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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Aug 16. 2019

17. 잔소리하는 나에게

(Week 8) 집이라는 직장에서

회사는 다양한 분들이 한데 어우러진 정글이다. 두루 존경받는 분도 계시는 반면, 성공적이지 못한 커리어로 힘들어하는 분도 계신다. 그중에는 말의 무서움을 모르거나, 혹은 알더라도 통제할 방도를 모르는 분도 계신다. 작은 오타 하나에도 삶을 마주하는 경건한 자세를 말씀하시고, 1분 지각에 대해 10분의 설교를 늘어놓는다. 과거의 승리에 도취되어 같은 질문을 반복하지만 대답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하지만 생각한다. 답답함을 토로한다. 나 역시 희생을 하고 있다고. 이렇게라도 혹은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고. 하나하나 곱씹으면 다 그럴듯한 그 말들을, 우리는 흔히 잔소리라고 부른다.


잔소리 (표준국어대사전)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음, 또는 그 말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함, 또는 그런 말




평온할 것만 같은 미국에서, 나 역시 닮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옛 상사를 떠올린다. 집이라는 Non-Profit Organization에서 House Daddy라는 직함으로 일하다 보니 워라벨이 붕괴될 위험에 처해지고, 분명 듣기 좋지 않은 말들, 잔소리가 나온다. 누르면 누를수록 답답하지만 꺼내면 꺼낼수록 불쾌해진다.


잔소리의 이면에는 관심, 사랑, 기대, 불안, 실망, 분노 등 꽤 다양한 감정이 내재해 있을 것이다. 태생적으로 남을 괴롭히는데 기쁨을 느끼거나 혹은 노화의 부작용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보통의 일상에서 들려오는 보통사람의 잔소리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내가 주도적으로 하지 않는 어떤 일, 특히 나의 기대치가 큰 어떤 목표의 달성이 불투명해 보이지만 명확한 해결책을 모를 때가 있다. 이럴 때의 잔소리는 종종 조바심에서 비롯되며, 강도는 약하지만 반복적이다. 아이에 대한 잔소리가 이에 해당한다. 아이는 미국행을 선택한 바 없으나 부모의 권유 혹은 강요로 오게 되어 어린 나이에 삶이 피곤하다. 친구를 만나기가 쉽지 않고, 책보다는 TV, 핸드폰이 편안하다. 어느 정도는 용인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잔소리를 듣게 된다. 그 기준은 매우 자의적이다.


한편, 어떤 목표를 향해 나는 몸을 던져 나아가고 있는 반면 주위의 반응과 노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의 잔소리는 덜 빈번하지만 짜증스럽다. 아내에 대한 잔소리가 여기 해당한다. 내뱉은 이면에 다른 이유가 숨어 있기에 도무지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참고 참다 기어이 나오고야 만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삶을 살아가며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은, 결코 닮고 싶지 않은 누군가의 모습이 거울을 통해 나로 형상화될 때이다. 고심해봐도 완벽한 해결책은 없다. 이 또한 나임을 인정하고, 절제하고, 가능한 좋은 언어로 짧고 간결하게.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에도, 엄마는 저 멀리서 영상통화로 야채 많이 먹어라, 운전 조심해라, 운동 자주해라 말씀하신다. 나를 걱정해 주시는 애정 어린 잔소리에 퉁명스럽게 답하다가도 사람 사는 소리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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