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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Aug 30. 2019

21. 쓰레기 천조국

(Week 10) 때로는 규제가 선한 마음보다 선하다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처음 깨달은 것은 군대 시절이었다. 당시 삼천포의 끝자락에 자리잡은 외딴 소초에서 해안경비 근무를 하는 동안 소위 '짬'이라 부르는 음식물 쓰레기를 처치하는 일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일부는 중대 차량으로 실어 나르고 또 일부는 인근 주민들께 거름으로 사용하시라 드리곤 했지만, 늘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이 짬통에 남아있었다. 그 불결함과 인내심의 대립이 한계에 다다를 즈음에서야 나는 부대원들과 함께 인근 야산에 삽을 들고 가서는 진지공사 때보다 훨씬 경건한 마음으로 짬을 묻어주었다. 한가득 묻고 나면 마치 오랜 기다림 끝에 속을 비워낸 것처럼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떤 불운한 날엔 실컷 땅을 팔 즈음 아주 역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경우도 있었다. 과거 언젠가 거행한 짬 무덤을 들춰낸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온전한 땅을 찾기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이러다가 온 부대원이 짬으로 가득한 땅 위에 살게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최근 태평양의 쓰레기 섬, 국가간 불법 쓰레기 수출입, 그리고 고래나 바다거북과 같은 바다생물의 유해에서 발견된 수많은 미세 플라스틱 조각이 크게 이슈된 바 있었다. 보다 충격적인 소식은, 우리가 흔히 먹는 생선을 통해 우리의 몸으로도 미세 플라스틱이 유입된다는 사실이었다. 미세 플라스틱을 플랑크톤으로 오인한 어느 물고기가 그것을 먹게 되고, 몇 차례 먹이사슬을 거친 끝에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에게까지 전달된다는 것이다. 고래 뱃속을 들춰보았을 땐 그저 불쌍한 바다생물의 사연으로 치부하다가 인간에게까지 영향을 준다하니 비로소 끔찍한, 해결이 시급한 이슈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인간은 참 이기적으로 설계된 것 같다.


이러한 뉴스를 점점 더 많이 접할수록, 플라스틱 빨대 퇴출과 같은 환경보호 운동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진다. 환경을 생각하는 보다 성숙한 시민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불쑥 솟아오른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온 이후 전보다 더 많은 일회용품을 사용하고, 집에서는 쓰레기 분리수거에 점점 소홀해지고 있다. 세계에서 인당 쓰레기 배출량이 가장 많은 미국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닮아가는가보다.


(놀랍게도 소위 G7이라 불리는 나라의 시민들은 매일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를 배출하고 있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물론 있겠지만, 통계가 말해주듯 미국은 세계 최대 쓰레기 배출 국가 중 하나이다. 출처 : statista.com)



몇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미국에서는 여전히 많은 식당에서 일회용품을 과다하게 사용하고 있다. 특히 $ 표시가 1개 붙은 비교적 저렴한 멕시칸, 일식, 중식을 파는 식당의 경우 상당수가 "Here or to-go?"를 묻지 않는다. 식당에서 먹건 포장해 가건 상관없이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주기 때문이다. 이유는 너무나도 자명하다. 비용 때문이다. 플라스틱 용기와 컵, 포크 등을 대량으로 구매하고 쓰레기로 배출하는 것이 주방에 설거지할 직원을 고용하는 것보다 비교도 안될 정도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식당 쓰레기는 음식물과 섞인채 땅에 묻힐 것이다)


또한 홀푸드나 트레이더조와 같은 일부 마트를 제외하면 여전히 많은 대형마트에서 필요 이상의 비닐봉지를 사용하고 있다. 주로 월마트와 크로거와 같이 가격 경쟁력을 중요시하는 마트들이다. 대략 물건 두세개 정도만 넣고는 새로운 봉지에 담아 주는게 일반적이라 카트 절반치 정도의 장을 보고 집으로 오면 비닐봉지가 10장 이상 나오는 일이 흔하다. 값이 싼 얇은 봉지를 쓰다보니 너무 많은 물건을 담을 경우 찢어질 위험이 있고, 물건을 옮기는 중에 봉지가 찢어져서 물건이 손상되기라도 한다면 그 책임은 마트측에 있을 것이므로 가능하면 한 봉지에 몇 개 안되는 물건을 담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외부 환경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적극적으로 분리수거를 한다면 쓰레기 양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 세계에서는 머리에 앞서 몸이 먼저 반응하였다. 아파트에 입주할 당시 받은 쓰레기 처리 안내문에 따르면, 오후 6~8시 사이 문앞에 쓰레기통을 놔둘 경우 그 안에 들어있는 일반 쓰레기는 수거해 간다고 한다. 단, 재활용 쓰레기는 입주민이 직접 지정된 장소에 가져가 버려야 한다. 쓰레기 수거 비용은 한 달에 약 $20~30 수준으로, 배출양과 및 일반/재활용 여부와 무관하게 정액으로 내게 된다. 초반에는 가능하면 이물질을 깨끗이 제거하며 재활용하는데 힘썼으나, 시간이 지난수록 별생각 없이 툭툭 쓰레기통에 집어넣는 것이 일상화되고 있다. 대형 폐기물에 대한 별도의 추가비용도 없다. 미국으로 건너올 당시 한 선배는 우스갯소리로 이삿짐 컨테이너의 남는 공간에 버릴 물건도 싹 다 담아오리고 얘기해줬다.



차곡차곡 모아둔 재활용 쓰레기를 정해진 날짜가 되면 부지런히 내다 버리던 한국에서의 습관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편안함을 쫓아 대충 쓰레기통에 욱여넣기까지는 채 두 달이 걸리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당시,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게 과연 환경을 생각하는 나의 선의였을까? 그보다는 종량제 봉투를 아끼고 싫다는 경제적인 이유가 컸을 것이다.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할 경우 돈이 절약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일반화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겠지만, 환경과 같은 공공의 이슈에 대응하는 방법으로는 성숙한 시민의식의 함양을 기다리기보다는 사회 구성원의 동의 하에 어느 정도 불편함을 강요하는 방법이 보다 효율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다행이도, 최근 미국에서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규제를 점차 강화한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주에서 비닐봉지 사용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올해 8월에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한 생수 판매를 전면 금지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키오스크의 매대를 상상해보면 이는 꽤 급진적인 정책으로 보인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정당화하여 새로운 국제 질서를 만드는 요즘, 미래 세대에 꽃피울 불필요한 분쟁의 씨앗을 심어두지는 말자는 결정은 오늘 우리 세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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