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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다다 Jul 04. 2021

한 사람 인생은 늘 버겁고도 소중해서

벌써 노후를 시작한 것인가

강릉에는 지인들이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도시에 혼자 가서 사막에 떨어진 것처럼 살아보는 일은 세종시에서 했었는데, 아무래도 외로웠습니다. 사람을 사귀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다보니, 오래 알던 사람이 아니면 왠지 조금은 불편해지고 마는 편이라, 혼자 사막에 가서 살아남을 수는 있을 망정 마음은 좀 더 공허가 크게 남는다면, 오래 알던 지인들이 있는 이곳에서 공허한 동공은 조금은 작아지는 때가 있기도 합니다.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주문진수산시장에 가서 골뱅이를 사다 함께 비빔국수를 해먹었습니다. 저를 두고 둘이 대관령 괘방산을 종주한 것입니다. 저는 나도 언젠가 연애할 테니 두고보라고 좀 꼬라지를 부렸고 그러자 그들은 같이 비빔국수를 먹자며 오라고 하니 저는 강아지처럼 쪼르르 자전거를 타고 수산시장에 들러 골뱅이를 사다가 그 집에 가서 같이 비빔국수를 먹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강릉에 살면 수산시장에 가서 통골뱅이를 1만원에 살 수 있습니다. 통조림 골뱅이랑은 완전히 다른 녀석들입니다.

 


동해안자전거길이 뚫려 있어, 자전거를 타기도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주문진 가는 구간은 자전거길에 주차된 차가 많아 좀 난이도가 있지만 이외의 코스는 대부분 자전거길이 따로 나있는 편이라 어렵지 않게 자전거를 타고 바다며 대관령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5월에 자전거를 타는 일은 행복에 근접하고요. 해질 무렵 집에 오는 동안 해송숲에 어른대는 일몰의 붉은 빛이나 대관령으로 넘어가는 해를 보며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이유들이 저를 강릉으로 데려왔습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마음 편한 지인들이지요. 그들과 자연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행복에 근접할 가능성이 많으니까요. 뭐 이건 스웨덴의 휘게인가 뭔가 한때 유행하던 그 단어로도 설명이 되지요. 결국 행복은 편안한 사람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라든가 뭐라든가 하던 것을 한 단어로 휘게라 한다고, 힐링이랑 비슷하지만 좀 더 '함께'의 개념이 들어간 단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는 집에 가려고 일을 했습니다. 되도록 빨리 집에 가고 싶으니까, 업무를 빨리 하면 조금이나마 퇴근 시간이 빨라지지 않을까 그 마음이 내 손과 머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월급은 회사에 들어가면 디폴트값이 되고 야근수당보다 내 시간이 소중하니까, 최대한 업무시간에 일을 하자 였는데 그럴수록 업무량은 늘어가고 하지요. 눈치 보며 살기 싫어서 내 일 마치면 6시에 퇴근해도 되는 거 아닌가 했지만 그건 한국사회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상사들 퇴근하고 퇴근하는 거, 적당히 회사정치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술을 한 잔 하며 좀 더 그 속에 마음을 쏟는 것 그런 것도 업무의 일종이라 합니다.



며칠 전에 설재인 소설가의 ‘회송’이란 소설을 보다 울었는데, 그렇게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 업무와 회사정치를 돌다 막차를 타고 종착역에 간 젊은 회사원(선생님, 선생님도 결국 회사원이지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저도 열심히 회사 정치에 참여했느냐 하면, 그러지는 못했는데요. 업무를 하며 그 정치에 참여하지 못한 제게 그러면 안 된다고, 일은 다시 돌아와서 해도 되지 않느냐 하던 저보다 젊은 같은 직급의 직원이 떠오릅니다. 그는 그 자리에 참여했다가 다시 돌아와, 사무실에 혼자 남아 일하고 있던 제게 그런 말을 했었지요.  아, 저는 술을 좀만 먹어도 해롱해롱해서 잘 못 그러는데, 그런 개인사정은 영영 제 개인사정인 것이지요.  


강릉에 와서는 이런 나돌아다님을 일종의 출장이라 생각합니다.

쉼이 끝나면 다음 턴은 무엇일까

이런 의문을 안고서요.



친구들에게 노후는 강릉에서 하라고 하고 있는데, 그럼 저는 이제 노후를 시작한 것일까요. 국민연금도 아직 다 못 냈는데 ㅠ희한한 것은 인생이 자기 질문에서 시작해 자기 대답으로 끝나는 삶이 버거우면서도, 회사에서 남의 일을 하다 보면 이 많은 시간이 왜 이렇게 쓰이는 걸까, 나는 왜 내 시간을 나를 위해 쓰지 못하지 이런 불만이 가득했는데, 실제로 아무것도 없이 나의 질문과 나의 답만을 안게 되자 그 또한 버겁다는 것입니다. 아주 당연한 얘기지요. 세상과 혼자 맞설 만큼 저는 강하지 않습니다. 빈센조 같은 드라마가 나오는 이유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로망이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은 로망 속에 드라마 속에 있는 거고, 한 사람 인생은 늘 버겁고도 소중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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