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증에 걸린 사람, 혹은 그 가족이나 친구들을 위하여
최근 현대인들이 경험하고 있는 정신 질환 중에서 환우들을 가장 괴롭히는 질환을 뽑으라면 강박증을 뽑을 수 있을 만큼 강박증은 환우들을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증상을 그 특징으로 합니다.
강박증(Obssesive Compulsive Disorder, OCD)은 강박적 사고와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게 만드는 특징을 가진 질환으로서 전체 인구의 1% ~ 2%에 이르는 발병률을 보입니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에비에이터"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행동을 통해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강박증"이란 어떤 질환인지 조금씩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강박증은 자기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불안함과 집착을 바탕으로 하는 심리가 강박적인 사고나 행동을 하도록 유발하는 질환입니다. 강박적인 사고가 그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면 그 사람은 그 불안감에 대해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지만 그 불안감을 희석시키기 위해 특정 행동을 결국 반복해서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청결 부분에 대해 불안감이 필요 이상으로 가중되어 그 불안감을 없애려고 손을 너무 자주 오래 씻게 하거나, 가스레인지를 반드시 꺼야만 화재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강박적 사고는 몇 번이나 가스레인지가 꺼져있는지 확인하게 만들죠.
아직 강박증에 대해서는 정확한 발생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고, 현재까지의 전문가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생물학적 요인,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 기타 심리학적 요인이 비교적 타당한 강박증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뇌와 관련해서는 대뇌 앞쪽에서 발생하는 지나친 생각과 걱정들을 적절히 걸러내는 미상핵의 기능에 이상이 생겨서 강박증이 생긴다고 보기도 합니다.
실제로 강박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삶은 보기보다 또는 상상보다 훨씬 괴롭습니다. 불필요하고 비이성적인 불안감과 집착으로 인해서 그들은 무의미한 반복 사고나 행동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해야 합니다 (심한 경우 같은 장소에서 3시간 이상).
그리고 반복행동을 하다 보면 어느새 땀을 흘리며 기진맥진 해져버리기 때문에 이런 강박증 증상을 매일, 매 순간 같은 장소나 같은 상황을 맞닥 뜨릴 때마다 마치 의식 (Ritual)을 치르듯이 반복하여 치러내는 삶은 무척 힘겹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강박증 환우들은 자신들이 보이지 않는 감옥에서 자기 자신을 불필요하게 고문하며 살고 있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리고 매번 강박증 증상을 경험하며 불필요한 반복 행동을 할 때는 그런 행동을 하는 자기 자신에게 수치심이나 자기혐오를 느끼기도 해서 남들 앞에서는 자신의 강박증상이 들킬까 봐 그런 증상을 숨기고자 애를 쓰기도 합니다.
강박증은 정신질환으로 분류되지만, 정신병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환우 스스로가 그런 자신의 행동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고, 강박증상 이외에 다른 부분, 예를 들어, 지성적 판단, 윤리적 행동, 인지 능력 등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기 때문이죠. 강박증으로 고생하는 분들의 소망은 하루빨리 강박증에서 완치되어 예전처럼 자유롭고 활기찬 삶을 사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강박증 환우분들은 완치를 목표로 신경정신과에서 약물을 처방받아 정기적으로 복용하거나 인지행동치료를 받으면서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강박증 환우들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추천되는 치료법은 약물 치료와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 CBT)를 병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를 통해 뇌 안의 세로토닌을 조절하고, 인지행동치료로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인 사고와 행동을 조금씩 조절해 나가는 방법입니다.
서울대 권준수 교수님과 신민섭 교수님께서 공동 집필하신 "쉽게 따라 하는 강박증 인지행동치료"를 참조해서 강박증 환우들에게 자주 쓰이는 강박증 약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좌: 약품명, 우: 상품명)
플루옥세틴, 프로작
서트랄린, 졸로프트
파록세틴, 세로자트
플루복사민, 루복스
에스시탈로프람, 렉사프로
- 비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삼환계 항우울제
(좌: 약품명, 우: 상품명)
클로미프라민, 아나프라닐
위에 소개된 약들은 모두 강박증에 사용되는 약들인데,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고 강박증의 정도와 증상이 다르므로 약도 각기 다르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약을 처음에 조제받아 사용하다가 약효가 발휘되기 시작하는 6주 - 12주가 지나도 별다른 변화가 없거나, 초기에는 증상 개선에 도움이 되다가 다시 효과가 없어진다거나, 약이 지닌 부작용이 나타나서 생활에 지장이 생기거나 하면 약의 양을 조절하거나 다른 약으로 교체를 하게 됩니다. 환우 중에는 신경정신과 약물이 뇌에 안 좋거나 중독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진 분들이 계신데, 최근에 나오는 약물들은 오랜 시간의 임상실험을 통해 인준되는 약들이므로 그런 위험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약물 요법은 효과가 괜찮은 편이지만, 약물 사용을 중지하게 되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강박증상이 재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면, 인지행동치료는 그 효과가 상대적으로 오래 지속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강박증 증상이 심한 경우에는 약물요법과 인지행동치료 이외에 더 강한 방법인 심부뇌자극술, 뇌수술, 정신치료, 그리고 전기치료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 이외에도 강박증 개선을 위한 치료법은 굉장히 많습니다.
