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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부메랑 Sep 16. 2017

레고 랜드에서 본 신세계

레고들이 행복해 보이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다

지난 주말 California에 위치한 레고 랜드를 찾았다. 주말을 맞아 휴식을 취하기 위해 처음으로 방문했는데 생각보다 섬세하고 조직적으로 공원을 꾸려놓은 느낌이 들었다. 바닷가 근처라서 그런지 별로 덥지도 않았고, 화창한 날씨 속에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C) 닥터 부메랑

어릴 적 친구를 만난 느낌을 주는 캐릭터들 



(C) 닥터 부메랑

 화창한 날씨의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은 자동차  

 

레고 랜드에 가면 레고만 잔뜩 전시되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작은 레고와 더불어 상당히 큰 레고 전시물도 많았고, 실제로 타보며 체험할 수 있는 놀이기구도 많았다. 겉에서 보기에는 조각조각으로 이루어져서 귀여웠지만 어떤 놀이기구는 실제로 타면 멀리서 봤을 때 보다 굉장한 짜릿함과 "내가 왜 이걸 타서 고생일까"하는 찰나의 후회를 만들게 해주기도 했다^^



(C) 닥터 부메랑

토이로만 보던 레고를 직접 타게 될 줄이야!  



(C) 닥터 부메랑

나보다 훨씬 컸던 녀석, 너의 이름은 뭐냐? 

 


(C) 닥터 부메랑

 돌고 돌다가 찾은 피자 뷔페 

 


피자를 먹고 다시 이리저리 돌며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레고들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내 마음은 일상의 걱정과 지친 감정들이 동심과 희망으로 대체되고 있었다. 어떻게 아직 내 나이에도 그런 일이 생기는지 신기했다. 물론 내가 장난감을 좋아하긴 하지만


(C) 닥터 부메랑

 겉에서 보기에는 귀여웠지만, 막상 타니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청룡열차. 나와서 찍힌 사진을 확인해 보니 정점을 통과할 때의 내 눈이 굉장히 커져있었다.  

 


(C) 닥터 부메랑

 왠지 레고 친구들 마리오들이 나올 것 같은 성

 


레고들을 하루에 너무 많이 봐서 이제 슬슬 지루해지려고 할 때쯤, 어느 구역에 도달하니 신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말 그래도 레고 월드였다. 


(C) 닥터 부메랑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굉장히 놀랐다  

 


(C) 닥터 부메랑

 섬세함과 자연스러운 연출에 레고임을 잊게 되는 순간  

 


(C) 닥터 부메랑

  계속 감탄 중    

 

 

(C) 닥터 부메랑

 내가 레고가 되어 한 달쯤 이곳에서 살고 싶음  

 


(C) 닥터 부메랑

 햇살 좋은 평화로운 마을 전경. 아마도 샌프란시스코의 마을을 재현한 듯하다.

 

이게 진짜 레고랜드였다. 충격과 감탄, 그리고 이것을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 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교차로 느꼈다. 그리고 오늘 이곳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한 편으로 내 마음속에서 레고들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레고들은 어떻게 그렇게 편안하고 행복해 보일까?"


장난감이라서 그럴 수 있다. 현실과 관련 없으니 걱정이나 염려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받으니 그렇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내게 들었던 생각은 레고는 서로 철저하게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레고는 작고 단순한 파트들로 만들어진다. 사람이면 사람, 로봇, 건물, 자동차, 비행기, 배 등 모든 것이 분해해 보면 다 비슷한 아주 작고 단순한 기본 파트로 구성되어있다. 그렇지만, 각각 자기만의 고유한 부품과 조립방식, 조립순서, 그리고 특징이 있다. 서로 부품을 공유하거나 바꾸거나, 섞지 않는다. 물론 서로 맞바꾸어 조립하려면 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 번 조립된 구성품은 그것만의 고유한 특징이 생겨난다. 바로 그것이 레고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레고는 철저하게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마을을 이루고 우주를 이룬다"


어찌 보면 이것은 미국적인 가치관처럼 보이지만, 한국에도, 동양에도 적용되며, 또 한국에도 필요한 가치다. 인간(人間)이란 말이 "사람은 서로 어울려 살 때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굉장히 인간의 본질적인 내용을 포괄하고 있음에는 절대 동의한다. 그러나, 인간은 절대동거해야 하면서도 절대고독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소설가 한승원 선생님도 그런 점을 지적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말의 근원도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 낫다는 말이 아니고, 사람은 결국 절대고독한 존재며 모든 것은 혼자 헤쳐나가며 살게 되어 있는 존재임을 뜻한다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나는 인간은 절대동거와 절대고독의 양극 사이에서 계속 균형을 유지하며 삶의 의미와 보람을 위해 자신을 이행하는 존재라고 믿는다. 


우리가 가까운 관계라는 이유만으로 정(情)과 따뜻한 마음이 너무 지나치게 되어서 발생하는 문제도 종종 있다고 본다. 즉, 대부분의 우리는 부모와 자식, 형제간, 그리고 직장 상사와 직원, 동료 간, 그리고 선후배 간의 관계가 굉장히 가깝고 친밀하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면 서로 차가워지고 딱딱해지지만, 두 사람 간의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Meshed (으깬 감자처럼)한 관계가 되기 쉽다. 나라와 민족별로 섣불리 일반화하고 싶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미국인들은 사람 간의 바운더리를 굉장히 확실하게 유지하고 지키려고 노력한다. 일본인들의 기본적인 사람 간 예의가 "폐를 끼치지 말자"에 중점을 둔다면, 미국인들은 "바운더리를 지키고 내가 할 것은 내가"라는 점에 중점을 둔다. 물론 그게 절대적으로 옳고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으로서 살아야 할 경우와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서 살아야 하는 방식이 서로 균형 있게 모두 필요하다고 본다.  


친척이라는 이유로 이런저런 것들을 구분 없이 요구하고, 친한 친구라는 이유로 많은 시간 할애를 강요하고, 직장 부하라는 이유로 공적인 것이 아닌 사적인 부분까지 통제하고 억압하고, 자식이라는 이유로 자기의 절대권한을 휘두르고, 배우자라는 이유로 기본 예의도 없이 막말을 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선배라는 이유로 이미 후배를 자신의 휘하에 예속시키고.... 바운더리가 깨진 예를 들자면 굉장히 많다. 


물론 사람이 서로 너무 친하면 가능한 행동이고 생각들이다. 그러나, 바운더리를 지키지 않다 보면 나중에 뒷감당을 하지 못할 일이 생겨서 서로 안 좋은 결과를 자초하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조금 차가운 개인주의적 발상일지 모르지만, 철저한 개인의 공간에 침투할 때는 "내가 이 사람의 영역에 침범함으로써 이 사람이 혼자 있었을 때보다 더 좋은 기분이 될 것인가"를 따지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게 해서 건강하고 행복한, 이른바 준비된 개인들이 모여서 정이 넘치는 분별력 있는 구조의 "인간"사회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게 되면 인간 세상이 레고 세상보다 훨씬 더 아름답지 않을까?

 

닥터 부메랑 유튜브 채널에 방문해 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a2Hpyxxe7kozsCGldkUTqw?view_as=subscri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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