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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Sep 20. 2019

27. 직장인에게 자격증이란

(Week 13) 샐러던트의 삶


대학을 졸업할 당시에는 입사 후 줄곧 공부를 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돌아보니 10년 이상의 직장생활 기간중 절반 이상 몇 개의 자격증 혹은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었고, 그럴 바엔 차라리 학교 다닐 때 고시에 도전해볼걸 하는 생각도 여러 번 들었다. 힘든 직장생활 와중에 내키지 않는 공부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하고 있는 동인은 다름 아닌 불안감이었다. 어느 정도 이름 있는 대학의 경영학 학사 타이틀이면 어디 가도 중간은 하겠지 생각했지만, 내가 속한 본부에서 일하는 동료들의 스펙은 상상 이상이었다. 국내외 석박사, 혹은 화려한 자격증, 혹은 누군가의 아들 딸. 비록 스펙이 업무 능력과 직결되지 않더라도, 능력을 키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무언가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학교로 돌아가는 것도 고려해 보았지만 불확실성이 너무 컸고, 누군가의 아들로 다시 태어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결국 남은 선택지는 자격증뿐이었다.


사실 현업에서 압도적인 내공을 보유한 분들의 경우 자격증에 별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라이센스로서의 자격증이 아닌, 금융업에 종사하는 직장인에게 투자 및 회계 관련 자격증은 그저 이론적 기반을 다져주거나 성실함을 보여주는 지표로써의 역할을 할 뿐, 업무 능력 혹은 돈을 버는 기술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막상 취득하더라도 내가 전보다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퇴근 후 그리고 주말마다 도서관에 틀어박혀 동영상 강의를 들을 시간에 차라리 실무에 좀 더 파고드는 게 어찌 보면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돈 냄새 풍기는 딜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 마무리짓거나, 독자적인 논리로 시장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분들을 보면 자격증이 무슨 소용일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가족 모두 미국 생활이 차츰 안정되어 가니 다시 무언가 공부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는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내면 그만이지 휴직 중에 무슨 공부냐는 생각이 앞서긴 하지만,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는 한 휴직을 선택한 와중에도 휴직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여지껏 경험한 바로는 한국식 교육 체계에 익숙한 나에겐 상대적으로 자격증 공부가 다른 공부보다 효율적이었다. 생각해보면 예의 그 한계에도 불구, 자격증 공부에는 무시할 수 없는 몇 가지 미덕이 있다.


1. 느슨해진 일상에 새로운 활력이 된다.

공부가 활력이 된다는 말이 자칫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정해진 마감 시간과 잘 짜여진 커리큘럼은 루틴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준다. 스스로를 옥죄는 냉정함이 부족하다면 무언가의 힘을 빌어 보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2.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명확하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은 자격증 공부에 잘 어울린다. 대개 자격증 시험은 엄청난 창의력을 요하지 않고, 답 없는 문제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한걸음 두걸음 정도를 걷다 보면 성과가 뒤따르고, 그렇지 않으면 낙오한다. 다른 인생공부와 달리 과정과 결과가 매우 뚜렷하다.


3. 비교적 관대하다.

한두번의 실수로 당락이 좌우되는 시험과는 달리, 대부분 자격증 시험의 합격 기준은 상당히 관대하다. 절반보다 조금 더 높은 정답률에도 합격증을 줄뿐더러, 상대평가인 경우 문제가 어려울수록 합격하기 쉬운 경우도 종종 있다. 간혹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문은 과감하게 포기해도 대세에 지장이 없고, 중간에 접더라도 크게 손해볼 게 없다.


4. 나를 포장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는데 도움이 된다.

비록 업무 능력이 드라마틱하게 향상되지는 않더라도, 공인된 타이틀은 해당 분야에 이해도가 높을 것이라는 신뢰감을 준다. 때로는 직장 내 새로운 업무에 도전할 기회를 주기도 하고, 또한 언젠가 하게 될지 모를 이직에도 도움을 준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기에, 어쩌면 다시 몇 년 걸릴지 모를 새로운 시작이 망설여 지기는 하다. 휴직 중 무슨 일을 했던 간에 복귀하면 그저 푹 쉬고 온 사람으로 비춰질 것이고, 떨어진 감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다. 그렇기에 휴직이라는 제한된 시간 동안 실질적으로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는 편이 현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입사 후 찾아왔던 불안감의 재발인지, 아니면 자존감의 발로인지 다시 한번 무언가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자격지심을 줄여 주기에 자격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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