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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Jul 24. 2019

10. 첫번째 가족 여행 : 윌밍턴

(Week 5) 친구를 찾아서

미국에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고민할 것도 없이 첫번째 여행은 노스캐롤라이나의 작은 바닷가 도시 윌밍턴으로 낙점되어 있었다. 대서양을 바라볼 수 있는 수많은 해안선 중 하나를 가졌다는 사실 외에는 딱히 어필할 게 없는 동네임에도 장장 6시간 이상 700km를 (대략 부산에서 신의주 정도) 달려간 이유는 단 하나, 아이의 친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옆동네. 자전거로 이틀이면 도착)


작년 여름 윌밍턴으로 온 가족이 이민을 가기 전까지 어린이집 입학과 졸업, 그리고 초등학교 2학년까지 무려 7년을 함께한 친구이니, 말하자면 인생의 칠할을 함께 보낸 친구인 셈이다. 우리 어린 시절엔 친구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거나 혹은 이민을 가게 되면 잘해야 편지 몇 통 주고받고는 대부분 연락이 두절되기 일쑤였지만, 오늘의 아이들은 톡으로 지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물론 한동네에서 지낼 때만큼 할 얘기가 많지는 않겠지만, 우리 가족의 미국행이 결정되고 나서는 좀 더 자주 연락을 하게 되었고 결정적으로 아이와 자주 영상통화를 하면서 낯설고 힘들 수밖에 없는 미국 생활에 대한 앞서 나갔던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줄여주는데 도움을 준 고마운 친구이기도 하다.


애틀란타를 떠나 골프의 성지 오거스타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나무밖에 본 것 없는 사우스캐롤라이나를 관통하여 해질 무렵 겨우겨우 윌밍턴 호텔에 도착하였다. 나름의 관광도시인지라 주말 가격이 꽤나 비싼 관계로 그중 저렴한 호텔을 골랐는데, 깔끔한 프런트와는 달리 방문을 여는 순간 미제 곰팡이와 탈취제의 비릿한 혈투가 펼쳐지고 있었다. 여간해선 숙박에 큰돈 쓰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그날 이후 나의 가치관은 조금은 바뀐 것 같다. 앞으로는 일정 수준 이상이 담보되지 않는 숙소에서는 머무르지 않기로. (늘 비싼 숙소로 예약한다고 잔소리하는 나에 대한 아내의 극약 처방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신박한 룸서비스까지)


그리고 이틀간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대로 완벽하게 잘 흘러갔다.


'만나고, 반가워하고, 함께 식사하고, 웃고 떠들며 놀고는, 기약 없는 다음을 약속하며, 헤어지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기'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잘 놀고, 부모는 부모대로 이방인으로써의 고단함과 삶의 팁들을 주고받으며 그런대로 알찬 이틀을 보내고는 다시 그 700km를 그대로 다시 밟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여행의 3대 기쁨은 ① 계획 짜는 동안 ② 오랜 여정으로 지친 몸을 호텔 침대에 내던지는 순간 ③ 돌아와 집이 최고다 라고 말하는 순간이라고 믿어 왔었는데,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는 ④ 아이에게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줬다는 뿌듯함이 추가되었다.


좋은 기억이 많은 아이일수록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힘들 순간을 이겨낼 능력이 있다 믿는다.



(평온한 미국 아파트 단지, 수영 마치고)



(심심함이 매력인 라이츠빌 비치)


(아쿠아리움엔 늘 임원, 파트장, 파트원이 한자리에)




사실 생각해보면, 여지껏 살아오며 여행가서 겸사겸사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아닌, 친구를 만나기 위한 목적 하나만으로 여행을 준비하고 먼 길을 떠나온 기억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유년 시절의 친구들은 연락이 끊긴지 이미 오래. 싸구려 우정 팔찌를 함께 맞추었던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의 우정은 팔찌에 녹이 슬듯 차츰 거칠거칠해져 갔고, 영원할 것 같았던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은 하나의 무리에서 삼삼오오 가지를 치고는 이합집산을 반복하였다. 때로는 서운할 때도 있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는 애써 친구를 부르지 않았던 나를 돌아보면 사실 원망할 대상도 불투명하다. 평소 아버지처럼 따르는 아버지 친구분께서, 사기를 쳤거나 혹은 건강이 매우 안좋지 않은 한 50대 이후 다시 만나게 될 테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하신 말씀이 생각이 난다.


20대 이후의 친구들은 아무래도 그 순수함은 10대때보다는 덜 하다고 생각되지만, 오히려 더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만나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출발부터 몇가지 필터링을 거친 이후 비슷한 묶음으로 남은 상태에서 만났을지라, 그만큼 같이 고민하거나 즐거워할 주제가 더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사랑만큼 순수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던 우정이라는 놈이 사실은 그렇게 순수한 성격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반드시 순수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뒤로 미뤄두더라도, 많은 사람들 중에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그 처음을 생각해보면 서로 닮은 구석이 있어서였을 수도 혹은 전혀 다른 성격을 가져서였을 수도, 재미있어서 혹은 그냥 서로 심심해서였을 수도 있다. 어찌했던 수많은 우연적인 과정을 거치는 7년이 지나, 13시간의 시차를 두고 멀리 떨어져 살아가다가, 다시 어떤 우연한 기회에 미국이라는 넓은 땅덩어리 안에서 자동차로 여행할 수 있는 거리를 두고 다시 같은 시차 안에 살게 된 두 친구.


다시 만날 기회는 점점 줄어들 것이고, 차츰 흐릿해지는 기억처럼 소원해질 수 있겠지만서도 이번 만남을 통해 오랜 친구의 소중함,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다시 만나는 반가움을 조금이라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작 한달 만에 돌아갈 집이 되어버린, 애틀란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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