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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Nov 26. 2019

46. 쓸모없는 일의 쓸모

(Week 23) 변명으로 연명하다


'도대체 이런 일을 왜 하는 건지...'


도무지 쓸모가 없어 보이는 일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가 있다. 주로 영업, 매출, 수익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리서치 성격의 일들인데, 일회성 보고에 그치고는 별다른 쓰임 없이 이내 잊혀버린다.


가령 과거 북핵 위기가 고조되었을 무렵에는 금융시장 동향 점검이나 대응 방안 수립과 같은 업무가 발생하는데 지시하는 사람도, 지시받아 수행하는 하는 사람도 기대치가 높지 않다는 점에서는 별반 다를 바 없다. 과거 사례를 조사하고 전문가로 추정되는 사람의 의견을 듣고는 예상한 결론에 도달하는 수순으로 흘러가며, 예상치 못한 답이 제시하면 오히려 문제가 된다. 당장의 경거망동보다는 차분히 상황을 지켜본 뒤 대응하자는 식으로 뒷사람에게 바통을 건네지만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고, 시간의 흐름으로 자연스레 상황은 종료된다.


애당초 그저 그런 일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그런 일들을 하는 데에는 몇 가지 변명이 뒤따른다.


우선, 비록 당장은 취해야 할 대응 전략은 없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신호로써의 역할이다. 부끄러운 관료주의적 발상일지라도 그조차 안 할 경우 더욱 커질 수 있는 잠재적인 불안과 잡음을 사전에 차단해 주기에 소정의 가치는 찾을 수 있다는 논리인데, 큰 조직일수록 그런 면이 강하다.


다음으로는 관찰자로서의 역할이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하나의 계기가 촉매제가 되어 현상을 진단하고, 분석하고, 돌아볼 사료를 생성하게끔 해주는 동기가 되어준다. 인상적인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하는 한 이 또한 구차하게 들리겠지만, 종종 뜻밖의 현실을 마주할지도 모르니 차분이 들여다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다만 더 시급한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때로는 살아있다는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쓸모없어 보이는 일이라고 무조건 가치 없다 치부한다면 어떤 조직, 특히 스텝이라 불리는 곳의 사람들은 때때로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해 말라버릴지 모른다. 줄곧 가치 있는 일만 할 수는 없는 노릇. 막상 가치를 찾으려 해도 찾아지지가 않을 경우 쓸모없는 일이 오히려 가치를 줄 수 있다는 게 아이러니지만, 종종 찾아오는 틈을 메꿔주기에 계속해서 발자국을 이어나갈 수 있다. 조직은 살아있는 생명과도 같아 그렇게 버티다 보면 어느새 또 새로운 가치를 향해 나아가게 되고, 그리고 깨닫는다. 그들도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끝으로, 사실은 무척 가치 있는 일이었는데 다만 내가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문제는 좀 더 복잡한 데, 고통은 장기화되고 대개 중이 떠나야 한다는 식으로 결론이 난다.




쓸모없는 일들, 더 나은 일을 찾지 못해 어찌할 수 없이 해야만 하기에 차라리 그 안의 쓸모를 찾고자 하는 노력은 과연 쓸모가 있을까, 여전히 쓸모없을까. 그런 쓸모의 있고 없음을 누가 알고나 있는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그저 변명으로 또 하루를 연명한다.







글을 쓴다. 자전적 에세이, 어떤 날은 누군가의 마음을 간지럽힐지 모르겠구나 기대하면서도, 또 어떤 날은 고작 초점 없는 넋두리 따위라고 스스로를 폄훼한다. 그런 글은 아무 가치 없다며 손을 놓으려 하다가도, 쓸모없는 일에도 나름의 쓸모가 있다며 애써 생명선을 연장하니 아마추어 작가의 고민이다.


'내가 퍼낸 흙으로 쌓아 올린 산이라도,

정상은 정상이다.'


젠장, 뻔뻔한 사람 같으니. 그런데 그 뻔뻔함도 그토록 갖고 싶었던 하나의 가치 아니었던가.


그저 변명으로 또 하루를 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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