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r Gray Jul 10. 2019

6. 종교 이야기

(Week 3) 간헐적 신앙인, 이기적 신앙인

'한평생 독실하게 기도하며 살아가야만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한평생 냉담하다가도 죽음을 앞둔 순간, 비로소 진심으로 뉘우치더라도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앞날을 예견한 채로 냉담자로 살아가다가, 마지막 순간 눈물을 찔끔 흘려도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만은 도저히 괘씸해서 안 되는 것일까'




국민학생 시절, 토요일 오후 3시쯤이면 어김없이 위층 친구가 경쾌한 발걸음으로 나를 찾아 주었다.


"OO야, 성당 가자~"


원체 내성적인 성격에,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주말마다 나를 찾아오는 친구는 더없이 소중하였다. 토요일마다 조금 미리 만나 WWF 레슬링도 함께 보고, 방학 때면 새벽 미사와 여름 캠프에 함께 다니는 등 금세 삶의 큰 부분을 함께해 주었다.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은지 오래지만, 그때의 나는 많은 것을 의지하였고 위로가 되어 주었음에 감사한다.


몇 년 후 다시 둔촌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어김없이 성당을 찾았다. 중학교 입학 후 이사를 온 지라 전학을 가지 않은 채로 또다시 친구가 없는 동네에 살게 되었으나, 걱정할 게 없다 집 앞엔 어김없이 성당이 있으니. 중고생 시절 성당은 내게 교실이자 동아리실, 놀이터이나 쉼터였다. 주말이면 전례부 혹은 성가대 활동을 하고 여름, 겨울 방학이면 거의 성당에 살다시피 하였다. 딱히 신앙심이 있었다기보다는, 그곳에 가면 늘 있는 친구들이 너무 좋았던 것 같다. 함께 노래하고, 연극 공연을 하고, 봉사활동을 하고, 멋모르고 쫓아간 야산에서 연합고사를 앞두고는 백일주를 마시고, 수능 전 긴장감을 누그러뜨리고. 그 어떤 경쟁이나 목적 없이 함께 할 있는 친구가 있는 자리.




혼배성사를 위한 아내의 세례를 제외하고는, 그 후 성당을 다시 찾는데 무려 15여 년이 걸렸다. 첫 번째 미국에서의 고요한 주말 아침. 토요일은 주로 같은 아파트의 미국인 친구와 하이킹을 가고, 일요일은 한인 성당에 갔다. 외로우니깐 사람이라지만, 외로움을 달래고픈 사람이었나 보다. 한 시간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성당이 좋았다. 기도는 매번 했지만, 친구가 없는 날이면 내심 허전했던 걸 보면 뭐가 더 중요했던 건지.


(도라빌 한인 성당. 2년 만에 다시 뵌 주임 신부님이 무척 반갑다)


졸업 후 귀국해서는 다시 냉담자로 복귀하였다. 가족과 함께, 혹은 직장 동료 및 친구들이 마음의 여백을 가득 채워주는 시절엔 주말이 너무나도 바쁘다. 노느라 혹은 쉬느라, 여하튼 그 짜임이 좋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 혹은 나의 가족이 곤경에 처할 때면, 달리 의지할 데가 없는 나는 다시금 성당에 가서 기도할 것이다. 간헐적 신앙인답게 평상시엔 모른 체하다가도, 필요할 때면 구원을 청할 것이다. 현생에서의 구원이 마음의 평온을 의미한다면, 지금까지는 늘 나의 기도를 들어주심을 경험하였다. 그렇기에, 아직은 멀다고 느껴지는 언젠가 죽음을 앞둔 순간이 오면 나의 아버지가 그러하셨듯이 나 또한 다시 찾을 것이다.


이기적인 신앙인이라는 타이틀을 마음속 간직한 채, 아버지의 기일 나는 다시 또 성당을 찾는다. 그때 아버지의 기도를 들어주셨기를 부끄럽게도 진심으로 기도하기 위해. 형과 엄마가, 아내가, 아이가, 내가 잘 지내기 위해.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매거진의 이전글 5. 계획대로 되지 않는 즐거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