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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Sep 04. 2019

22. 두번째 가족 여행 : 내슈빌

(Week 11) 일상에서 벗어나기

엄마는 늘 여행을 꿈꾸신다. 올해 칠순을 맞이하신 엄마는 네팔로 트레킹 여행을 가고 싶다 말씀하셨고,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버렸다. 불과 몇 해 전 비슷한 여정을 떠나셨다가 고생만 실컷 하시고 중도에 포기하신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포터의 도움으로 무사히 하산하시고 귀국하실 수 있었다지만, 나중에 듣기로는 거의 업혀 내려오신 것 같다. 그럼에도 얼마간의 휴식 뒤에는 어김없이 다음 여행을 생각하신다.


여행을 가겠다고 말씀하시는 엄마의 목소리는 간절하다. 경비를 보태달라는 것도 아니시고, 어찌 보면 허락받을 필요 없는 아들에게 허락을 구하시기에 그저 건강이 허락하실 때 마음껏 다니시라 말씀드린다. 다만 그런 순간에는 내가 엄마의 보호자라는 느낌이 들어 며칠간은 깊은 고민에 빠지곤 한다.


엄마의 꿈은 뭘까?


생각의 끝자락엔 이게 궁금해진다. 여태 나의 꿈도 모른 채 살아가면서 아이에겐 꿈이 뭐냐 물어왔는데, 막상 엄마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무언가 하고 싶다 말씀해주시니 처음 생각해보았고, 엄마의 오늘을 생각해볼수록 막을 도리가 없다. 어제와 내일을 생각해봐도 마찬가지이다. 단조로운 일상과는 달리 여행을 즐거울 것이고, 설사 즐겁지 않더라도 훗날 기억속에선 흐뭇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을때 비로소 일상은 한층 풍요로워진다.




8월의 마지막, 우리 가족에게도 여행이 필요했다. 어딜 가는지 보다는 어딘가로 간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시점이 온 것이다. 아내와 아이는 쉽지 않은 학교 생활에 차츰 적응해 가고 있었고, 나는 크게 힘들 것도 없는 집안일에 차츰 질려가고 있었다. 일상의 균열이 오기 시작했다는 징조는 대화의 부재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침 Labor Day 연휴를 앞둔지라 우리는 지도를 펴고 후보지를 물색하기 시작했고, 허리케인 도리안의 영향권에 들어서는 플로리다 및 동부 대서양 연안을 제외하고 나니 목적지는 손쉽게 테네시주의 내슈빌로 결정되었다.


애틀란타에서 4시간 운전 끝에 도착한 내슈빌은 뮤직 시티라는 애칭을 가진 도시답게 어딜 가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컨트리 음악의 본고장으로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 중 하나라고 한다. 사실 외형적으로는 미국에 있는 다른 유명 도시들에 비하면 내슈빌의 매력은 다소 어중간해 보일지 모른다. 높게 솟아오른 빌딩들이 이루는 스카이라인과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강과 공원이 아름답긴 하나 뉴욕과 시카고에 견줄 바 못된다. 또다른 음악의 도시, 재즈의 고향인 뉴올리언스에 비해선 볼거리 먹거리 모두 역부족이다.


하지만 이 도시의 골목 구석구석엔 넘치는 흥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아는 노래건 모르는 노래건 상관없다. 대낮부터 잔뜩 취한 사람들이 뿜어대는 기운은 유쾌했고, 감정은 쉽게 전염된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걷고, 쉬고, 먹다 보니 출발 전 한층 가라앉아 바닥을 찍은 기분은 차츰 회복되기 시작했고 그 결과는 대화의 재개로 나타난다.



분명 같은 풍경일텐데 돌아오는 길은 더 아름다워 보인다. 고작 하루 사이에 뭐가 변했을까마는, 가시는 차츰 무뎌지고 그 자리엔 새 싹이 꿈틀대며 머리를 들이민다. 새로운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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