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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다다 Feb 07. 2022

고양이인 것, 고양이 아닌 것, 사이

우리 집에 밀과 보리가 있는 데다 이웃들도 모두 고양이를 한 마리씩 키웁니다. 주민회라고 부르는 비슷한 시기에 강릉으로 이주해온 친구들입니다. 건너건너 알던 친구들이 강릉으로 같이 이주해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고 모두 고양이를 한, 두 마리씩 키웁니다. 그렇게 해서 강릉에 사는 이름을 아는 고양이만 해도 6마리가 더 있습니다. 이름은 여기, 율, 까리, 누누, 달콩, 순긋입니다. 어떤 아이들은 태국이나 중국 출신이고 어떤 아이들은 우리 애들처럼 코리안 숏헤어인데 다 같이 귀엽습니다. 이 아이들은 내가 놀러가면 꼭 아는 체를 해주는데, 제각각 개성이 있어 어떤 아이는 무릎에 앉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엉덩이를 들이밀기도 하는데 이름을 아는 고양이가 많다는 거, 이게 제 자랑이라면 자랑이지요.  

   


밀을 키우며 길냥이들에게도 눈이 가며 서울에 살 때는 한강에 자전거 타고 가 간식 주는 것을 취미 삼기도 했습니다. 미니스톱 밑에 살던 뚱냥이 한 마리는 왠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미니스톱에도 냥님 급식소가 있긴 했는데 사료만 먹다 보니 가끔 간식을 가져다 주는 저는 반가운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 뚱냥이 아이는 욕심이 많은 듯 하긴 했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면 가장 반겨주던 아이입니다. 당연히 간식도 많이 주고 했는데, 어느날인가 간식을 주고 떠나는 저를 하염없이 이 아이가 바라보았습니다. 완전히 내 생각이긴 하지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 아이가 꼭 ‘이 세상에는 고양이랑 같이 사는 사람도 많다던데, 혹시 내가 너랑 같이 살면 안 될까’라고 얘기하는 듯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사는 것도 버거워서 그 아이를 들일 수는 없었지만 왠지 걔가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아 어찌할 바를 모르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후로 한동안 안 보이던 아이는 언젠가 한강에 가보니 가족을 이루고 미니스톱으로부터 좀 더 떨어진 풀밭에 살고 있었지요. 그때도 그 아이를 보자마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는데, 뭔가 애틋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간식을 뜯어주는 것밖에 없지만요.     

한강에는 꽤나 여러 마리 고양이가 살고 있고, 관리소 아저씨도 애교쟁이라고 칭하던 고양이에게 간식을 주고 2년쯤 뒤 다시 가보니 이 녀석이 일가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본 적도 있습니다. 무늬가 똑같아 알아볼 수 있었는데, 건강하게 장성해 아이들에게 간식을 먼저 먹이는 것을 보니 감개무량이 이런 말인가 싶기도 하더군요.     


거리의 고양이를 구조한 적은 딱 한 번입니다. 신촌 거리에서 다친 고양이 한 마리를 구조해 신촌 병원에서 치료하고 이후 고양이보호협회의 도움으로 협력병원인 응암동 한수동물병원에서 수술까지 시킬 수 있었습니다. 회사를 다니고 있던 상황이라 밀과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인 아기 고양이만 같이 두기가 어려워 고양이를 키우는 후배들이 그 아이를 맡아줬고, 이후 좋은 집으로 입양까지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때 어디서 그런 열정이 나왔는지 어떻게든 얘를 살리겠다며 꽤나 액수가 크던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보고 도움을 요청하고 하였습니다. 그때 도움을 줬던 고양이보호협회와 한수동물병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마운 마음입니다.     


밀이라는 반려묘가 생긴 뒤로 거리의 고양이들에게 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거리의 고양이들의 삶이 당연한 것이었다면 밀과 지내며 그 작은 생명체에게 깃든 마음과 삶의 희노애락 같은 것을 짐작해 보게 되었습니다.      

