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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부메랑 Oct 16. 2017

내 길의 소중함

진정성 있는 자세로 내 삶을 바라보기

한 때 나도 꿈 많은 고교생이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스쿨버스를 타고 시골 구석에 위치한 학교에 가는 버스 안에서도 꿈을 이루어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영어 단어장을 보고 가기도 했고,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 되면 "이제 공부 시작이다"라는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며 창틈으로 들어오는 새벽 공기를 느끼면서, 나의 오른손에 넘겨지는 책장 소리를 벗 삼아 공부했었다. 지금 그렇게 하라면 삼일 이상하기 힘든 그런 생활을 삼 년 동안 했다는 것은 정말 나로서도 대견스러운 일이다. 그런 삶을 견디게 해 준 것은 내 가슴 안에 있던 꿈이다. 나는 항상 꿈을 그렸고, 그 꿈이 이루어지는 상상을 하면, 당장 그 꿈을 이루는 것은 아니어도 하루를 열심히 살면 그 꿈에 다가가는 듯한 그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밤늦게 오던 길, 학교 스쿨버스에서 새벽이 되어 집 앞에 내려 집 문을 열고 들어오던 순간의 그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내 가슴에 귀한 자산으로 남아 있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누구나 꿈을 꾼다. 꿈을 꾸지 않으면 이 냉엄하고 건조한 세상을 즐겁게 살기가 힘들 수도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현대인들은 항상 누군가에게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압박감 속에서 살고 있어서 그런 거 같기도 하다.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아마 대부분은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 더 나아가 제1의 일인자가 되려고 오늘 하루도 아침잠을 이기고 새벽 전철에 몸을 싣고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에 한국 사회는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사회에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고 본다. 물론 당시 2002년 월드컵은 그 결과뿐만 아니라 4강에 이르는 그 과정도 너무 드라마틱했고, 4강에 따라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보상과 그 선수들이 이후 해외 진출을 하며 이뤄낸 지속적인 성과도 국민들에게 굉장한 자신감과 자극을 주었다고 본다. (98년 IMF로 경제적 공황상태에 빠져있고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게 0:5로 대패하고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서 누가 몇 년뒤 한국 선수가 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토트넘에서 활약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을까?) 물론 2002년 월드컵이 한국 사회에 전적인 영향력을 주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 사회가 그 이전에 오랫동안 노력해온 곳들이 결실을 맺었고, 그것이 2000년을 넘어가면서 점차 그 열매를 맺었고, 그 시기에 월드컵에서도 히딩크라는 명장을 만난 행운이 덧붙여져서 좋은 결과를 낸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어린 학생들과 운동선수들, 기업체들이 너도 나도 세계를 무대로 도전하기 시작했고, 한국인 특유의 뚝심과 인내, 노력으로 좋은 성과와 결실을 냈다. 다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런 성공 추구 주의에 짙게 물들어 가는 사회의 그 반대급부에서 피어나는 냉소와 비웃음도 많이 목격했다. 많은 경쟁 사회가 그렇겠지만, 한국사회도 무척이나 성과위주의 사회이며, 성과와 결과는 그 사람의 계급과 명예가 되기도 하지만, 그런 굵직한 성과와 결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무시와 편견도 생겨나는 모습도 종종 목격했다. 이런 모습은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퍼져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가끔 건널목에서 옆에 서있는 중고교생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그 내용과 단어가 굉장히 호전적이고 상대방을 판단하는 표현하는 종류의 것들이라는 것을 쉽게 느끼게 된다.


"야야, XXX가 그래도 수학은 우리 학교에서 제일 잘하지 않냐? 그 애 A대학 B학과 수시로 지원한다던데 잘 될 거야 그렇지?"

"웃기지마, OOO가 XXX는 수학으로 그냥 발라버릴걸? OOO도 지금 A대학 B학과 쓸지 말지 고민 중이라던데 XXX가 무슨!"


