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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Jul 02. 2019

3. 아이의 첫 영어수업

(Week 1) 왜 나는 영어를 잘 못하는가

미국으로 건너온지 고작 3일밖에 되지 않았으나, 2주후 시작될 섬머캠프와 2달후의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좀 무리해서 아이의 튜터링(영어 과외)을 시작하였다. 튜터링을 소개, 연결해주는 웹사이트를 통해 만난, 한국말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미국인 선생님을 마주하게 하는 일 또한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나, 매도 먼저 맞는게 낫겠다는 심정이었는지 혹은 어쨌든 조금이라도(가령, "화장실 가고 싶어요" 라도) 배우는게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내와 상의 끝에 우선 2주간 스케줄을 잡았다.


'내 아이인지라, 내 성격을 닮았다면 참 힘들어할텐데...'


라는 걱정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였다. 나의 경우 최소 10년 이상을, 구식이든 요즘 방식이든 간에 정규 교육과정 혹은 해외 파견 등을 통해 영어를 접하고 배워왔음에도 여전히 어버버버 하니, 왜 이모양일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난 잘 모르는 사람과 얘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더 나아가


'난 얘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핑계라면 핑계겠지만, 죽기 살기로 영어 공부를 안했다는 사실 외에, 잘 못하는 이유로 스스로에게 내린 진단이었다. 아주 친한 친구들과의 자리에서는 떠들고 싶지만, 조금만 어색한 자리 혹은 초면인 경우에는 거의 얘기를 하지 않는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과도 그렇다. 이는 잘 모르는 사람과 의미 없는 근황 토크를 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말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어려서도 가령 아홉 가지 잘하고, 한 가지를 못한 경우에도 내 머릿속은 잘못한 그 한 가지로부터 쉽게 해방 되질 못했던 것 같다. 한번 내뱉은 말은 절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어른들 말씀을 철석같이 믿고는 더욱 조심하게 되고, 조금 친해졌다고 툭 던진 한마디가 돌이켜보면 실수였다는 생각으로 후회하는 일도 잦았다.


그러다 보니 말하기 전에, 이 말을 했을 경우 상대방의 반응을 지레짐작해보고는 말하기 자체를 꺼리게 되는 일이 허다했고, 이러한 성격은 사회생활에도 이어져서 전화보다는 메신저, 메신저보다는 메일을 선호하게 되었다. 더러 매사 진지하고 실수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칭찬받는 일도 있었지만, 툭 터놓고 시원시원하게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누군가에게는 고구마 백만 개쯤 먹는 심정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외국어를 잘 구사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는 성격은 아닌 것 같다.




이런 나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이가 과연 난생처음 보는 미국인 선생님과의 첫 수업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가득 안고, 첫 번째 수업을 멀찌기서(책 읽는 척하며 곁눈질로) 지켜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당연하게도 99%는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다가, 아는 단어가 하나 나오면 Yes or No, 혹은  한 단어로 대답. 약 30분쯤 지나고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라는 뜻의 다양한 영어 표현들. 5가지 문장을 들려주시고는 번갈아 가며 말하라고 일러주신다. 열심히 반복해서 따라하는 모습이 측은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그렇게 몇십분의 시간이 더 흘러가 첫 수업은 마무리되었고, 나는 혹시라도 아이가 크게 상심하여 미국 생활이 너무 싫다던가 선생님이 너무 어렵다던가 하는 피드백을 주면 어떻게 해야하나 노심초사하였으나, 돌아온 대답은


"선생님이 나 영어 잘한대."


어라, 로또 맞은 기분이었다. 몇가지 아는 단어를 포착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해(가령 Pizza 라는 단어가 들리면) 아는 단어로 짧게 대답하고(I like pepperoni pizza), 저는 이해 못합니다를 끝없이 반복한게 대부분이었던 것 같은데도, 중간중간 선생님께 들은 "Awesome", 'You are so good" 같은 칭찬이 머리를 꽉 채운 모양이다.


'다행히도, 나와는 달리 시무룩한 59분 보다는 칭찬받은 1분을 기억하는구나'


(첫날 주요 대화 대용)



그러고는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 아이폰 시리(Siri) 에게 이것저것 아는 단어를 조합하여 간단한 질문을 던지고는 잘 알아 듣는지, 무슨 대답을 하는지 기다리는 일을 마치 게임하듯 한시간째 계속하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내일 영어 수업 또 하는거 괜찮아?


물어보니


"응, 선생님 말이 좀 빨라서 그렇지, 재밌는 분 같아."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독립한 이후에는 신으로부터 독립했다고 생각하였으나, 아이의 일에 관해서는 종종 다시 찾게 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모국어가 그리웠는지, 한글로 사람을 그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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