거리에 많은 고양이가 보였고 아픈 고양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는 집 앞에서 교통사고가 났는지 거의 죽어가는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쉬고 있던 밤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데다 그전에 고양이를 한 마리 구조해보니 꽤나 많은 돈이 든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였습니다. 병원에 데려가니 살리기 위해서는 치료비가 많이 들 것 같다며 거리에서 만났다면 그냥 편하게 보내주는 편이 나을 거라고 조언했습니다. 고양이를 안고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갔다가 안락사 비용 몇 만원을 내고 빈 손으로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던 날 느꼈던 좌절감 같은 게 기억납니다. 내가 안고 있던 무게가 사라지고 그 무게를 어쩌지 못하고 온 두 빈 손에 고스란히 그 무게가 남아있는 느낌이었습니다. 한 마리 생명체의 삶과 죽음 사이에 관여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게 필요한가를 현실적으로 뼈가 아플 정도로 느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바닷가에는 강아지들도 많이 옵니다. 산책을 하기 좋게 데크가 나있는 곳이다 보니 강아지를 데리고 와 같이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닷가에 나가 있다 보면 개님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어느 날은 크고 검은 개 한 마리가 달려오는데 무섭다기보다는 친근했습니다. 개는 와서 꼬리를 흔들며 온몸을 부비댔습니다. 사람 손을 많이 탄 누군가 기르는 개인가 했는데 그 뒤로 다가온 아저씨가 자기는 기르는 개가 따로 있는데 누군가 버리고 갔는지 자기를 따라와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있다며 혹시 데려갈 생각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바닷가에 와서 개를 버리고 간다는 것, 그건 뭘까, 이후로 생각해보고 있는 일입니다. 큰 개, 이미 자란 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개는 왜 이 바닷가에 혼자 있는 것일까, 큰 집이 있다면 개를 거둘 수도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던 저녁입니다.    



이 동네를 나와바리로 삼은 강아지 한 마리도 자주 만나곤 하는 친구입니다. 거의 나만큼 이 동네를 돌아다닐 정도로 어떤 날은 바닷가에서 어떤 날은 하나로마트로 가는 소나무 언덕에서 만나는 아이입니다. 이 아이는 혼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주인과 놀러온 강아지가 있으면 다가가곤 합니다. 하지만 거리의 개님은 그다지 환대받지 못하고 곧 다시 제 갈 길을 갑니다. 언제인가는 이 녀석이 환대받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안타까워 개 간식을 사러 슈퍼에 갔다 오니 이 녀석이 사라져버려 결국 그 개 간식은 대부분 거리의 냥님들 먹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개의 인생이나 거리의 냥님들 인생을 생각해봐도 내 안에서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우연히 만나면 맛있는 간식을 주며 오늘은 행운의 날이 되는 것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하고 있습니다.     