나는 지하상가나 건널목에서 내 옆에 있던 십 대들이 이런 질감의 대화를 하는 것을 내 의도와 상관없이 종종 들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대화는 20대에 군대나 회사에서도, 30대에 직장과 집에서도, 40대에도, 그 이후에도 이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생각이 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꼭 무엇을 뛰어나게 잘하고 1등을 해야 대접을 받고 이른바 "까방권(?)"을 얻게 되는 것일까? 야구를 해도 이승엽이나 박찬호 정도 활약하고, 축구를 해도 박지성이나 안정환 정도 해서 다른 선수를 모두 발라(?) 버려야 직성이 풀리고 그래야만 우리는 그들을 존중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가끔 고교야구를 즐겨 본다. TV에 중계되는 야구장에서 뛰는 그들의 풋풋한 열정과 겸손한 성실이 느껴져서 좋다. 물론 그 선수들은 모두 무명 선수들이다. 그래서 더욱 그들의 플레이를 유심히 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 고교야구 대회도 보지만 나는 기회가 되면 일본 고시엔 야구대회도 본다. 야구장에서 뿜어대는 고교생들의 꿈을 향한 순수한 일념이 내 안에 오랫동안 때 묻어 있던 고교시절의 초심을 꺼내놓게 만든다. 나는 고교시절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가? 지금 이들은 야구장에서 무엇을 위해 땀 흘리고 허슬플레이를 마다하지 않고 동료와 학교를 위해 플레이하는가? 그들은 욕심이 없다. 그들의 머리와 가슴에는 꿈과 목표만 있다. 그들은 목표와 꿈, 그리고 그 꿈과 목표에 근접해 가는 나 자신을 비교하기에만 바쁘며, 남과 나를 비교하는 데는 굳이 많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기름진 성취욕과 거만함은 없고 담백한 의무감으로 가득한 고교 야구선수들. 나는 그래서 고교 야구선수들을 존경한다.


갑자기 한 선수가 떠오른다. 내가 한창 군 생활을 하던 98년 어느 날 스포츠 신문에 만화에나 나올 법한 제목이 눈에 띄었다. 

"일본 고시엔 대회 결승 노히트 노런"


그렇다. 많은 야구팬들이 알고 있는 당시 요코하마 고교의 마쓰자카 다이스케였다. 사진 속 그는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뒤 2루 쪽을 보고 양 손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고, 그 뒤에서는 마운드에서 포수가 희열에 찬 표정으로 그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이 선수가 일본 야구의 성지 같은 고시엔 대회 결승에서 최고 구속 150km/h를 넘기며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것도 대단했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 선수가 그 전날과 전전날인가도 준결승과 준준결승을 거치며 250구 이상의 투구를 기록한 상태에서 그런 결과를 냈다는 점이었다. 


                                                         마쓰자카 다이스케                  사진 출처: 일본 야구 박물관


그 이후 나는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내가 살던 아파트에는 일본 BS방송이 중계되어서 가끔씩 세이브 라이온스에서 활약하던 마쓰자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목표를 생각하는 의무감, 그리고 자신의 팔을 믿는 자신감과 여유, 그리고 성실한 훈련의 삼박자가 이어지며 그는 승승장구했고, 팀을 우승시키기도 하고, WBC 최고선수상도 타고, 자국리그 사와무라상도 수상하면서 일본의 대표투수로 자리를 잡아갔고, 이윽고 07년 보스턴 레드삭스 선수로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된다. 그 이후의 활약은 다들 알다시피 그의 이전 명성에 걸맞지 않는 모습을 주로 보였고, 그는 현재 일본에 돌아와서 재활치료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내 폴더에는 그에 대한 많은 사진과 동영상이 있다. 그러나, 내가 최고로 뽑는 그의 사진은 역시 98년 18세의 요코하마 고교 투수로서의 마쓰자카 다이스케다. 지금과는 너무 다른 깡마른 체형이지만, 그의 눈빛은 살아있고, 그의 제스처와 투구폼은 정말 의젓했다. 그리고 고교시절과 세이브 라이온스에서 활약하던 그에게서 찾은 가장 큰 장점은 그가 완투를 자주 했다는 점이다. 그가 의도적으로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세이브 라이온스에서 활약할 당시에도 완투를 자주 했다. 완투승을 기록하던 그도 멋있었지만, 더욱 멋있었던 모습은 그가 2:1로 지고 있던 팀을 위해 9회까지 공을 던지며 완투패를 하던 때의 모습이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완투패 장면만 해도 5번은 넘는 것 같다. 비록 9회까지 공을 던지고 패전을 안고 마운드를 내려갔지만, 그의 등에서는 전혀 패배감이나 초라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그의 역할을 무던히 하고 내려간 것뿐이다. 나는 아마 마쓰자카가 고시엔에서 완투패로 준우승을 했어도 그를 좋아했을 것이다. 나는 그의 눈빛과 의젓한 투구폼을 보고 나의 고교시절 내 가슴에 있던 그 무언가를 오랜 기억 속에서 다시 끄집어내서 볼 수 있었고, 내가 그동안 참 많이도 내 마음의 초심에 많은 기름때를 묻혀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고교생 마쓰자카의 사진을 보면서 "세상의 잣대와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만의 목표를 향해 한걸음씩 다가가며 일상을 소중히 하는 마음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다. 



