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과 만난지 11년이 되었습니다. 2011년 6월 함께 살기 시작해 2022년 1월까지 11년째 반려 중입니다. 11년, 무언가 벅차오르게 되는 시간입니다. 이 정도의 시간을 함께했다면, 가족인 것이 확실하니까요. 저는 20살 때 가족을 떠나와 룸메이트들과 지내다 26세 즈음부터 혼자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가장 오래 시간을 함께 보낸 생물, 내 가족으로 내 청춘을 모두 지켜본 아이가 밀입니다. 고양이 나이는 사람과는 다르니 밀은 11살이나 12살이 아니라 60세 정도라고 합니다. 아이가 어르신이 될 때까지 잘 지냈군 싶기도 하다가도, 여전히 제게는 아이이지요. 고양이는 평생 구강기를 사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좋으면 핥고 싫으면 무는 것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영원한 구강기요.
밀이 처음 오던 날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양이를 기르고 싶다는 얘기를 가끔 하긴 했지만 실제로 하나의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 부담스러워 실행에는 옮기지 못할 때 고양이를 키우는 언니가 제게 데려다준 아이입니다. 한쪽 눈이 다친 채 놀이터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던, 태어난 지 2달 가량 된 아기고양이 밀을 초등학생들이 발견해 병원에 데려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물병원에서는 대부분 지불능력이 없는 보호자가 데려온 동물을 돌봐주지 않기에 결국 초등학생들은 밀을 동물보호소에 보내려고 했는데, 그때 아는 언니의 지인분께서 강아지를 치료하러 동물병원에 갔다가 자신이 병원비를 지불할 테니 밀을 돌봐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밀은 영양실조 상태였다가 병원에서 영양을 회복했으나 입양갈 만한 곳이 없어 계속 병원에 있게 되었습니다. 밀의 병원비를 지불해주신 분은 집에 아픈 고양이가 여러 마리라 어린 고양이를 데려올 수 없었고 여기저기 입양처를 알아봤으나 아무래도 한 쪽 눈이 아프다보니 입양을 원하는 사람이 없어 2달 동안 밀은 병원에 있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고양이를 기르고 싶어 한다는 얘기에 저에게 임시보호를 맡아달라 해, 1달 동안 밀을 맡기로 하고 밀이 집에 왔습니다.
손바닥만한 생명체가 잠시 우물쭈물하다 매트리스로 올라가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밀은 여전히 침대를 좋아합니다. 침대가 아니더라도 꼭 포근하고 푹신한 데에 앉아있곤 합니다. 와, 우리 집에 저런 데가 있었지 하며 밀 덕분에 놀란 적도 여러 번입니다. 고양이는 공간을 창조하는 생물체입니다.
이 손바닥만한 생명체가 소리에 반응하고 무언가를 먹고 장난감을 쫓아다니는 게 신기해 매일 같이 놀다 임시보호기간 1달이 훌쩍 지나고 계속 함께 살며 처음에는 카페며 한강을 데리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밀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후 직장에 다니며 피로를 핑계로 밖에 데리고 나가지 않다보니 밀은 집에만 머물게 되었지요. 매일 외출할 때는 부담스러워 하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외출하려니 어찌나 화를 내던지 그렇게 외출냥에 대한 희망은 막을 내렸습니다.
책을 보다가 화장실에 가면 그게 뭔가 궁금해서 나처럼 책 앞에서 책을 보는 척 하기도 하고 출장 갈 때 가지고 가던 배낭을 쌀 때면 가방을 물어뜯어서 싫음을 표현하기도 해 이 아이 마음 안에 많은 게 있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집사 혼자 침대에 처박혀 있으면 침대에 와서 미간을 핥아주기도 하였습니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고양이를 가족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 본가에 갈 때는 친구들에게 집에 와 잠시 봐달라며 부탁하고 갈 수밖에 없는데 3일 이상 혼자 둘 수는 없어 여행을 좀 더 오래 가야 할 때는 밀을 데리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강릉이나 부산 바다를 구경했으니 밀은 고양이치고는 나와바리가 넓은 셈입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더니 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팔불출처럼 하루종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아이의 생이 얼마나 기구했으며 겨우 살아나 얼마나 씩씩하고 따뜻하게 잘 자랐는지, 나와 함께 그래도 꽤나 행복한 생을 살고 있는 것이겠지, 그럴 가능성이 더 많아, 하면 조금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이것은 고양이 한 마리가 열어준 세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냥 버려질 수도 있는 한 생명체를 거두어들인 아이들로부터 시작해 많은 손길과 도움 덕에 살아난 한 생명체가 한 인간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것이지요. 밀은 거리의 동물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되고 다른 생명체에게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세상을 향한 눈을 제게 주었습니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밀이 혼자 있는 게 괜찮을까 걱정을 오래 하던 중, 후배로부터 고양이가 임신해 새끼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통영에서 책방을 하던 후배네에 이전에도 간 적이 있었는데 와 이 집은 정말 고양이를 위한 곳이다 싶을 정도로 온 곳을 고양이들이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중성화시키지 않은 외출냥들이 아이들을 낳게 되어서였는데요. 책장 사이를 오가는 아기 고양이들을 보며, 그날 후배네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멜빵바지 주머니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수지라는 이름의 이 고양이는 그때만 해도 아가였는데, 후배 말에 따르자면 그때 멜빵바지 주머니 속에 들어간 사진이 수지의 최고 인생샷이라고 하더군요.
