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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Jul 05. 2019

4. 잘 살자, 잘 사자

(Week 2) 쇼핑의 천국에서 미니멀 라이프 추구

출국 전 짐 정리를 하며 결국 또 한참을 버렸다. 치워도 치워도 계속 나오는 안 쓰는 물건들, 쓰레기라 부르기엔 미안해지는 불과 몇 년 전 구입한 옷과 생활용품들이 그득하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서 미국, 미국에서 한국, 또다시 한국에서 미국으로 짐을 부치다 보니 깨달은 사실.


'최근 1~2년간 쓴 기억이 없는 물건은, 가져가 봤자 쓸 일이 없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깨달음은 사람을 자신감 넘치게 만들어준다. 예전 같았으면 실오라기 하나 버리는데도 한참을 고민했겠지만, 지금은 사람도 들어갈만한 100리터 종량제 봉투에 안 쓰는 물건을 넣는 일에 거침이 없다. 불과 1년 전에 산 옷이며 신발을 재활용함에 넣는 일에 그다지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어차피 안 쓰는데, 이미 지나간 매몰 비용(sunk cost)은 생각지 말고, 내게 주어진 공간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얼른 정리하는게 최선이야.'


아이 방 장난감 상자 속, 아이가 몇 년 전 가지고 놀던 인형들은 추억이 묻은지라 잘 버려지지가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으리란 것을 확신하기에 대부분 버리거나 동네 커뮤니티 카페를 통해 기증하였다.




그리고 이제, 또다시 빈 집을 마주하고 있다. 얼마 후 한국에서 부친 짐이 도착하면 어느 정도는 채워지겠지만, 다시 시작한다는 설렘과 비어 있다는 공허함은 오묘한 시너지를 만들어, 당분간 우리 부부의 손가락은 무의식적으로 Amazon을 검색하고, 발걸음은 Ikea를 향하게 될지도 모른다. 더욱이 화폐 단위도 한국에 비해 1/1,000 수준이니 묘한 안도감을 준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논의된 리디노미네이션은 가계 입장에서는 부정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비었다고 꼭 다 채울 필요는 없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순식간에 다 털린다."

"유학 기간이 2년이라면, 1년 반 동안 계속 사고, 남은 반년은 팔거나 버라다가 오더라고."


요즘 아내에게 종종 하는 말이다. 은행 잔고가 뚝뚝 떨어질 테니 조심하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지만, 행여라도 과소비 중이니 자제하라는 말로 들릴까 조심스럽긴 하다. 다행히 아내도, 요즘 돈 쓰는 게 무섭다고 한다. 초기 지출이 워낙 많으니 분명 그렇게 느낄 것이다. 하지만, 곧 생활이 안정되고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았던 한국에서와 달리 잔잔한 일상을 지내다 보면, 분명 꿈틀대는 시점이 올 것이다.


인간은 무언가를 더 많이 갖고 싶도록 진화되었을까. 무소유보다는 소유의 유전자가 적자생존의 법칙에 더 부합하는 것인가. 이 넓은 땅덩이에 당일배송의 기적을 일구어 나간 미국 유통업체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분명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만 같다. 더군다나 독립기념일, 블랙프라이데이처럼 Public Holiday면 어김없이 세일 이벤트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지니 스스로 중심을 잘 잡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다.


"난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은, 더 이상의 옷은 사지 않겠어."


옷장 정리하다 엉겁결에 질러 버린 말인데, 일종의 다짐이 되어 버렸다. 최근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며 옷을 정리하는 내용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25벌로 살아가기, 계절별로 30벌만 남기고 정리하기 등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패스트패션에 반기를 드는 의미 있는 움직임으로 보였다. 쇼핑에 전혀 흥미를 갖지 않는 나조차도, 매번 이삿짐 정리를 할 때면 놀라울만치 쌓여있는 옷들을 발견하곤 한다.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속옷을 제외하고는, 꾹 한번 참아보자.


'잘 사야, 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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