얼마 전 유튜브를 통해 Pesce라는 여성분의 연설을 들었다 (링크: https://www.ted.com/talks/bel_pesce_5_ways_to_kill_your_dreams) 그 분은 브라질 여성인데 MIT에 유학을 가서 해당 분야 전문가로 성공하게 된 사람이다. 그 분의 연설을 요약하면, "성공을 망치려면 다음 5가지를 해라"였다.



1. 성공은 한 순간에 이루어진다고 믿어라.

2. 다른 사람이 당신을 위해 답해 줄 수 있다고 믿어라.

3. 성장이  확실하다고 느껴질 때 안주하라.

4. 잘못은 다른 사람이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믿어라.

5. 나의 성공 성취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어라.


그 분의 메시지를 요약하면, 결국 인생은 매 순간 성실하고 겸손히 살다 보면 종종 작고 또는 큰 성공을 하게 도는 것이며, 결코 성공 자체를 목적으로 허우적거리지 말고 매 순간 삶을 여행처럼 즐기고 열심히 삶에 임하라는 것이었다. 그 분의 경우 그가 MIT에 합격했을 때 주변에서 대박이라고 평한 사람도 있었지만, 본인은 그 결과를 위해 어린 시절부터 17년 동안(초등학교부터) 열심히 공부해온 것에 대한 결과라고 본다고 한 점이 인상 깊었다. 


인생을 매 순간 여정이라고 생각하고 내 인생과 길을 소중히 여기고 한 걸음씩 걸어가다 보면 결국 작고 큰 성공을 맛보게 된다는 말을 사실 쉽게 행하기는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특히 사회가 개인의 성취와 성공에 대해 압박을 가하고 개인 간의 경쟁심리를 지나치게 부추긴다면 더욱. 그러나 나는 마쓰자카를 비롯한 고교생 야구선수들과 이 브라질 여성의 말을 다시 떠올리며, 내가 갖고 있던 삶과 성공의 기준에 대해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매일 배트를 휘두르며 즐겁게 연습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빗맞은 땅볼도 나오고 안타도 나오고 때로는 홈런도 나오겠지만...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며 매일 열심히 배트를 휘두르는 그 자체이다. 안타와 홈런이 많이 나오면 물론 좋겠지만,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내가 내 스스로 생각했을 때 즐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면서 하루하루의 여정을 이어서 지금까지 왔다면, 나는 나중에 백발 노인이 되어서 내 인생을 돌이켜 봤을 때 큰 아쉬움이나 후회는 없을 것 같다.  


나는 한국사회가 더 이상 성과와 명성 등의 조건만으로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는 사회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사람의 꿈과 인생은 경시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가끔 성과와 명성, 그리고 연봉으로 사람을 평가하기도 하는데, 이런 사고는 결국 자신에게 덫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자신보다 앞서는 사람을 향해서는 머리를 조아리고, 나신보다 뒤처진다고 보는 사람은 무시하고 짖밝는 사람들은 자신의 그런 "판단하는 자세와 기준"때문에 결국 자기 보다 위에 있는 사람에 의해서 쫒기고 무력해지고, 자기가 밟고 무시했던 사람들에 의해 추격받으며 압박감을 느끼는 삶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힘들것이다. 더 이상 남을 의식해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과 성공이 아닌 나의 기준과 나의 꿈을 위한 나만의 소박한 삶을 설계하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며 인생의 참된 의미와 내 인생만의 고유한 길을 걸어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또 다른 방법이 아닐까 싶다.



사거리에 모여있던 차들이 결국 자기만의 행선지를 향해 가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다른 삶의 궤적과 목표, 그리고 꿈을 향해 가고 있다. 결국 철저히 다른 나만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나날이 치열해져 가는 경쟁사회에서 점점 빨리 달리면서 서로를 경시하고 그 위치를 측정해서 상대방을 판단하며 (Judgemental한 태도로) 비교우위에서 쾌락을 느끼기보다는 내 꿈과 내 일상의 위치를 조금씩 좁혀나가며 내 삶을 진정성 있게 바라볼 때, 남의 삶에 대해서도 겸손하게 바라보게 되고, 결국 타인도 진정성있게 대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사람 간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


닥터 부메랑 유튜브 채널에 방문해 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a2Hpyxxe7kozsCGldkUTqw?view_as=subscri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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