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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부메랑 Sep 02. 2017

스즈키 이치로를 이끄는 힘

그의 3,000 안타를 이끌어 준 원동력

야구를 꽤나 즐기는 편인 나는 한국에 있을 때부터 한국야구를 비롯해서 일본 야구, 그리고 가끔은 미국 야구를 봐왔다. 흔히들 그 3 리그를 "수준"이라는 잣대로 비교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냥 각 리그가 색깔이 다른 리그라고 생각한다. 같은 피자도 브랜드에 따라, 지역에 따라 맛과 향이 다르듯이 말이다.


선동렬 감독이 96년도에 주니치에 가면서부터 일본 야구에 관심을 서서히 갖게 되었는데 일본 야구는 뭔가 상당히 전자제품처럼 정교하고, 선수들의 경기에 임하는 자세도 갈급함을 넘어 종교적이기도 했다. 그래서 가끔은 일본 최대 스포츠가 스모가 아니라 야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종종한다.


이렇게 3국의 리그를 보다 보니 이치로를 97년 무렵부터 알게 되어 지금까지 보고 있다. 야구에 관심 있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그가 자국 리그인 일본 프로야구리그에서 이룬 업적은 정말 경이적이다. 풀타임으로 뛴 첫해인 94년에 일본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200안타를 쳤고, 이후로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인 2000 시즌까지 한 번도 수위타자 자리를 뺏기지 않았다. 미국에 와서도 야구 선수 일생에 한 번 하기도 힘든 200안타와 3할 타율을 데뷔하던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 연속 이루었고, 단일 시즌 최다안타 기록을 수립(262개, 2004년) 하기도 하고, 이후로 메이저 리그 통산 3,000안타를 수립하는 등, 이런 선수가 또 언제 나올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놀라움을 주는 선수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에 대한 이미지는 사실 얄미운 부분이 많았다. 야구를 너무 잘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가끔 TV에 나오는 그가 타석에서 투수와 대결하는 모습을 볼 때면 "삼진 한 번 먹어봐라"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가 단순한 프로야구선수로서 야구를 한다는 느낌보다는 뭔가 자기 수양을 하면서 야구 이 외의 다른 부분에 더 큰 목적과 삶의 동기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이 50을 몇 년 남겨두고도 여전히 열정과 성실을 잃지 않고 전력 질주하는 그의 동기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이치로는 1973년 일본 아이치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부터 프로야구선수가 되어 주니치 드래곤스에서 뛰는 것을 꿈꾸었다. 초등학생인 이치로가 일 년 중 360일을 야구연습장에서 연습했다고 하니 그 각오가 어떻했는지 상상도 하기 어렵다.  



고교시절에는 팀이 약체여서 큰 무대에서 뛸 기회가 별로 주어지지 않아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마쓰이는 고교시절부터 전국구 스타였으나 이치로의 고교시절은 그렇지 않았다. 이치로는 그러나 고교 졸업 직후 92년 드래프트를 통해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입단한다. 이치로가 92년 오릭스에 입단했으나 "이치로의 스윙은 야구의 기본에 어긋나므로 수정, 개조가 필요하다"는 당시 팀 감독 도이 감독의 판단에 따라 2군에서 전전했다.


방황하던 그를 2군 타격코치였던 가와무라 겐이치로가 격려하며 함께 "시계추 타법"으로 타격폼을 개조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는 그의 평생 은인 오기 아키라 감독을 만난다.


 1994년 팀에 신임 감독으로 오기 아키라 감독이 부임했고 오기 감독은 선수들의 개성과 자율성을 존중하여 이치로의 타격이 기본 타격과는 다르지만 스피드가 좋고 타격에 유리한 점이 있다고 판단하여 이치로가 그 타격을 그대로 활용하도록 격려하고 장려한다. 아울러 일본 선수들 중에 "스즈키"라는 이름이 너무 많으니 성 대신 이름을 백넘버 위에 쓰도록 설득하여 최초로 성대신 이름을 쓰는 선수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치로의 타격능력의 비범함과 그의 성실함을 알아채고 그를 불러 말했다.


너는 언젠가 3,000안타를 치는 대타자가 될 것이다


 2군과 1군을 전전하던 그는 94년 오기 감독에 의해 풀타임 선수로 기용되었고 그의 기대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200안타와 수위타자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치로는 1군 타격코치였던 아라이 히로마사와 함께 광각 타법을 익혔다. 이 후에는 그의 고속질주가 2001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이후에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이치로의 타격은 훌륭하다. 그러나 나는 다소 선수치고는 왜소한 그가 우익수 자리에서 뿌려대는 송구 능력에서 더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그에게서 느끼는 가장 훌륭한 부분은 20년이 넘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부상이나 고질병이 없다는 것이다.(물론 99년 시즌에 상대 투수에게 공을 맞아 몇 달 쉰 적과 2006년 초반 위궤양으로 며칠간 쉰 적이 있으나 그 이 후로는 부상으로 경기를 거른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