권준수 교수님/신민섭 교수님의 책에서 인상적인 내용이 몇 가지 있어서 제시하고자 합니다. 제가 그분들의 책을 읽기 전부터 강박증 환우들에게 느껴왔던 것이기에 그 내용들에 대해서 더욱 깊이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쉽지는 않지만, 환우 스스로가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치료에 있어서 각오와 용기를 가지고 능동적인 주체가 되어야 한다.
2. 당연한 이야기지만, 환우 당신의 걱정이 불합리한 것이며 강박행동은 결코 그런 불안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3. 환우가 가지고 있는 흑백논리, 완벽주의적 사고, 패배주의적 태도에 도전한다. 조금이라도 불확실한 것이라도 견뎌보거나 지나치게 극단화해서 생각하는 과잉일반화에 도전한다.
4. 기존에 두려워하던 행동(오염물 만지기, 반복된 확인 행위 등)들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분석하며 "왜 그런가?" "정말 그런가"를 되뇌고 자신을 다독인다.
5. 환우 자신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을 종종한다 (연구 증거가 있음)
6.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는 상황을 떠올리고 그 상황을 견디고 이겨내는 훈련을 한다 (심상 노출법) - 처음에는 괴롭지만 이겨내고 나면 그 성취감과 아무 일도 없었다는 안도감에 자신감이 높아진다.
7. 어떤 특정한 상황과 사건이 환우에게 어떤 강박적 사고나 행동, 그리고 그것들과 관련된 감정과 욕구를 일으키는지 관찰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과 관련된 그릇된 믿음을 파악한 뒤 도전하고 변화시킨다.
예) 외출하면서 가스밸브 잠그기(선행사건) - 가스밸브가 안 잠겨서 가스 누출이 되면 어떡하지? (침투 사고) - 만약 내 실수로 폭발이 일나나면 내 책임으로 영원히 질타받을 것이다 (그릇된 믿음) - 과도한 책임감/불안의 결과에 대한 왜곡된 판단(인지적 오류) ("쉽게 따라 하는 강박증 인지행동 치료" p.109)
8. 생각을 지나치게 중요시하는 경향에 도전하기. 머릿속 생각이 모두 중요한 생각은 아니다.
9. 과도한 책임감을 갖지 않도록 조절하기
10. 마음 챙김 (Mindfulness)를 통해 현재(Present moment)와 판단하지 않는 마음(Non judgemental attitude, 예) "그래 그랬구나")을 갖는 훈련 실습하기.
위의 방법은 강박증 환우들에게 제시하고 싶은 내용들입니다. 물론, 쉽게 실습하고 응용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첫째, 스스로를 환자라고 낙인찍지 마세요 (Don't do labeling)
이것은 강박증 환우 본인뿐만 아니라 그 주변분들도 아셔야 하는 내용입니다. 강박증 환우들은 타인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정신질환 증상을 보이는 "강박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아닌, 그냥 아무런 판단이나 편견 없이 (Non-Judgemental) 한 명의 건강한 사람으로 "있는 그대로" 호감을 갖고 받아들이고 수용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다소 엉뚱해 보이거나 이상하게 보이는 행동을 해도, 불필요하게 "뭐 하냐?" "뭐를 몇 번씩 확인하냐?" "정신 차려랴"식의 상대방을 낙인찍거나 판단하는 뉘앙스의 말을 하면, 강박증 환우들의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지게 됩니다. 물론 그런 강박증 환우들의 행동을 방치하거나 오히려 그런 행동을 장려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인지는 하되, 한 발치 뒤에서 환우가 모르도록 그 늪에서 나올 수 있도록 격려할 수 있도록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배려있게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환우가 어떤 것을 확인하려고 반복적인 질문을 할 경우에는 "아까 그렇다고 했잖아"라고 면박을 주듯이 말하기보다는, 그냥 짧고 명확하게 "응 맞아"라고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것이 훨씬 큰 도움이 됩니다. 환우 본인도 자신의 증상을 자각하고 있고 그런 증상에서 벗어나고자 매 순간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환우 스스로가 본인을 "나는 절망적이야" "나는 중병에 걸려버렸어" "사람들이 나를 미친 사람으로 보겠지?"라는 식의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이마에 "나는 정신질환자입니다"라는 눈에 안 보이는 라벨을 붙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강박증은 마치 모자를 쓴 것과 같습니다. 잠시 무거운 모자를 쓴 것이죠. 그 강박증 모자는 어디까지나 모자이지 "나(Myself)"는 아닙니다. 환우의 윤리성이나 지성, 그리고 업무 능력 자체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아시고 자신감을 잃지 마세요.
