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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Jul 21. 2019

9. 차량 구매기

(Week 4) 모르는 사람들

'모두 바쁘게 움직이지만 이상하리만치 고요하다. 태풍의 눈 속에 들어온 듯, 긴장은 종종 청각을 마비시킨다. 누군가를 기다린 다는 것은 으레 설렘을 전제하지만, 결전을 앞둔 장수마냥 마냥 초조하기만 하다. 멀리서 오는 그는 적군일까 아군일까. 기어코 나타난 그는 활짝 웃는다. 이유 없이 웃는 사람은 필히 이유가 있기에 경계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 호의는 없다.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 기필코 당할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속내를 드러내는 순간, 모든게 무너질 수 있다. 한바퀴, 두바퀴, 무표정을 유지하자. 돌아서는 나를, 그는 애가 타게 나를 부를 것이다.'




4년 전 처음 미국에 왔을 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새 차를 샀다. 자동차 왕국답게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선택지가 있었으나, 고장이 적고 2년 후 되팔 때 좋은 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차 중에 선택하였다.


당시에도 예산을 생각하면 중고차를 잘 골라서 사는게 필요했지만, 무엇보다 잘 고를 자신이 없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잘 모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Carfax report를 통해 개인/렌탈 소유 여부, 사고 및 정비 기록 등은 확인할 수 있으나, 세부적인 차량 상태는 본네트도 열어보고 소리도 들어봐도, 정확한 맥을 짚어낼 재간이 없었다.


(자동차를 글로 판단할 수 있을까)



'전문가가 아닌데, 본다고 뭘 알겠나'


비교적 저렴한 차는 시승했을 때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아 꺼려진다. 괜스레 엔진 소리도 안좋게 들리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비교적 가격이 높은 차는 중고차로서의 메리트가 없어 보인다. 시승 결과 맘에는 들지만 가격이 부담스러워 문을 박차고 나오면, 어김없이 딜러가 따라와 할인을 해준다고 하니 그 또한 뭔가 마음에 안든다. 결국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정보 밀고 당기기가 계속되나 정보 비대칭으로 잘 모르는 내가 당할 것이라는 불신이 깊게 자리하였다.


'고민해도 답 안나오는 문제는 고민하지 말자'


결국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전제하고 동일 브랜드 내의 차량들은 품질이 모두 균일하다는 믿음으로, 자신 없는 분야에 대해서는 의사결정을 회피하는 것 또한 하나의 의사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새 차는 가격이 높지만, 다시 파는 시점에 감가상각이 적다면 결국 이득이라는 판단. 결과적으로 2년간 아무 문제없이 차를 몰았고, 구입한 가격 대비 세금 제외 3천불 정도 낮은 가격에 팔았으니 소기의 목적은 모두 달성했던 것 같다.




두번째 미국에서도, 정착에 가장 힘든 부분은 역시 차량 구매인 것 같다. 이번엔 아내와 나, 총 두 대를 사야 하니 빠듯한 예산 속에 중고차를 살 수밖에 없을 듯하다. 결국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의사결정을 해야 할 상황에 내몰리게 되었다. 맨손으로 덤비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이 크기에, 가격이 조금 불리해도 조금은 나으리라는 기대 속에 Certified Pre-owned와 Carmax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딜러샵에서 일종의 품질 보증 딱지를 붙여주는 구조이나, 실제 보증은 극히 제한적이니 심리적 안도감 이상은 아닌 것 같다.


(가장 깔끔한 중고거래, 가격은 깔끔하지 않지만)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다는 장점과, 의사결정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는 단점을 고려하면 경영 컨설팅과 유사한 성격이다. 브랜드와 평판에 의지한 채 비용을 지불하고, 조언을 받아 들인다. 결과는 누가 알겠는가, 결국 내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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