45세인 이치로가 지금까지도 변치 않는 야구 열정과 실력을 유지하는 이유를 누군가가 내게 묻는 다면 나는 그 80%는 이치로가 오기 감독에게 느끼는 감사한 마음과 보은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선수가 되려고 매일 공원에서 스윙만 수백 번씩 일 년에 360일 이상을 연습해왔으나 고교시절에는 팀이 약체라서 빛을 못 보고 오릭스에서는 폼이 이상하다고 기본이 안되어있다는 혹평을 들어온 그가 얼마나 답답하고 억울하고 슬펐을지 짐작이 간다. 열심히 땀 흘리고 노력하지만 아무도 인정 안 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다. 이때 나타나 자신의 손을 잡아주고 "너는 이 폼으로 장차 3000안타를 칠 수 있다. 나중에 네가 3000안타를 달성하면 내가 너에게 흰 양복을 선물로 주겠다"라고 나타난 다정한 아버지 같은 오기 감독에게 21세 이치로는 감동 이상의 감정을 느꼈을 것이며, 때로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오기 감독을 떠 올리며 보은 하고자 자신을 채찍질하였을 것이다. 오기 감독이 무명 선수들의 개성과 창의성을 받아준 것은 90년대 당시로는 정말 대단한 자기 확신과 용기, 그리고 타인에 대한 사랑이 뒷받침되어 나타난 인성이었다고 본다. 더군다나 사회 전반적으로 Homogenious 한 기준이 상당히 세게 작용하는 일본 사회임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만일 이치로가 오기 감독을 만나지 못해서 늘 타격에 대해 지적받고 2군에 있었다면, 이치로는 평범한 선수로 지내다가 오래전에 은퇴한 선수가 되었 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신이 돌보던 20대 초반 야구 신인들이 지금은 일본의 전설적인 선수들이 되었고 그들의 가슴속에 오기 감독 자신을 향한 사랑과 존경이 가득하다는 것을 오기 감독은 하늘나라에서 잘 보고 흐뭇해하고 있을 것이다.


누구나 열심해해서 성공하고 싶고, 부와 명예를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내가 40대가 넘어가면서도 20대 선수들보다 더 빛나는 눈 빛으로 야구에 임하는 이치로에게 느낀 것은 마치 그가 하늘나라로 간 오기 감독에게도 지금도 자신의 모습을 보려 주려고, 오기 감독을 흐뭇하게 해주려고, 그 외 그를 도와준 코치들에게 기쁨으로 보답하려고 노력한다는 느낌이다.


물론, 이런 느낌이 지극히 나의 주관적인 느낌이다. 그러나 종종 인터뷰 때마다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 주신 분들에게는 평생 보답해도 모자란 은혜를 입었다"


 라고 말하는 그의 성격과 강박증적일 만큼 일상생활도 야구에 맞추어 생활하는 철저한 그의 모습을 보면 마치 학교에서 좋은 성적표를 받아와서 자기가 존경하는 아버지에게 보여주려고 열심히 공부하는 고교생의 뒷모습도 느껴진다.


여담이지만, 나는 지금까지 알거나 만난 사람 중에서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하거나 다른 뭔가에 몰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갖춘  동기부여 요소 중 하나가 자신이 존경하고 고마워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지 보답하고 흐뭇함을 느끼게 하려고 하는 점이라는 것을 자주 봐왔다.


예전에 S대 자연대에 수석으로 입학한 어떤 학생도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냐는 질문에


"내가 잘 해서 좋은 학교에 가면 우리 부모님을 무시하던 사람들도 우리 부모님을 부러워하고 우러러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매일 고생만 하면서 가난하게 사는 부모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뿐이었다"


라고 답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존경심과 고마움, 그리고 사랑이 뒷받침된 동기부여가 다른 종류의 동기부여보다 질적인 면에서 폭발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치로의 마음에서 그를 기관차처럼 달리게 하는 힘도 아마 그가 그를 1군 풀타임 선수로 뛸 수 있게 기회를 주고, 그를 격려하고, 믿고 인정해준, 이치로로써는 크게 존경하고 고마워 할 수 밖에 없는 오기 아키라 감독을 비롯한 은인들과의 따뜻한 기억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불어 세이브 라이온즈에서 선수생활을 할 때보다 감독으로 지내면서 더 큰일을 한 오기 아키라 감독을 보며 사람은 결국 어떤 나이에서든 자기 몫을 할 기회를 꾸준히 갖게 됨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오기 감독과 스즈키 이치로의 만남을 보면서, 타인의 개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것도 그를 사랑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사랑하고 인정하면,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 벌어진다"도 되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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