둘째, 환우분들은 사람들과 더 많이 어울려야 합니다.
환우분들은 강박증상 때문에 위축되고 우울해져서 점차 의기소침해지고 타인들과 어울리지 않고 집에 머물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생활은 강박증에 도움이 별로 안 됩니다. 혼자 지내다 보면 정신적으로 불안하고 외로워져서 강박증상이 심해지기도 하는데 이런 패턴의 삶은 사실 악의 순환고리를 만듭니다.
따라서 강박증 환우들은 오히려 자신감을 갖고, 더 많이 사람들과 교류해야 합니다. 사람은 인간으로서 타인과 어울려 살아야 건강해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고생하던 젊은이들이 군대에 입대해서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다 보면 육체 건강뿐만 아니라 신경정신과적 측면에서도 건강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정상화(Normalization)의 결과입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상황을 이유 없이 두려워하고 걱정하던 사람이 다른 사람 10명과 한 장소에 섞여서 생활하면서 그 다른 10명이 A라는 상황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사고 및 행동을 그들의 사고 및 행동과 비교하면서 점차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다수의 기준으로 맞추면서 조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나 회사 생활을 하면서 타인들의 행동과 사고를 통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행동과 사고를 정규화하고 조절하는데, 이것은 심지어 아침에 전철을 함께 타고 가는 전혀 모르는 타인들과 한 공간에 있는 짧은 찰나에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환우분들은 가급적 많은 친구나 동료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물론, 자신과 성격이나 말이 잘 통하는 친한 사람들과 어울리면 그 효과가 배가 되겠죠.
강박증 환우들과 어울릴 때는 환우분들의 말에 집중해서 들어주시고 그 말에 크게 호응해 주시면 환우들이 현재(Present moment)에 참여하게 되어 더 큰 효과가 기대될 수 있습니다.
강박증 환우들은 대부분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동반하고 있는 경우도 많고, 오랫동안 강박증에 시달려온 만큼 많이 위축되고 자신감이 없어서 선뜻 먼저 친구나 지인에게 만나자는 제안을 하기 어려워합니다. 따라서 강박증을 앓고 있는 친구나 지인, 또는 가족들이 먼저 만나서 식사나 차 한잔을 하자고 제안을 해야 합니다. 당신의 손길이나 식사 제안 한마디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셋째, 환우분들은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 이외에도 자신에게 맞는 치료법을 계속 적극적으로 찾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강박증에 이르게 된 경위나 이유도 다르고, 그 증상에서 벗어나는 솔루션도 다릅니다. 현재 강박증 치료법은 굉장히 많습니다. 권준수/신민섭 교수님은 그 치료법이 수 백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저는 강박증 환자분들에게 IFS(Internal Family System Therapy)를 활용하고 실습하시기를 추천합니다. 내용도 쉽고 간단하며, 혼자서 집이나 공원 어디서든지 오랫동안 실습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IFS에 대해서는 제가 쓴 글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https://brunch.co.kr/@byungilkim/6)
IFS의 요점은 환우가 스스로 자신 안에 있는 부분(감정과 생각을 제어하고 조절하는)들과 대화하며 자가 치료를 하는 방식입니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환우가 자신 안에 있는 부분과 대화할 때 그런 부분들을 다그치거나 강하게 몰아붙이지 않고 "호기심"과 "존중"의 태도를 가지고 대화를 시도하고 대화를 이어가면서 그런 파트들을 보다 건강하고 활력 있는 조건의 역학구조로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런 파트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나를 보호해주려고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불필요한 걱정이 계속 떠오르게 하는 내 안의 파트를 향해서 기존에는
"그만 걱정하자... 담대해져야지"
"맨날 걱정이냐, 정신 차려!"
이런 식으로 대응했다면, IFS를 통해서는
"왜 그런 걱정을 하는 거지?"
"그렇게 되면 뭐가 좋은 거지?"
이런 식으로 대화를 시도하며 이어가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노력과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면, 그런 여러분의 용감하고 따스한 노력이 환우들 스스로의 삶이 그들이 그리워하는 예전 같은 종류의 정상적인(Normality) 삶으로 회귀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고 혹여 예전과 똑같지는 않아도 그들이 또 다른 새로운 종류의 정상적인(New Normality) 삶을 개척해 가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입니다.
지금까지 강박증 환우분들을 위해서 제가 환우들과 어울리며 느낀 경험들, 최근에 읽은 책의 내용들, 그리고 저의 아이디어를 섞어서 나름 적절하다 싶은 글을 썼습니다. 본 글이 강박증 환우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강박증은 오랫동안 아토피 피부염처럼 관리하면서 차츰의 개선을 기대할 수 있는 증상이라고 보기에, 무엇보다 환우들의 의지와 용기, 그리고 자신감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기에 그런 부분에서 환우들에게 의지와 용기를 북돋아주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강박증에 대한 추가적인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환우분들이 더욱 건강하고 활기차 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닥터 부메랑 유튜브 채널에 방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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