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남자는 자기만 모르는 자신만의 남자다움을 가지고 있다
지난 회차에서는 남자들을 부지불식간에 주눅 들게 만들고 불필요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하여 본인도 힘들게 하고 남도 힘들게 할 수 있는 "Boy Code"의 정의와 그 악영향 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간략히 Review를 하자면 보이 코드는 "남자는 이래야 제대로 된 남자고 올바르게 큰 남자다운 남자"라고 무언중에 퍼진 우리 사회의 암묵의 코드 같은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실재하지도 않는 그 보이 코드 때문에 많은 남자들이 "상남자 코스프레"를 하느라 본인의 감정과 자아정체성도 해치고 있고, 남들에게도 큰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지난 회차에 이어서, 이번 회차에 살펴볼 내용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Boy Code를 어떻게 예방하고 차단할 수 있는가?
Dr. William Pollock의 “Real Boys: Rescuing Our Sons from the Myths of Boyhood”의 내용을 요약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일단 윌리엄 폴락 박사는 남자아이들이 우리 예상보다 훨씬 일찍 사회의 보이 코드에 영향을 받기 시작하며, 부모의 애정이나 도움이 필요해도 직접적으로 부모에게 그런 것을 요청하기 힘들기 때문에 부모의 양육태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가 제시한 부모들이 남자아이가 보이 코드로부터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신문이나 TV를 보거나 요리를 하면서 아이가 묻는 말이나 아이가 보여주는 반응에 대충 반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관심과 호기심을 갖고 언제나 자기 옆에서 도움을 줄 준비를 하고 자신에게 관심 갖고 있는 것을 느낄 때 감성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네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라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주세요. 물론 많은 부모들이 매일 아이들과 대화하며 질문도 하고 호기심을 보이지만, 그가 말하는 것은 아이의 심리상태와 감정이 어떤 일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고 있고 그렇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면밀히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남자아이는 자신의 모든 감정을 솔직히 표현해도 부모가 그런 감정들을 편견이나 판단 없이 이해하고 존중해 줄 때 감성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아들이 늘 웃고 씩씩한 감정한 보일 때만 인정하고 슬퍼하거나 화를 낼 때 그런 감정이 마치 불건전하고 남자답지 못한 감정인 것처럼 치부해 버리면 아이는 차차 그런 감정을 억누르고 숨길 것입니다. 다양한 감정을 다채로운 어휘로 표현하는 훈련을 시키시고 아이의 다양한 감정과 그날에 겪은 일을 말하는 아들에게 판단하기보다는 공감(Empathy) 하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아들과 이야기하고 놀다 보면 친근함으로 칭얼대거나 불평을 늘어놓는 아들을 놀리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자 녀석 뭐 그런 걸 가지고 찡찡대냐?", "넌 그러다가 친구들에게 왕따 당하겠다", "어유 그래 가서 엄마젖 좀 더 먹고 와" 이런 말들이 그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부자지간에 가벼운 농담이나 격려 조의 말들이 아들이 불쾌하고 억울한 일을 이겨내는 데 어느 정도 힘이 되긴 하겠지만 고통스러운 감정을 토로하는 아들의 감정처리 과정을 놀림으로써 강제로 그 과정을 정지시키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남자아이가 여러 가지 경험과 감정을 소화하고 처리하는 과정을 표현하게 하면 점차 아이도 그런 상황에서 그런 감정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지 스스로 배우게 될 것입니다.
연구나 통계 등의 자료에 따르면 부모가 딸을 기르고 대할 때보다 아들을 대할 때 유독 더 많이 수치심을 갖게 할 만한 말을 한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자신이 자신의 아버지와 주변 어른들에게 교육받고 경험한 그대로 아들을 대하기에 그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일 텐데요. 아들이 무엇인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지? 너 그럴 줄 알았다"라며 이미 마치 아들이 악한 가해자인 양 몰아붙이거나 아들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판단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라는 말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게 해보세요. 수치심을 가하는 지적이나 훈계는 아이가 부모와 대화를 줄여나가거나 자신의 어려움과 고충을 숨기는 아이로 성장하도록 유도할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산만한 모습을 보이는 아이들은 대부분 간접적으로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에게 뭔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침착하게 "무슨 일이니? 왜 그렇게 화가 났어?"라고 물어봐 보세요. 남자아이들은 아직 직접적으로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을 표현할 능력이 많지 않기에 아마 자세히 대답은 안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이가 하는 몇 마디 대답에서 아이의 깊은 내면에 있는 상처와 얼룩을 파악하는 연습을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와 말할 때 부모는 묻고 아이는 질문하는 구조는 다소 일방적인 심문처럼 느껴질 수 있으니 질문을 하면서 간간이 부모도 "나도 가끔 너처럼 화가 난다" "나도 종종 슬퍼"라는 말을 하면서 아이가 속으로 "화를 내거나 슬픈 것은 이상한 것은 아니고 나만 이런 것이 아니구나"라는 공감을 갖게 만들면 더욱 부드럽게 대화가 이어질 것입니다.
