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땅에 헤딩하다"

제일기획 대학생 광고대상에 도전하다

by 도드리


20120709094003_210764_430_640.jpg?type=w2 출처: 네이버 이미지


1. 어릴 때부터 끼가 넘쳐 났던 나는 언제나 그 끼를 주체하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그 때문에 친구도 많고 인기도 좋았지만, 학교나 학원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일도 종종 있었다.

'또라이'라는 이야기도 적잖이 들었다.


내 안에 넘쳐 나는 이 기운을 어디로 발산하면 좋을까.

언뜻 생각나는 것은 방송/영화/연예/광고 같은 것들이었다.


한 때는 연극영화과나 미대에 진학하려고 준비를 했었던만큼

남들이 흔히 말하는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한 직업군으로 진출하고 싶었다.


정말 멋도 모르던 때였지만, 어쨌든 그런 생각들을 반영하여 대학에 갔다.


신문방송학과가 유명한 대학에 진학해서 국문학과 신문방송학을 복수전공했다.

(실은, 국문과가 점수가 조금 더 낮아 안정적으로 지원한 것이었는데 막상 공부해보니 의외로 내 꿈에 큰 도움이 되었고 수업도 꿀잼이었다.)



2. 새 학기가 시작되자 학교 이곳저곳에서 신입생을 유치하려는 동아리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흔히, '4대 연합 동아리'라고 부르는 광고 동아리들도 마찬가지였다.


광고에 대한 관심은 이미 꽤 지대했지만(컨텐츠보다 광고를 더 유심히 보고 TV 광고는 안 본 광고가 없을 정도로), 뭔가 재미 없어 보였다. 동아리에서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아 보였는데, 그게 싫었다.


난 흑인음악동아리에 가입했다. 빈 강의실에서 광고를 공부하고 토론하는 대신, 마이크를 잡고 랩 연습을 했다.



내 선택에는 후회가 없었다.


랩 하고, 공연하고, 친구들과 미팅하러 다니고, 농구하고, 나름 즐거운 새내기 생활이었다.


광고는 어차피 자신 있었다. '광고=아이디어'라는 등식을 머릿 속에 품고 있었고,

'아이디어는 타고 나는 것이 중요하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더욱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난 이미 광고 동아리 애들보다 앞서 있었고 더 앞서 가게 된 것 같았다.



3. 학교 도서관에서 <제일기획 대학생 광고대상> 포스터를 우연히 보았다.


"아, 이거다!" 싶었다.

보통은 팀을 이루어서 출품하는 것 같았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디자이너 구합니다~"라고 구인 글을 올리는 애들도 많았다.


잠시 고민이 됐다. 어떻게 해야 하나..

광고 동아리 소속도 아니다 보니 파트너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 중 광고에 관심 있는 친구는 없었다.

동아리 애들은 아마도 내부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일사불란하게 팀을 구성하고 있을 터였다.



그냥 혼자 가자.


혼자 하기로 했다. 어차피, 고등학교 때 미술 전교 1등에 "니가 그린 게 정말 맞냐?"며 미술실에 끌려 갔던 나다. 이 정도는 문제 없을 것 같았다.


며칠 동안 고민해서 아이디어를 짜내고, 출품하기 전날 밤을 새워 콘티를 그리고 색칠했다.

지금 보면, 민망하기 짝이 없는 아이디어였다.

(컴퓨터 어디엔가에 그 기록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찾을 수가 없다. 아니, 굳이 찾고 싶지도 않다.)


어쨌든, 그 밤새워 그린 콘티를 서류 봉투에 넣고 나는 이태원으로 향했다.



4. 한 방 제대로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제일기획 본사는 로비부터 난리도 아니었다.

바글바글.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폼보드에 스토리보드를 다시 붙이거나 마지막 점검을 하거나 자기들끼리 작전 회의라도 하듯이 쑥덕대거나..마치, 영화 속에서 '곧 전장으로 나가기 전의 내무실' 풍경 같았다.



나는 뭐지?

난 최선을 다한 건가?

지금 이 순간에도 난 자신할 수 있나?



넘쳐 나던 자신감이, 배알이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접수대로 빠르게 걸어가 서류봉투를 건네고는 도망치듯 건물 밖으로 빠져 나왔다.



5.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그래도 아주 작은 기대감은 남아 있었던 것 같다.


'또 다시 지고 싶지 않다.'

라는 생각이 밑돌았던 듯하다. 나름 호된 신고식이었다.


콘티를 그리고 나서 남은 빈 종이 한 장을 서랍 속 깊숙이 넣어 두었다.

%C0%CC%B9%CC%C1%F6_2.png?type=w2 출처: 제일기획 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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