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광고 공모전 수상"

깐의 남자가 되다

by 도드리

1. 그냥 재미있어 견딜 수 없던 수업이었는데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을 바꿔 놓은 수업이었던 것 같다.

광고에 대한 나의 열망과 열정을 더욱 키울 수 있었던 그 기회를 정말 운좋게 잡게 된 것이다.


시작은 평범했다.


또 다른 과제로 BTL 광고 아이디어를 짜내던 중,

NIKE라는 브랜드가 가진 속성을 일상 속으로 끌어와 조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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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포토샵 능력 미숙으로 다소 허접하게 합성함>


나는 일상 생활을 통해서 운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마라톤과 자전거에 미쳐 있다 보니, 뛰거나 자전거로 달릴 때 외에도 몸이 근질거려서 어떻게든 움직이려고 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걷는다거나 지하철에서 뒤꿈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서 있기 같은 것들이다.


지하철. 버스.

여기에서 생각이 머물렀다.


하루에 2시간 가깝게 보내는 이 공간에서. 때로는 옴싹달싹할 수도 없고, 경직된 채 시간을 보내는 이 곳에서

작게나마 건강을 위한 액션을 할 수 있다면?

이 지루한 일상의 틈에도 운동이 들어올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일상을 언제나 함께 하고 인지되고자 하는 브랜드(NIKE)가 녹아든다면?


나는 "일상 속의 스포츠"라는 컨셉으로 지하철 구조물들을 이용해 간단하게 몸을 풀거나 운동을 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시리즈로 만들었고 위의 손잡이 악력기는 그 중 하나였다.



2. 이 아이디어가 교수님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이다.


"아이디어 이거...정말 좋네요."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면, 당시 수업 분위기상 정말 좋은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의 사용에 대한 동의까지 구하셨다. 나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 정도로 좋게 평가를 해주셨다는 점에서..


그리고 얼마 후, 강의가 끝나고 방학이 찾아 왔다.

학점? 최고의 학점을 받았다. 물론, 기분은 좋았지만 이 수업이 끝났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광고 수업을 진행하셨던 교수님이었다.


'대체...무슨 일이지?'



3. 버스를 타고 교수님을 만나러 학교로 가는데,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갔다.


내가 환청을 듣거나 꿈을 꾸고 학교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계속 볼을 꼬집고 때려 봤는데 꿈은 아닌 듯 했다.

학교에 거의 다다를 때까지도 뭔가 잘못된 것 같고 꿈 같아서 왠지 교수님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 아무도 없을 것만 같았다.


아무도 없으면 그냥 도서관에 가서 책이나 읽든가 샌드위치나 사먹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 정도로, 교수님을 만나기 전까지의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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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품하기 전에 한 번 연락했었는데 연락이 안 되어서..그 때 동의를 했기에 출품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어요."


'아..전화 언제 했다고. 안 왔는데...'라고 생각하면서 서류봉투를 받았다.


설마. 진짜인가.



Cannes Lions 2007.

깐느 국제 광고제 파이널리스트 수상 상장이었다.

그리고 분명하게, 내 이름도 적혀 있었다.


"나중에 경력에 도움이 될 거예요."


교수님의 음성은 들렸으나 눈 앞에 있는 게 교수님인지 환영인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실물로 제작되어 출품되었다>



4. 후일담.


그래서 정말 이게 내 경력에 도움이 되었냐고?


엄청난 도움이 되진 않았다. 광고대행사에 넣었던 이력서가 5번은 퇴짜를 맞았으니까.

(심지어, 이 교수님이 임원으로 계신 곳도. 합격했다가 갑자기 합격이 취소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이 곳에 있기까지 도움이 되었던 건 분명하다.

면접 볼 때 꽤나 궁금하게 만들 수 있었으니까.



광고 쪽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이 상장 속에 같이 이름을 올렸던 분을 정말 우연한 기회에 만났다.

대행사 분들과 술자리를 갖다가 옆테이블에 계시던 이 분과 합석을 하게 되어 같이 술을 마셨는데,

누군가가 "얘 깐느에서 상도 탔었어~" "어떻게?"에서 시작되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세상에. 이 분이 내 아이디어를 완성시켜준 분이신 게 아닌가.


부딪히는 술잔 뒤로 전율과 반가움이 동시에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교수님이 회사에 돌아가 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는 것. 나에게 직접 건넸던 것 이상의 칭찬을 하셨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정말, 재밌다 인생. 재밌다 광고.

라고 생각했던 밤이었다.



지금은 그저 고맙고 그리웁다, 전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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