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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Aug 01. 2019

12. 꼰대를 위한 나라는 없다

(Week 6) 착한 꼰대도 되지 말자

시간이라는 것이 본래 연속적인 것일 뿐 모든 인위적 구분은 자의적 해석이니 무시하면 그만인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어떤 날들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하나의 관습이 되어 버리면,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무언가를 의식하게 되는 게 사람인 것 같다. 마흔이라는 말이 주는 중압감은, 아직 한창이라는 느낌의 서른보다도 크게 다가왔기에 스스로의 모습을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다행히도 미국에 와서 다시 삼십대에 돌아왔으나, 시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아직 짙은 잔상이 남아있는 말은 바로 꼰대이다.


과거에는 선생님이나 아버지 같이 그 지위가 주는 특성상 구식의 답습을 강요하는 나이 많은 어른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최근에는 학교 선배, 직장 상사, 혹은 친구 사이에서도 본인의 생각을 강요하는 경우라면 언제든지 적용 가능한 광범위한 말이 되어버렸다. 쓰임새가 많아졌다는 것은 곧 쓰이기 위한 현상이 잦아졌다는 반증일까. 젊은 꼰대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안타깝지만 사실인 듯싶다.


쿨함과는 대척되는 이 혐오스러운 단어가, 나를 표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몇 가지 경험이 있었다. 때로는 후회스러운 말로, 때로는 그런 생각을 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뜨끔해지는 순간들.


#1

옆 부서의 부장님께서 부친상을 당하셨는데, 그 부서 신입사원이 주말에 가서 일 좀 거들어달라는 선배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주말에는 회사 일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직장 상사의 개인사에 동원되는 것은 너무나도 부당하므로 당연히 거절하는 게 맞다고 머리로는 생각이 들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그래도 힘들 때 서로 돕는 게 뭐 그리 어려운지 이럴 때 좋은 인상을 심어 드리면 본인에게도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나의 신입시절 밤을 꼬박 새 가며 부장님 부친상에 와주신 조문객에게 음식을 나르던 기억은 분명 사족스럽지만, 떠오른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게 꼰대스러운가.


#2

주말에 뭐했냐는 후배의 일상적 질문에, 아이와 도서관에 가고 책을 본다고 답한다. 요즘 좀처럼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다는 후배의 별 생각없는 말에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어떤 책이 좋은지, 나의 독서 습관은 어떻게 가져가고자 하는지 한참을 얘기한다. 한참을 얘기하고 나서야, 한참을 얘기했음을 깨닫는다. 좋아하는 후배에게 공유해주고픈 좋은 경험을. 좋은 취지로 한참을 은연중에 강요하고 있음은 꼰대스러운가.


#3

평소 잘 웃지 않는 사람에게, 인상 좀 펴고 가능하면 웃는 낯으로 사람을 대하는 게 좋지 않냐는 뻔하디 뻔한 좋은 얘기를 해준다. 듣는 순간 표정이 약간 굳어진 그 사람에게, 더 굳기 전에 잔뜩 주물러줘야 부드러워지는 찰흙인 양 더 꾹꾹 눌러 얘기해준다. 진심으로 그 사람의 밝은 앞날을 위해, 묻지도 않은 사명감으로 한참을 떠들다가 더 이상 승산이 없음을 인정하고는, 나중에 알게 될지어다 라는 무책임한 말로 대화를 종결함에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는 나는 꼰대스러운가.




굳이 구분하자면 본인의 이권을 지키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한 구시대적 나쁜 꼰대와는 달리, 착한 꼰대는 보통 선한 의도를 가진다. 착한 꼰대는 가까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고 싶다. 주로 경험적 판단에 근거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비교적 객관적이라 믿는다. 충분히 고칠 수 있는 결점을 얘기해주지 않는 것 또한 도리가 아니라 생각한다.


허나 우리는 알고 있다. 당장 도움이 되지 않는 다분히 좋은 말들은 좀처럼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생각이라는 것은 보고, 듣고, 느끼고, 곱씹어 보는 충분한 과정을 겪어 형성되는 것이지 짧은 강요로 단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잘못된 접근은 보통 역효과를 낳는다. 간혹 고전적 명언 한마디가 누군가의 좌우명이 되어 인생을 바꾸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명언을 날릴 수준인지 자문해 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좀 더 가까워지고 싶은 친구나 선후배가 있다면 따뜻한 마음으로 안부를 묻자. 웃는 얼굴이 좋아 보이면 먼저 웃어주자. 좋은 책을 읽었고 나누고 싶다면 책을 선물해주자.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싶다면 훌륭한 식당을 소개해주자. 좋은 정보가 있으면 빨리 알려주자. 민감한 사안은 피하되, 꼭 얘기해야 한다면 내 생각을 얘기하고는 상대방의 답을 차분히 기다리자. 가까울수록 오래 보고픈 사람일수록 더욱 예의를 갖추자.


생각을 강요하는 행위 말고도 할 일들이 참 많다. 가까운 사이에도 전략적 접근은 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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