입양을 보낼 수 있는 한 입양을 보내지만 입양을 보내지 못한 아이들을 계속 키우다 보니 몇 마리는 중성화를 시키지 못하는 상황 속에 고양이가 자꾸만 불어나는 데다 전염병이라도 돌면 그 집 고양이들 모두가 위험해지는 후배의 난감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일 년 즈음 지나서 그 집에 있는 아깽이 중 한 마리를 데려오기로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직 입양 보내지 못한 아깽이가 한 마리 있다고 했습니다. 이전에 전염병에 걸려 수지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남은 아깽이는 수지의 아이라고 했습니다. 제게 밀을 데려다준 언니 이름도 수지입니다. 수지라는 이름은 나와 냥님 사이를 잇는 이름인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 우연 혹은 인연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 마리 어른 고양이들 사이에 끼인 한 마리 아깽이 보리는 뭔가 내가 자기를 데리려왔음을 알고 있는 듯 자꾸만 저를 피해 가족들 틈으로 숨어서 제 눈치를 살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집에 올 때마다 형제들이 떠나는 것을 봐서 이번에 드디어 내 차례구나 안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운전을 하지 못해 거제부터 세종시까지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케이지에 들어있는 보리는 한 마디도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얌전하게 눈을 꿈뻑대다 졸다 깨서 상황을 살피곤 하였고 그렇게 집에 도착하며 밀과 보리가 자라는 우리집 상황이 시작되었습니다.
밀과 보리가 화목하게 잘 자라면 좋았을 텐데, 고양이 합사를 위해 벽을 쳐야 한다는데 당시 복층구조 오피스
텔에 벽을 칠 수가 없어 결국 1층은 보리 2층은 밀의 터전이라고 나 혼자 임시로 거처를 정해두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상황은 뒤죽박죽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기보다 훨씬 큰 고양이 밀을 무서워하던 보리는 밀이 자기를 피하기는 하지만 헤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부터 밀 꼬리를 쫓아다니는 똥꼬발랄 아깽이가 되어 갔습니다. 해먹을 하나만 설치해주니 이틀 동안 싸우다 결국 같이 자는 정도로 가까워지긴 했으나 그 외에는 둘이 붙어 있거나 핥아주거나 우애를 드러내는 일은 없었습니다.
처음 보리를 데려올 때만 해도 밀이 자기 아이처럼 돌봐주며 잘 지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으나 밀이 보리를 보자마자 도망치는 것을 보며 확실히 그럴 수는 없겠구나 깨달았습니다. 밀이 생각하기에 이 집 유일한 아기는 나인데 왜 저런 작은 게 더 있어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밀과 보리를 키우며 누구 하나 서운할까봐 전전긍긍하게 될 때면 아이를 둘 키우는 부모가 이런 기분일까 싶기도 하고, 확실히 이것저것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는 면에서 나야말로 조금 더 자란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보리가 네 살이 돼가는 데다 원래 아빠를 닮아 근육냥인 듯 해 보리가 덩치는 더 크지만 굳이 서열을 따지자면 확실히 밀이 위인 듯 합니다. 집에 온 사람들도 역시 이 집은 밀 것이라고 얘기하곤 합니다. 그러나 확실히 여러 고양이와 자라며 사회성이 있는 데다 눈이 크고 예뻐서 엄마말에 따르자면 미스코리아 고양이라고 하는 보리는 하루에 한 번씩 무릎에 와서 앉고 꾹꾹이를 자주 하며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애교가 넘칩니다. 귀염둥이라며 귀여워하던 와중 가끔 보리가 덩치값을 하고 싶은지 밀에게 개기다(가끔 보면 자기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밀에게 이제 나도 다 컸어, 이제 너한테 안 져, 하며 그동안의 서러움을 앙갚음하는 것도 같습니다만) 눈에 띄면 혼이 나는 게 우리집 밀과 보리가 자라는 일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