거리에서 만난 개님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은 우도에서 만난 개님입니다. 약 7, 8년 전 즈음 친구들과 우도에 갔을 때 저녁 무렵 횟집을 다녀오고 있었는데, 그때 꽤나 덩치가 크던 삽살개 같던 개님 한 마리가 우리 세 사람의 앞 뒤를 왔다갔다하며 바로 옆으로 차도가 지나는 인도가 따로 없는 길의 길잡이가 돼줬습니다. 우리끼리 농담으로 이 개님은 우도 신령님이라며 혹시 여기서 사고 나면 안 되니까 여기저기 앞 뒤로 돌아다니며 동네 질서를 위해 힘쓰는 중이라고 농담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왜 해 지고 나서 밥을 먹으러 가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빨리 퇴근해야 되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혼자 우도봉에 가겠다며 8시 조금 못 돼 길을 나섰습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우도봉 가는 길을 네이버 지도를 보며 찾아가다보니 방파제에 다다랐는데, 정말 우도의 모든 개들이 다 집합한 것처럼 방파제 가득 개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잘못했다가 물리기라도 하면 큰일나겠는데, 무서운 척 하면 안 되지,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지 하며 속으로는 잔뜩 긴장했으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걸어갔는데 하얀 개님 한 마리가 저를 따라왔습니다. 무서운 척 하지 않기 위해 태연하게 그 개님과 함께 걸었는데, 이 개님은 제 옆에서 계속 같이 걷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이라 인적이 없어 약간 긴장해 걷던 우도봉 가는 길을 개님 덕분에 산책하듯 즐길 수 있었습니다. 결국 개님은 우도봉에 올라가 같이 사진을 찍고 우도봉에 올라온 다른 사람들과 인증샷을 찍으며 즐기더니 함께 하산해 게스트하우스 거의 부근에서 자기 갈 길을 가듯 사라졌습니다. 뭔가 간식이라도 사줘야 하나 했는데 개님들이 뭘 먹는지 몰라 사주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그냥 빵 같은 것을 사줘도 된다고 해 이후로는 개님들이 반겨주면 사람 먹는 음식이라도 주고는 합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후로 시간이 지나며 개나 고양이가 행복한 동네는 좋은 동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자기 말고 다른 종인 생명체에게 너그러울 정도가 되어야만 개나 고양이도 그 동네에서 잘 지낼 수 있겠다 싶어지며 개나 고양이가 행복한 동네는 그만큼 사람들이 여유가 있고 마음이 넉넉한 게 아닐까 혼자 하는 생각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경제적인 것만을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자기 울타리를 넘어선 시선이 개나 고양이의 마음이나 삶을 보살필 여유를 주는 게 아닐까요.     

한쪽 눈이 아픈 검정 고양이에 대한 편견 같은 게 우리 가족에게 있는 게 아닐까 해 밀의 존재를 숨기다 결국 실토하고 밀을 집에 데려갔을 때 가족들은 모두 밀을 반겨줬습니다. 저렇게 작은 애가 눈을 다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며 이 아이의 과거의 어려움에 안타까워해줬고 이 작은 아이가 폴짝거리며 다니는 게 신기해 우리집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아빠는 밥을 먹다가도 가서 밀을 보기도 하는가 하면 밀도 아빠가 편했는지 아빠 침대 옆에서 잠을 자거나 할 정도로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엄마도 밀을 본 뒤로 동네 고양이들을 보기 시작해 아무리 바빠도 매일 동네 냥님들에게 밥을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엄마가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엄마는 매일 동네 냥님들 사료와 밥과 물을 챙기며 동네 급식소의 캣맘이 되었습니다.      

며칠 전 우리 동네 아파트 놀이터에도 고양이 급식소가 생겼습니다. 비나 눈이 들이치지 않는 정자 아래 물과 사료가 놓여있습니다. 누가 급식소를 차렸는지 모르겠는데 왠지 고양이들이 놀이터에 많네 싶더니 급식소를 방문하는 냥님들이었습니다. 아침에는 줄을 서서 식사를 하기도 하고 알력 다툼이 있는 것도 같은 급식소를 보는 게 요새 제 즐거움입니다. 고양이는 저런 데 길이 있었나 싶은 데로 돌아다니기도 하고 급식소를 찾았다가 다같이 놀이터를 내려오기도 합니다. 이제부터 나도 급식소에 간식을 공급해야지, 내가 한번도 생각하지 못한 급식소를 누군가 차리다니 아직 한참 멀었네, 잘 따라가야지, 하는 날입니다.      

인간 아닌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면 괜찮은 게 아닐까, 때로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기 존재를 벗어나기 얼마나 어려운지, 자기 종을 벗어나기는 또한, 이 추위와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이 삶의 투쟁이 왜 일어나는 걸까,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서일까, 매일매일을 살라고 주어진 것일까, 누구나 생명은 자기가 가진 조건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하는데 나무도, 고양이도, 사람도, 바다도 다들, 그걸 자유라고 하는데, 그건 또 얼마나 어렵고 대단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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