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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Aug 03. 2019

13. 모스크바의 신사

(Week 6) 소설을 읽는 이유

소설이 좋다. 어릴 적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읽은 위인전도 좋았고, 학창 시절 문예 구락부에서 멋모르고 감상하던 시도 좋았고, 돈을 벌 것이란 허황된 기대를 품게 만들어준 경제/경영서적도 좋았고,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고자 꾸역꾸역 읽어대던 인문/역사/예술서적도 좋았지만, 돌고 돌아 다시 소설이 좋다.


출국 전 마지막 장바구니에 담은 책들 중 하나가 에이모 토울스(Amor Towles)라는 미국 작가의 모스크바의 신사(A gentleman in Moscow)라는 소설이었다. 마침 회사에서 가열차게 추진하던 도서구매 지원 프로그램의 지원금 한도에 맞춰 비교적 비싸고 두툼한 신간 서적을 찾던 와중에, 각종 추천도서 리뷰에 쓰인 '러시아 혁명기 호텔에 연금된 구시대 귀족 이야기'라는 문구에 말 그래도 꽂혀버렸다. 첫 장을 채 읽기도 전에 들뜨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경험적으로 그런 직감은 종종 잘 맞아떨어지곤 했었다. 왠지 이 긴 이야기는 내 인생 영화 목록 상위에 늘 위치한 '포레스트 검프' 혹은 '쇼생크 탈출' 못지않는 감동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




주인공 알렉산드로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은 종신 연금형이 내려진 메트로폴 호텔에서 과거 본인의 신분에 걸맞지 않은 대우를 받고, 닫혀진 세상의 문 안에서 좌절감을 맛보지만서도 끝내 자존감을 잃지 않는다.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욕구를 전제로 하는, 그렇기에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을 지닌 자존심과는 달리 자존감은 나를 향한 믿음, 나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되는 삶의 태도를 형성하는 거름이 되어 준다. 자존감을 유지한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본인의 삶을 살 수 있고, 본인의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실제 메트로폴 호텔은 대략 이런 느낌. 출처 : Booking.com)



한 에피소드에서, 어느 독일인이 러시아가 서구에 기여한 것은 보드카뿐이라며 3가지 더 얘기할 수 있으면 보드카를 사겠다고 도발한다. 이에 백작은 안톤 체호프와 톨스토이,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1막 1장, 그리고 블린과 사워크림을 곁들인 캐비어를 말하며 멋지게 응수한다. 문화에 관한 자긍심은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항상 빛을 발한다.


또 한 가지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 중 하나로, 하루에 두 번만 울리는 시계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우연에 우연을 거쳐 가족이 된 소피아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삶의 자세에 대한 백작의 아버지의 애정 어린 가르침이 녹아있다.


"우리의 창조주는 오전 시간을 열심히 일하는 시간으로 따로 떼어놓았다고 믿었다. 즉, 6시 이전에 일어나서, 가볍게 식사하고, 중간에 휴식 시간 없이 일에 몰두한다면 정오 무렵까지는 하루치의 노동을 완수하게 된다는 믿음이었다. 정오의 종이 올리면 근면한 인간은 오전을 알차게 보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는 양심이 깨끗해진 상태에서 점심 식탁에 앉을 수가 있다. 하지만 정오의 종이 울릴 때 어리석은 인간 - 침대에서 뭉그적거리거나, 조간신문을 세 개나 읽으며 아침을 먹거나, 응접실에서 무의미한 잡담을 하며 오전 시간을 낭비한 사람 - 은 신의 용서를 구하는 것 말고는 달리 다른 대안이 없었다.


점심 식사 전에 온전히 충실한 시간을 보냈으므로 오후에는 현명한 자유로움을 누려야 한다고 믿었다. 즉, 버드나무 길을 산책하거나, 영원한 고전을 읽거나, 정원의 퍼걸러 아래서 친구와 대화를 나누거나, 따뜻한 불 앞에서 깊은 생각에 잠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간을 정해놓은 것이 아닌 일들, 시작과 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들에 몰입해야 한다고 했다.


하루를 충실히 잘 살았다면 - 근면과 자유의 신을 섬기고 봉사하면서 살았다면 - 그 사람은 12시 자정이 되기 훨씬 전에 곤히 잠들어 있어야 했다. 따라서 하루에 두 번만 울리는 시계의 두 번째 종소리는 명백히 하나의 충고였다. '이 시간에 안 자고 뭐 하는 거야?' '낮 시간을 지나치게 낭비한 탓에 어둠 속에서도 할 일을 찾아 해매야만 하는 것 아닌가?' 종소리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러한 가르침 속에 백작은 어떤 환경에서도 초연한 본인만의 삶의 자세할 유지할 수 있었으리라 보인다. 타인을 배려할 줄 알며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늘 유머를 잃지 않고 스스로 만든 본인의 품격을 유지한다면, 처한 상황과 지위와 상관 없이 주위 사람들로부터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호텔이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도 백작은 친구를 사귀고, 사랑을 시작하고, 갈등을 겪고, 심지어 가족을 형성하기도 한다. 때문에 책을 읽는 중반부터는 아쉽게도 700페이지가 끝나버리는 곳에서 '과연 백작은 호텔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은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그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에피소드가 궁금할 뿐이다. 다만 이런 아쉬움이 든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안톤 체호프의 단편선과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은 사람에게 이 책은 얼마나 더 깊은 감동을 선사해줄까?


그저 재미있는 가공의 이야기로 규정하기에는, 소설은 위인전도 있고 시도 있고, 경제 경영 인문 역사 예술 다 들어있는 하나의 작은 세계이다. 세계를 창조해 나가는 소설가는 과연 신(神)에 버금가는 존재이며, 언젠가는 나 역시 신이 되고픈 인간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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