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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다다 Jul 03. 2021

매일 걷는 사람이고 싶었어요

인생은 용기이므로, 하루하루 용기내 살다 보면 건강해진다

며칠 전에도 1만보를 걸어 주문진 방파제를 다녀왔습니다. 걷다 보면 뭐가 나아지나 하면 그렇지는 않아요. 요새 나는 질문이 없고 왜 내가 이런지 알 수 없고, 이게 다 복이지 하면서도, 질문이 있어야 답이 있는데, 왜 질문이 사라졌지, 다시 질문이 떠오를까, 하면서 걷다가 아기고양이를 만나 아기고양이에게 간식을 준 게 가장 뿌듯한 일이 되어 집에 돌아왔습니다.  



즉물적으로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리스인 조르바처럼요. 하지만 실은 그리스인 조르바는 앞부분을 읽다 말았는데, 느낌은 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 여기 세상의 끝 같구나 하면, 거기 가서 하루 종일 앉아있는 거죠. 아 내일은 뮤지엄  산에 갈까 하면 거기 가는 거예요. 그냥 하는 거예요. 하기로 했으니까요. 왜 그걸 하기로 했어? 하면 하고 싶었어, 그런 거요.  



매일 책을 보고, 매일 영화를 보고, 매일 걷고, 음악을 듣고, 그게 꿈이었어요. 이 모든 것은 인풋이라, 사람은 아웃풋이 필요합니다. 배 부른 소리이지만, 노동은 아웃풋일까, 내가 세상에 참여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책도 노동의 결과물이지요. 누군가 글을 썼고, 그것을 편집했고, 그 책이 잘 팔리라고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넣은 결과물인데, 그 결과물의 주인공들이 때로 그들만의 리그 같이 보이는 것은, 오늘 내 기분이 이런 것은, 며칠 전부터 시작된 목아픔 때문일까요. (코로나 검사를 바로 받으러 갔는데 다행히 음성이 나왔어요) 날이 끄무레해서일까요.  


아직 강릉에 온 지 1년은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잘 살아 보고 싶은데, 그 잘 사는 방법은 뭘까 했을 때, 그것은 건강이었습니다.  



예전에 회사 다닐 때 이런 말을 써뒀었어요.

'인생은 용기이므로, 하루하루 용기내 살다 보면 건강해진다.'

제가 만든 제 인생의 좌우명 같은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건강해지는 거지요. 그전에 많이 아팠냐 하면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늘 피곤하고 'a sound mind in a sound body'라는 어린 시절 배운 영어속담을 떠올리며, 몸이 건강해지면 마음도 산뜻해지겠지, 그런 겁니다.


제가 여기 와서 손가락을 다치기 전까지 비교적 잘한 일은 매일 요가를 한 거였습니다. 일어나자마자 물 한 잔 마시고 요가를 합니다. 요가를 시작한 지 2년 정도가 된 것 같습니다. 회사를 다니며 요가를 주 3일 정도 하다가 강릉에 오고 나서는 집에서 일어나자마자 요가동영상을 틀고 홈트 중입니다.


2년이 지났으니 대단한 실력자가 되었느냐구요? 아니요. 2년째 초보입니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나아진 것 같아요. 그때는 찐초보였다면, 지금은 그냥 초보 정도. 평생 몸보다는 머리를 쓰는 데 더 익숙해 내 몸 자체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으니까요. 살다 보니 그랬습니다. 성장하며 가슴이나 이런 게 거추장스러운 무언가가 되어버렸어요. 지금 아이들도 그러려나, 놀리고 하니까 내게 왜 이런 게 생겨서… 하면서 몸을 도외시하고 운동신경도 딱히 좋지 않아 평생 체력장 5급을 면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내 몸은 내 것인데요 별로 신경쓰고 싶지 않았어요. 아름다우면 표적이 되고 못 나면 관심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회사를 다니던 어느날 뭐라도 해야지 나를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 할 때 마침 집 앞에 요가학원이 있었고 5개월 등록하면 1달 무료 이런 할인 프로그램을 보고 등록을 했습니다. 밤에 무작정 가서요. 요가매트도 그때 학원에서 구입했습니다.  


그때는 코로나 전이라 사람도 많았어요. 30명 정도의 사람들이 저마다 자리 잡고 앉아, 요가를 하는데 찐초보인 저와 달리 꽤 익숙하게 요가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거기서 주 3회 요가를 했습니다. 회사 끝나고 돌아와서 맥주 한캔과 샐러드 같은 것을 먹고 가서요. 그래서 늘 약간 술기운이 있는 채요.


집에 오자마자 술을 마신 이유는, 미움 같은 것이 몸에 똘똘 뭉쳐있어서 였던 것 같은데, 그게 내가 받은 미움이지 품은 미움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질투를 받고 있었던 것 같은데, 왜 나를 그리 대하는지 알 수 없고 그런 생각들이 미움을 만들고요. 미움이 몸속에 흐르게 되면 그 미움이 내가 받은 미움인지 품은 미움인지 알 수 없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느날인가는 그런 제게 친구가 아침 공복 상태에서 요가를 해보라고 했습니다. 다른 친구 얘기를 들려주며 어떠냐고 했고, 저는 그 주 토요일인가 일어나자마자 아침 요가를 하러 학원에 가서 몸에 애를 쓰며 1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바사나 도중에 눈물이 났어요. 엉엉 운 것은 아니고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이것저것 그동안 묻어두었던 생각들이 몸을 움직이자 터무니없이 물질이 되어 바깥으로 나오는구나, 싶었습니다.


