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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다다 Jul 02. 2021

그래도 해볼라고 노력 중

그런 기분이에요. 다들 시험지를 받아들고 시험을 보는데 나는 시험장을 나와버린 거죠. 취직을 하기 위해 이력서를 내고 떨어지면 그건 시험을 봤는데 계속 틀리는 그런 건데, (저도 자주 그랬거든요. )그때의 열패감이 정말 싫은데 이제는 시험장을 나와버려서, 시험을 볼 수 없게 된 거예요. 자발적으로 뚜벅뚜벅 걸어나온 거예요. 시험을 계속 보며 머리를 쥐어뜯는 사람들은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되는 제가 부럽겠지만, 시험을 안 본 사람은 시험을 안 본 대가를 또 그만큼 치러야 하잖아요. 학교라고치면 선생님과 부모님께 혼나고, 앞으로 계속 될 이 성적표에 남을 숫자들이 내 인생에 미칠 데미지를 그대로 안고 사는 그런 거요. 마찬가지로 이제 성인인 저를 학생처럼 혼낼 사람은 없지만, 세상살이 남들 사는 대로 살지 않는 사람을 쳐다보는 눈길 같은 것을 느끼며 산다는 면에서는… 어쩌면 시험장을 뛰쳐나온 학생을 혼내는 선생님이나 부모님도 그렇게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하는 이 아이를 타박하는 이유가 네가 이 세계의 룰, 성적으로 판가름나는 이 세계의 룰에 맞설 만큼 강하지도 않은데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했느냐 탓하는 것이라는 면에서는, 저는 비슷합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그런 말들이 결국은 제게는 짐이 될 수밖에 없지요. 마찬가지로 시험을 안 본 대가로 내 인생에 남을 데미지를 고려해보기도 합니다. 가장 크게는 경제적인 거고요. 이 길 다음은 어디인지 그 다음은 알 수는 없지요. 지금은요.  



생전 모르는데 혼자 왔느냐고요? 주변에 아무도 없느냐구요?

그건 아니구요. 지인들이 여기 살고 있었어요. 가끔 그들과 왁자지껄 놀기도 해요. 그리고 하루가 지나면 공허하지요. 그러나 그들이 있기에 그래도 아 관계를 좀 맺고 그러니까 나도 사람이지 할 때가 좀 더 많은 것도 같아요. 이 관계 속에는 정치 대신 어떤 따스함, 친근함 같은 게 있거든요.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그 속의 정치관계에 얽히게 마련이지요. 회사생활을 할 때 역시 왁자하게 술을 마시고 돌아와서 공허했던 밤이 있지요. 그러고보면 공허나 고독은 디폴트값이 아닌가 싶어요.  



10년 전에는 카페에서 알바를 했어요. 홍대 근처에 있는 카페였어요. 제가 그만두고 얼마 안 지나 엄청난 카페가 되었다고 하는데, 저는 거기 제 지분이 있다고 여전히 생각하지요. 알바하는 동안 내가 듣고 싶은 음악 듣고 싶어 거기 컴퓨터에 내 음악 파일을 다 넣어놨거든요. 제 음악취향을 저는 좋아합니다. 당연한건가. 거기는 어느날 문득 왠만한 인디밴드들은 다 공연하게 된 공연장이 되었다고 하는데, 제가 듣던 음악들의 뮤지션들도 와서 공연을 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 취향이 스며든 곳이, 어느날 왕왕 둥둥 뜬 게 아닐까 합니다.  


그때는 10년 뒤에 제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줄 몰랐어요. 거기는 서울, 그 다음 세종시, 그 다음 강릉으로 넘어왔습니다. 여기서 잠깐. 제가 간 데는 다 떠요. 그러니 강릉으로 오세요. 그래서 세종시에서 집은 한 채 샀습니까, 하면 특별공급에 당첨됐는데, 돈이 없어서 못 했어요. 특별공급을 할 수 있다기에 한번 해볼까 신청하고, 그게 덜컥 당첨이 되고, 그것을 분양포기하면 그 기회가 날라간다는 것도 모르고 신청을 한 거지요. 그런데 당장 보니 낼 돈도 없고, 대출을 받자니 잘 몰라서 무섭고, 그래서 날려보낸 그 아파트. 모델하우스도 못 가봤어요. 근데 알고 보니 좀 위치가 안 좋았던 그 아파트는 위치가 안 좋으니 삐까리뻔쩍 인테리어를 했고, 40평대에 3억 2,3천 하던 아파트는 이제 6억이 되었군, 하며 세종시를 나왔습니다.



그때만 해도 40평대의 호화스러운 아파트를 내가 왜 했는데,(84제곱미터가 30평대라는 것도 모르고 덜컥 분양을 넣은 거예요) 아이가 둘인 사람들에게 40평 아파트는 그럴 수도 있는 거인 거예요. 서울에서는 10억을 줘도 살긴 힘든 그런 데고 막 지은 아파트고 세종시가 아파트나 부동산의 핫플인 것을 모르시는 분은 없잖아요. 분양도 모르고 청약도 모르고 30대를 그렇게 지나갔는데, 며칠 전 만난 친구들도 여전히 그렇더라구요. 에이 바보, 후회를 했는데, 여전히 다들 그래요. 집은 너무 큰 돈이 드니까, 그 초기자본금을 마련하는 것은 너무 힘드니까, 그러지 말고 이것저것 찾아보면 좋지만, 일하다 보면 그럴 에너지는 없지요. 그건 안 알아보는 친구들 탓이 아니라 너무 바쁜, 나를 위해 시간을 낼 여유가 없는, 통장잔고는 거의 텅빈, 그런 저같은 친구들에게는 아주 당연한데,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제가 간 데는 대부분 뜨니까, 강릉으로 오라는 거예요. 그냥 집만  사면 비추,(이런 사람들 예전에도 많은데 그러지 말고) 몸과 마음이 다 오면 좋구요. 이건 우리나라 균형발전에 아름다운 일 아닌가요? 그럼 돈은 어떻게 벌어? 감자라도 캐나? 네, 요새 제가 생각하는 겁니다. 감자 캐러 가야 하나, 하다가, 감자 캐러 가기 전에(아 나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지금껏 열심히 길러온 재주로 뭐라도 해볼까 해) 먼저 글을 써봅니다. 얘기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얘기하는 거 좋아하고, 저도 좋아해요. 정치말고 (언어도 어느 순간 정치지만) 얘기요. 나는 이렇게 살아요. 이렇게 사는데, 이게 나쁘지는 않은데, 좋아 베리 그레이트 하기에는 좀 난제가 있고 그래도 해볼라고 노력 중, 이런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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