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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Nov 22. 2019

45. 계산병이 도졌습니다

(Week 22) 백 번의 도시락


정갈한 한 상, 흰쌀밥에 국과 몇 가지 반찬이 차려진 식사를 할 때면 눈대중으로 그 양을 짐작해본다. 밥에 비해 반찬의 양이 적당한지, 모자람이 없다면야 상관없지만 만약 부족해 보인다면 밥 한 숟가락에 얹어야 할 반찬의 양에 대한 정밀한 계산이 필요하다. 다른 누군가가 암묵적인 할당량을 초과하는 만행을 저지른다면, 재빨리 밥 대 반찬의 비중을 조정할 뿐 아니라 조금씩 밥공기 안에 최소한의 필요량을 비축하려는 생존본능도 서슴없이 드러낸다. 정 없으면 쌈장이라도.


늘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그리하여 계산한 대로 살아가려는 사소한 버릇이다.




술집에 가서는 메뉴판을 훑어봐 대략적인 가격을 머릿속에 입력하고는 첫 주문, 추가 주문에 대한 기억을 쌓아두는 덕에 악의적인 주문 오류를 잡아낸 것도 여러 번. 마트에 가서도 결제 금액을 맞추는 혼자만의 놀이를 하는데 통상 그 오차가 정답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시간 약속에 대한 일종의 강박 증세를 느끼는 것도 이렇듯 계산하는 버릇과 무관하지 않다. 약속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늘 약간의 여유를 계산하여 일찍 출발하지만, 예상치 못한 정체에 도착 예정시간이 일분씩 늘어나는 모습을 볼 때면 더할 나위 없이 초조해지고 결국 운전이 거칠어진다. 시간 약속을 어기는 것은 타인에게 가하는 가장 악질적인 죄악이라 여기기에, 이를 가벼이 여기는 사람은 신뢰하지 않는다.


직장에서는 보고 일정을 기준으로 단계별 촘촘하게 시간 계획을 짜는 습관이 업무를 차질 없이 마무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어준다. 아울러 보고서 안 숫자들은 버릇처럼 가로 세로 합을 맞추니 큰 실수를 방지할 수 있다. 다만 스스로 마음속 정해둔 데드라인을 지키지 못할 것 같으면 위장이 살살 뒤틀려와 지나치게 예민해지니, 뭐든 과하면 건강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분명한 단점이기도 하다.




평균적인 기대 수명의 절반 가량을 넘어섰다는 생각이 들자 계산하는 버릇은 한층 심화되어, 남은 인생에서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계산하기에 이르렀다. 내게 마흔은 분명 근거 있는 두려움이다. 당분간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압도적이라는 사실에서는 그분들과의 관계가 내 인생에서 적지 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한편,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제한된 시간을 좀 더 밀도 있게 사용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러한 생각은 뜻하지 않게 찾아온 휴직 기회를 덥석 물어버린 결정에도 일정 부분 기여한 면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이러한 계산병은 마음을 한없이 가라앉히기도 한다.


얼굴도 성격도 전혀 딴판이라, 핏줄 말고는 엮을만한 구석이 많지 않아 보이는 형과 나. 언젠가 친척 어르신께서는 한참을 유심히 쳐다보시더니, 귓불이 닮았네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십 대에 들어서며 번갈아 군대를 가고 곧이어 번갈아 해외로 나가더니 이제는 형이 아얘 영국에 정착을 해버려, 최근 이십여 년 간 같은 땅에 발 붙이고 살아본 기억이 없다. 앞으로를 생각해도 크게 다르지 않아 일, 이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하고, 한번 보면 이, 삼일 정도 만날 테니 길게 잡아도 남은 날이 과연 백일을 넘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옛 친구도 마찬가지이다. 한 때 없이는 못 살 것 같던 친구조차 몇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하니 지금의 흐름대로라면 앞으로 고작 열 번, 스무 번 더 보겠구나 생각이 들지만, 그런 생각할 시간에 그리운 사람에게 전화 한 통 하지 않고 글이나 쓰고 있는 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이런 부작용에 더 이상 쓸데없는 계산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제 버릇 개 못준다고 쉽사리 고쳐지지가 않는다. 정해진 휴직 기간과 그에 따른 미국 생활도 이제 곧 절반을 지나 쏜살같이 흘러갈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가는데, 문제의 발단은 다름 아닌 아이의 도시락이었다. 몇 가지 재료로 새벽마다 돌려막기를 하는 일에 지치다가도, 문득 헤아려보니 곧 마무리되는 가을 학기와 새로 시작될 봄 학기에서 휴일과 중간 방학을 제하면 앞으로 도시락을 싸줄 날은 고작 백일 남짓. 그 이후엔 과연 내가 아이의 도시락을 쌀 일이 있을까, 한 시절이 또 저물고는 추억으로 둔갑하겠거니 생각한다.


새로 돋는 새싹을 보며 잠깐 꾸벅 졸고 나면 돌아갈 시간이겠지, 겨울이 채 오기도 전이지만 계산은 늘 앞서 가기만 한다. 다가올 날에서 이미 본 것만 같은 데자뷰가 느껴지는 것은 결국 빼곡한 계획, 계산 때문. 또 몇 년 정신없이 일하고, 눈을 떠보면 아이는 이미 다 커있을 텐데 그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시간의 속도는 새로운 경험과 반비례하는 성격을 지녀, 틀이 잡힌 뒤에는 가속도가 붙는 법. 경험해 본 바로는 군생활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잘 들어맞는 편이었다. 때문에 어떻게든 기를 쓰고 새로운 일들을 찾아 나서거나, 판에 박힌 흐름을 바꾸거나, 혹은 '현재에 집중하라, 오늘을 살아라' 이런 뻔한 경고를 새겨 들으려는 노력이 있어야만 이 헛헛한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작은, 백 번의 도시락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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