종종 부모가 아이에게 지나친 사랑을 보이거나 아기처럼 대하기보다 빨리 아이가 홀로서기를 하도록 씩씩하게 키워야 한다는 논지의 칼럼들이 보입니다. 그러나 어린아이에게 빨리 독립적으로 부모에게서 떨어져서 홀로서기를 하게 하는 것은 자칫 아이에게 심한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남에게 내 아이를 강하고 씩씩하게 키운다는 것을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이 일부러 냉정하고 차갑게 키울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의 감정 상태를 예의주시하시고 자주 아이를 안아주시고 "사랑한다 아들아"라고 말해 주세요. 사랑을 표현한다고 해서 아들이 "소녀"처럼 자라거나 "삐뚤어진" 아이로 자란다고 보고된 예는 아직 없습니다. 물론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규칙을 위반했을 때는 엄하게 교육할 필요도 있지만, 별 다른 이유 없이 엄하게만 대한다고 해서 그 아이의 남성성이 발달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많은 남자아이들이 어린 나이 때부터 "남자답게" 생활하려고 은연중에 노력을 합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개인적으로 좌절하게 될 때, 감정적으로 슬프고 화가 날 때, 그들은 "어떻게 하면 남자답게 굴었다고 칭찬받고 인정받을까?"를 생각합니다. 남자아이들은 자신이 자기답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남자답다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특정 패턴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답게 행동하는 소신을 가질 수 있도록 아버지가 격려하고 인정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늘 무뚝뚝하고 근엄하게 씩씩하고 긍정적인 모습만 보이려고 하지 말고, 가끔은 아버지도 아들에게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종종 무엇을 걱정하고 슬퍼하는지 아들에게 이야기해주면 아이들도 자신의 내면에 있는 다양한 감정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존중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 "상남자"처럼 보이려는 불필요한 노력도 굳이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성장기에 아버지가 다양한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사람들은 굉장한 행운아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아버지가 평소에 개인적인 슬픔으로 우울해하다가 눈물까지 흘리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학교 생활, 미디어, 그리고 종교기관에서의 경험 등을 통해 남자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보이 코드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좁은 정의로서의 "남자 다움"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남자다움"을 살려가면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부모가 이런 것은 "남자들의 일과 역할"이고 저런 것은 "여자들의 일과 역할"이라고 너무 구분 짓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특정 성의 역할이 많이 통합되고 교체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예전 세대보다 성에 얽매이지 않고 요리사, 간호사, 군인 등의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남자는 이래야 한다"라는 협소한 보이 코드로 아이들을 얽매기보다는 "남자도 필요하면 울어야 한다"며 남자로서 해도 되는, 할 수 있는 언행 및 삶의 영역을 소개해 주면서 격려해 주세요. 남자다운 남자로서의 정의와 그런 남자가 되는 길은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남자아이들을 얽매는 이 사회의 보이 코드에 대해 살펴보고 그런 보이 코드를 극복할 수 있는 예방법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남자들만 모인 장소는 아직 많이 어색합니다. 군대 내무반, 남자들이 모인 회식자리, 남자들만 모인 놀이터 등에서는 긴 정적 속에서 서로의 서열관계와 힘과 실력에 기반을 둔 질서 확립을 신경 쓰느라, 그리고 어떻게 하면 "카리스마 있는 상남자"로 보일 수 있을까를 생각해서 그런지 많은 말들이 오고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임이나 단체에서는 건강한 문화나 대화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그 원인을 파고 또 파보면 보이 코드가 그들에게 악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경우가 많습니다.
"네가 나를 지금 무시하냐?"
"저 녀석 한 번 손 좀 봐줘야겠는데"
"야 임마! 남자답게 좀 살아봐. 남자가 그 정도는 참아야지"
이런 류의 관념들이 만약 보이 코드의 악영향이 없었다면 훨씬 편한 분위기에서 친한 친구로서, 동료로서, 선후배로서 지낼 수 있었을 남자들 간의 관계가 보이 코드때문에 경직되거나 험악한 분위기로 내몰려 가는 것은 아닐까요?
남자로서 가장 남자답게 살아가는 방법은 자기 자신답게 사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주지하시고 오늘부터 아들에게 한 남자로서 어떻게 하면 진중한 남자로서 성숙하게 성장해 갈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세요. 그 출발은 아버지인 자신이 일단 자기 자신의 스타일을 받아들이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이고, 나아가 부부생활에 있어서도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존중하고 대등한 파워를(Equal power)를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Mutual Empowerment) 사는 모습을 직접 아이들에게 본으로서 보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시된 방법과 교육법은 주로 부모로서 남자아이가 어떻게 하면 보이코드에 악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최적화 하면서 남들과 조화롭게 교류하는 삶을 살게 도와줄 수 있는지에 대한 것들입니다. 이미 어른이 된 독자들은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뿌리 깊게 박힌 보이코드 관념을 조절할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할 것입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실 쉽게 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제가 쓴 글을 찬찬히 읽으셨다면 아마 본인도 스스로 느끼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가령, "나는 지금 얼마나 나답게 살고 있는가?" "나는 군대에서 얼마나 상남자 코스프레를 했는가?" "내가 남들에게 화를 내는 이유는 그 사람이 나를 남자답지 않다고 느낀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경우가 많은가?" "나에게 남자다움이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면 자신이 얼마나 보이코드에 영향을 받아왔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독자분들이 스스로 그에 대한 해답을 마련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늦었지만 조금씩 개선할 여지는 분명히 있습니다. 사람의 인지와 관념도 사실 오래 누적된 버릇 같은 것이므로, 자신의 스타일과 색깔, 그리고 가치관에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을 떳떳하게 세상에 보여주고자 마음먹는다면, 자신의 온전한 향기와 색깔이 필터링 없이 세상에 당당하게 전달될 것이고, 그런 본인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남자다움을 정의하는 또 하나의 조각이라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이 보이 코드로 스스로에게 왜곡된 남성상을 강요하고 억압하는 남성들이 고개를 들고 당당히 자기만의 남자다움을 과시하며 풍성하고 자신감 넘치는 삶을 살게 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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