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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Aug 28. 2019

20. 끝을 생각하며

(Week 10)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

2016년에 방영된 '또! 오해영'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초반엔 그저 가벼운 로맨틱 코메디물로 생각하고 봤는데, 회차가 진행될수록 그 무게감이 결코 가볍지가 않았다. 지금도 드라마의 OST 중 하나였던 '검정치마'의 '기다린 만큼, 더'라는 곡을 들으면 사뭇 숙연해진다. 해당 곡은 극중 주인공 '도경'이 죽음을 예지하는 장면에 주로 삽입되었는데, 로코물의 해피엔딩으로 가기 위한 과정 치고는 너무나도 처연했기 때문이다.


Memento mori


도경의 예지력은 종국적인 삶의 결말에 후회할 일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주위의 시선보다는 나의 내면의 목소리가 말하는,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라는 긍정적 메세지를 전해 준다. 인생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결정의 순간 이러한 선택 방법은 효과적일 때가 많다. 세상의 거의 모든 일은 일방적으로 장점 혹은 단점만 있지 않고 장단점이 혼재하여 판단 기준이 모호할 때가 많기 때문에, 결정을 방해하는 잔가지를 치워줄 하나의 최우선 기준이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그리고 행동경제학에서 얘기하듯, 이성적으로 간주되나 사실은 비이성적인 측면이 강한 인간에게는 '손실 회피'라는 마음이 잠재하여 객관적으로는 동일한 가치로 보이더라도 얻는 것보다 잃는 것에, 좋은 기억보다는 후회에 대한 가중치가 크다는 점도 염두해 둘만 하다.


이렇듯 끝을 생각하며 후회를 지양하는 삶의 자세를 갖다 보면 현실의 고통에는 어느 정도 초연해질 수 있다. 가령, 욱하는 마음에 내던질 뻔한 사표를 다시 한번 가슴에 묻을 수 있다. 또한, 삶의 가치에 대한 판단 기준도 보다 명료해진다. 죽음을 앞둔 순간 무엇을 가장 후회할까를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레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갖게 된다. 특히 아이의 경우 빠르면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는 함께 시간을 보내기가 어려워진다고 하니, 마치 시간이 정해진 노래방처럼 곧 다가올 끝이 아쉬울 따름으로 오늘에 집중할 동력이 된다.


반면, 조금 과할 경우에는 그 부작용도 만만치가 않다. 생각이 지나치게 멀리까지 뻗쳐 일상의 색깔이 푸르스름해질 위험이 있다. 아이와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결국에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떠날 것이구나 생각하면 이내 우울해진다. 부모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계실 때 잘해 드려야지 생각하는 마음의 이면에는 언젠가는 떠나시겠구나, 그때는 어떤 마음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경쾌했던 리듬감은 이내 사라지고, 단조의 무거움이 남는다. 도경의 예지력을 엿보는 순간, 인생이 로코물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유쾌할 수만은 없겠구나라는 교훈이 원하든 원치 않든 부록처럼 딸려올지 모른다.




비가 내리고, 주로 계절이 바뀔 때 즈음이면 종종 이런 상념에 빠져든다. 아직 가을은 멀기만한데도 몇일 좀 시원하다고 벌써부터 가을을 타는가 싶다. 뚜벅, 뚜벅 걸어가는 수밖에. 앞도 보고, 옆도 보고, 가끔 뒤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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