이제 더는 요가를 하다 울지 않습니다. 요새는 손가락이 다치며 한동안 손가락에 힘을 주지 말라 해, 다운독 같은 자세가 불가능해 요가를 안 하다 보니 몸이 또 게을러져 요가를 안 하기 시작했는데, 다시 내일부터 몸을 움직이는 삶을 살며, 아 내 몸, 심지어는 우쿨렐레 같은 것을 배우다보면 내 손가락 하나마저 내 맘대로 안 되는 한계 같은 것을 몸소 느껴야겠습니다.


손가락이 다친 동안, 열심히 한 일은 매일 1만보 걷기였습니다. 주문진 방파제까지 바다를 따라 걸어오면 1만보를 걷게 됩니다. 매일 바다는 달라서 걸으면 신기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그마저 좀 지루하다 싶을 때는 동네 이곳저곳 안 가본 곳을 갑니다.  



강릉은 걷기 좋은 동네에요. 어디를 걸어도 예쁩니다. 그냥 동네를 걷는데도 예쁘게 마당을 꾸며놓은 집이 가득합니다. 솔향강릉답게 여기저기 솔숲이 펼쳐져 동네 하나로마트 가는 2000보 정도 걷는 길도 더할나위없는 솔숲을 지나가게 됩니다. 김태리 씨 주연의 '리틀 포레스트' 속 김태리 씨가 자전거 타던 그 길처럼요.



바우길이라고, 걸을 수 있는 길을 연결해놓은 구간도 17코스나 되는 데다 거기 더해 국민의 숲길, 계곡바우길, 100km의 울트라바우길도 있지요. 여기 와서 생각한 게 바우길을 끊어서 매일 1만보 걷자 였고, 바로 집 앞의 바우길 12구간은 다 걸었으나 다음 가까운 바우길을 가려니, 어느 순간 혼자 걷기 무서운 길이 펼쳐져 지금 그 계획은 물러두고 동네 안 가본 길 걷기를 하고 있으나, 다시 조금 더 용기가 생기면 바우길 모든 코스를 완주할 계획입니다.  



꼭 바우길이 아니더라도, 경포만 가도 온통 걸어도 걸어도 좋은 곳 투성이입니다. 경포에 가 걷다 보면, 왜 경포가 강릉에서 제일 유명한지 절감하게 됩니다. 봄에는 굵은 벚나무가 황홀하고 여름이면 걷는 내내 무성하게 눈앞에 뻗은 산세만으로도 절로 시원해집니다. 갑자기 쭉쭉 나란히 뻗은 옥수수대를 보는 것 또한 기쁨입니다. 경포호 부근에는 허난설헌 생가터와 오죽헌도 있지요. 거기를 걷다 보면 '여성친화도시 강릉'이라는 팻말을 보게 되는데, 이 팻말이 페미니즘이 착륙하기 전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허난설헌 생가터의 아담한 아름다움이나 오죽헌을 가는 길의 한적함을 누리다 보면(주말에는 사람이 많아 주중에 가는 게 좋지요. 심지어 강릉시민은 입장료가 없습니다) 와 사는 게 괜찮은 일이구나 싶어집니다. 이외에도 경포 부근의 시루봉이나 춘갑봉을 가다 보면 야트막한, 산책과 등산 사이의 쉼의 길들이 여기저기 뻗어 있어(바우길 11구간, 14구간 길이기도 합니다) 이 동네야말로 자연을 누리며 걷고 사는 게 가능해, 알 수 있게 해주는 곳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 7월 초 경포에는 연꽃밭의 연꽃이 막 봉오리를 올리고 새초롬합니다. 가시연습지를 곁에 두고 있는 경포에 아직 가시연이 피어나지는 않은 듯 하지만(가시연의 꽃말은 '그대에게 행운을'이더군요) 대신 연꽃이 피어나기 전 아름다움을 내뿜고 싱그럽습니다.  



매일 1만보 걷기 계획은 장마가 다가오며 (지금도 비가 내립니다) 비옷을 입고 나갔다 와서 샤워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약간 기로에 서있긴 합니다. 그러나 오늘이나 내일 못 걸어도 강릉은 언제 어디를 걸어도 좋은 곳이 많아, 매일 1만보가 일종의 행복입니다.


매일매일 용기를 내 살다 보면 건강해지는 삶은, 한 걸음의 내딛음이 시작이겠지요. 어떤 날은 모든 질문이 다 증발해버린 것 같고, 어떤 날은 세상은 그러거나 말거나의 세계이며, 아무도 너의 엄마가 돼주지 않아, 하며 진실이지만 알고 나면 너무 차가운 세계 속을 헤매지만, 그래도 아직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고, 내딛다 보면 어딘가 당도해 있겠지요. 이것은 내가 선택한 삶이니, 그라시아스 라비다(gracias a la vida(삶에 감사해, 메르세데스 소사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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