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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Sep 18. 2019

26. 선을 넘는 기술

(Week 13) 장티쳐의 가르침

선을 넘는 멘트가 인기다. 아슬아슬, 짜릿하다. 땅따먹기 게임하듯, 야금야금 신세계를 개척해 나간다. 멘트 자체도 중요하지만, 편집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자칫 방송에 여과 없이 나간 무리한 멘트는 화를 불러일으켜 사과를 강요당하고, 심지어 매장당하기도 한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앞서 수시로 선을 넘고자 했던 장동민씨는 지탄의 대상이 되었고, 최근 선을 넘고 있는 장성규씨는 스타가 되었다.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손꼽히는 기생충의 주된 메타포 역시 선이다. 관객들에게 고민해볼 것을 강요하기라도 하듯 이 영화는 끊임없이 선에 대해 얘기한다. 영화 속 빈부격차로 대표되는 사회계층 간의 선을 넘은 누군가는 죽임을 당하고, 누군가는 반지하보다 더 어두침침한 지하세계에 갇혀 살게 된다.


세상에는 유무형의 다양한 선들이 존재한다. 어떤 선들은 하나의 관습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다. 함께 사는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상호 존중의 사회적 합의는 견고한 선을 만든다. 한번 만들어지면 바꾸기 어려울뿐더러, 바꾸려는 시도는 불경스러워 보이기 십상이다.


다른 어떤 선들은 뜬금없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세계 지도를 펼치면 다양한 선들이 존재한다. 그 옛날 교황님께서 그어주신 선 하나로 언어가 달라진 브라질과 그 외의 남미 국가들. 대한민국의 휴전선과 아프리카에 가로세로 그어진 수많은 국경선들. 하지만 그 이유 및 과정과 상관없이, 이 선 역시 한번 만들어지면 굳건한 장벽처럼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선을 반드시 지켜야 할 불문율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여러 가지의 선이 이미 하나의 완성된 도형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안정적인 틀 안에 살다 보니 지키고 싶은 게 많다. 주인 없는 땅에 새로운 선을 확장해 나가는 건 가능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선을 침범하는 것은 곧 선전포고와 다름없다고 여긴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자유롭게 선을 넘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들은 선이란 늘 열려 있는 개념일 뿐, 영원히 고정된 건 없다고 믿는다. 이를 정치하는 분들은 혁명이라는 말로, 경영하는 분들은 혁신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비록 허황된 구호일 때도 많고 부작용도 만만치 않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진취적 향기에 매료되곤 한다.


계속해서 선이 화두가 되고 선을 넘는 멘트가 호응을 얻는 것을 보니 무언가 지키고 싶은, 혹은 무언가 변화를 바라는 에너지가 응집되고 있는 모양새다. 다만 누군가는 매장을 당할 때 누군가는 인기를 얻는 것을 보면 분명 기술의 차이는 있어 보인다. 하수들은 다자고짜 와서는 뒤통수를 후리거나, 혹은 무궁화 꽃이 피어나듯 살금살금 몰래 다가온다. 삭발처럼 뜬금없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반면 고수들은 유쾌한 리듬으로, 선을 넘지 않는듯한 자세를 취해 상대방을 무방비 상태로 만든 뒤 부지불식간에 선을 넘고는 성과를 독식한다.


선을 넘거나 파괴해 봤자, 또 다른 선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면 누군가는 또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갈등이 유발될 것이다. 허나 피할 수 없고 즐길 수도 없다면, 그 방법이라도 좀 세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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