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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Aug 08. 2019

15. 갈비찜, 스팸

(Week 7) As time goes by

아래 모든 재료를 준비한다.

갈비를 2시간씩 3차례 찬물에 재워 핏물을 빼준다.

끓는 물에 갈비, 통후추, 생강, 월계수 잎을 넣고 15분 정도 삶아준다.

갈비를 건져내어 식힌 후 칼집을 내어주고 육수는 기름을 제거하고 따로 보관한다.

물, 간장, 맛술, 매실액, 설탕, 생강가루, 마늘, 깨, 후춧가루를 넣어 양념장을 만든다.

갈비, 육수와 양념장, 그리고 손질한 무, 감자, 표고, 밤, 파, 양파, 청양고추를 넣고 1시간 이상 푹 삶는다.

간을 보고 육수를 조금 더 붓는다.

다시 1시간 푹 삶는다.

그릇에 옮겨 담고 깨를 조금 더 뿌린다.

아이와 아내에게 저녁먹자 한다.




"아빠, 그냥 스팸 구워주면 안 돼?"


미국에서 처음으로, 서툰 솜씨에 어림잡아 2~3시간 이상 걸려 정성스레 만들어준 갈비찜에 대한 아이의 대답은 악의없는 차가움이었다. 채 한술 뜨기도 전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유는 알고 있다. 잔뜩 올라간 표고, 무, 양파 등 야채가 눈에 거슬리기 때문이다. 지금껏 한 번도 아이에게 제대로 화를 낸 적이 없었고, 오늘도 올라오는 화를 꾹꾹 억누르며 차분히 이야기한다.


"아빠가 3시간이나 걸려서 열심히 만들었는데, 한번 먹어보지 않을래? 맛있을 텐데."


아내가 중재한다.


"고기 잘라서 국물이랑 비벼줄 테니 한번 먹어봐. 맛있을 거야."


아이는 마지못해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는, 푹 삶아진 갈비와 달짝지근한 양념에 비빈 밥이 맛있다고 한 그릇 뚝딱 비운다.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온 화는 온데간데없고, 아이의 먹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한술 뜨고는 건조한 표정으로 아내에게 얘기한다.


"맛있기만 하고만."




고등학교 2학년 즈음이었나, 어느날 친구로부터 주말에 스키장에 가자는 연락을 받았었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나는 엄마에게 스키복과 스키장비가 필요하다 말씀드렸다. 당시 형편으로 렌탈할 생각은 못했던 것일까. 다음날 엄마는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내 키와 발 사이즈에 맞는 스키복과 장비들을 어디선가 싹 빌려오셨다. 학원에서 돌아와 밤늦게 확인한 나는 하나 둘 확인하다가 고글이 없다고 말씀드렸다. 고글이 없으면 안된다고, 이것들 다 소용없다고, 갈 수 없다고, 안 갈 거라고 엄마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그날 밤 내 기억에, 유년시절 이후로 처음으로 엄마가 나에게 화를 내셨다.


다음날 아침,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고글 산 돈을 손에 쥐어주시고는 잘 다녀오라고 하셨다.


잘 다녀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난 친구들과 스키장에 다녀왔다. 고글을 쓰지 않았으면 무척이나 눈이 부실 뿐더러 칼바람을 맞아 눈물이 낫겠지만 난 엄마가 주신 돈으로 고글을 사서 썼다. 좋지 않은 기분으로 다녀왔지만 다행이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엄마는 눈물을 흘리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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