이게 말인가 방구인가'라고 생각했었는데, 윤CD님은 그 대답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고 소회했다.
그렇게 나는 4학년 1학기에,
처음으로 광고대행사에 내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당시 모집 공고에 실린 특전들은 생각만으로도 내 가슴을 마구 뛰게 했다. 내가 이제 이 모든 것들을 경험할 수 있다니!
그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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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다른 예비 광고인을 모집합니다
TBWA\KOREA는 광고인을 꿈꾸는 대학생들에게 실질적인 광고업무 체험과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국내 광고 전문 인력 인프라 구축을 위해 ‘TBWA\KOREA\JUNIOR BOARD’ 10기 회원을 모집합니다.
JUNIOR BOARD 10기로 선발된 회원에게는
- 당사에서 진행하고 있는 광고기획 및 제작, BTL 등의 실제 프로젝트 업무에 참여 및 선배 광고인들의 강의와 제작현장
답사 등의 기회
- 박웅현 Executive Creative Director가 직접 진행하는 교육프로그램에 참여 (세부 프로그램 내용 홈페이지 참조)
- 본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한 회원에게는 당사에서 인턴사원으로 근무할 수 있는 자격 부여
등의 혜택을 부여합니다.
일반 인턴제와는 달리 월 2회의 정기모임(오후 6시)을 통해 프로젝트별로 과제가 부여되고, 제출한 과제물을 평가 및 교육하는 프로그램으로 학사 일정에 지장을 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습니다.
예비 광고인 여러분들의 많은 지원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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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글씨로 쓴 부분들이 나에게 가장 어필했던 부분들이다.
"학사 일정에 지장을 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다는 것에 기쁜 마음 그대로 편히 갖고 시작하였으나,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주니어보드의 모토. 내가 10기였는데, 벌써 25기가 활동하고 있다.
선발 방식과 프로그램은 10기 때 변경되고 난 뒤 지금까지 쭉 유사한 듯하다.>
내 인생에서 짧고 강렬하게 또는 혹독하게 스쳐 지나갔던
TBWA에서 보낸 6개월은, 다음 포스트에 적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