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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Aug 13. 2019

16. 도서관에서

(Week 8) 이방인

딱딱한 어감, 고리타분한 이미지와는 달리 사실 도서관은 좋은 곳이다. 조용하고, 시원하고, 책이 많고,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서비스는 무료이다. 아이에게 유익할뿐더러 나에게도 무척이나 유익하다.


아이가 미국 초등학교에 처음 등교한 날 적적해진 집을 뒤로하고 도서관으로 향하였다. 매주 월요일마다 동네 도서관에서 ESL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프로그램이 무료로 제공된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교실엔 열명 남짓 있었는데 나를 제외하고는 선생님과 다른 학생 모두 여성이었다. 청일점이 영어로 뭘까, 찾아보니 'the only man'이라 나온다. 기대와 달리 너무 평이하여 말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자리한 책상에는 러시아 아주머니와 이란 모녀가 앉아 있었다. 이름표에 이름과 국적을 표기해야 하는데, 간단히 'Korea'라고 적으면 미국에서 대한민국보다 유명한 'North Korea'가 연상될 터이고, 그러면 'Russia, Iran & North Korea'라는 다소 적대적인 조합이 완성될 것이 우려되어 좁은 칸에 빼곡하게 적어 나갔다.


'South Korea'


수업은 여느 영어 교육 프로그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문기사를 읽고, 단어를 배우고, 의견을 주고받는 식으로. 나를 포함한 대부분 학생들이 가정주부여서였을까, 첫 주제는 주방. 다 쓴 기름은 싱크대에 버리지 말고, 용기에 밀봉해서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다시 한번, 도서관은 유익하다. 다음 주제는 날씨. 'Dog days of summer'라는 표현이 재밌다. 직관적으로 '가장 무더운 여름에 대한 표현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건 삼복 혹은 복날 때문일까 아니면 '개'라는 접두사가 주는 강한 어감 때문일까. 실제 영미권에서 사용하게 된 어원은 늦은 7월, 이른 8월경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에서 가장 밝은 별자리인 시리우스(큰 개자리)가 관측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마지막 주제는 여행, 그런데 매우 뜬금없게도 고국 외 평생 살고 싶은 나라가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니 과연 미국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러가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기축 통화라면, 언어를 통해 문화마저 좌우하고자 함을 종종 영어 수업을 통해 느낄 때가 있다. 러시아 아주머니와 이란 모녀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the United States'라 답하고는, 미국의 좋은 점을 줄줄이 열거한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그래서 일자리가 많은 나라, 최고 수준의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라. 부강하고 살기 좋은, 그래서 살고 싶은 나라 미국.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그 상황에서 나는 'No'라고 말하고 싶었다. 세상에는 그저 좋기만 한 것도, 나쁘기만 한 것도 없다는 신념 때문이었을까.


오만한 정치인 (arrogant 라는 단어는 요즘같은 때 쓰라고 배웠나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총기 사고 (최근에도 안타깝게도 하루 사이 Ohio와 Texas에서 Mass shooting으로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형편 없는 공공 서비스 (몇시간씩 대기하고 허탕친 경험 누구나 있을 것이다)


더듬더듬 말하고 나서는, 주목된 시선을 살짝 피하며 생각한다.


'갑분싸가 영어로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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