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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다다 Jul 05. 2021

주린이 생활백서

여기 와서는 아침마다 뉴스 듣는 습관을 이어가 연합뉴스나 YTN도 들었는데, 그러다 보면 맨날 정치인들끼리 편가르기 하느라 뭐가 팩트인지 모르겠고 코로나 숫자도 궁금한 때도 지나고 해서 이제 아침에 잠깐 뉴스 틀었다 바로 주식방송 들어요. 유튜브요. 그러다보면, 와 하루하루 지수가 바뀌고 뭐 그런 게 다 있습니다. 그속에 신문 사회면은 양념 같기도 하고요. 예전에는 신문스크랩 이런 것도 하던 시대 사람인데 그때는 주로 사회면, 국제면 이런 거 스크랩 했는데, 주식 속에는 왠만해서는 사회면은 없어요. 대신 큰흐름, 그러니까 경제라는 큰 흐름이 있는 것 같아요. 미얀마에서 많은 젊은 친구들이 죽어 슬퍼도 실은 결국 경제라는 큰 흐름 속에 서, 그 흐름을 듣고 읽고, 삼프로TV 김프로님이 말한 대로 주식은 별처럼 많다더니 정말이구나 실감하면서, 내가 슬퍼해도 될 건 없지만, 계속 먹고 살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뤄야 하니까, 그것을 치루기만으로 벅찬 삶이니까, 그것을 위해 귀와 정신을 열고 사는 거예요.   


아 저는 40년을 살았어요. 강릉에 오기 전까지 40년 동안 월세를 내는 삶을 멈춰본 적이 없어요. 나나 우리 엄마 등등 우리 가족은 노동을 하고 그 노동력은 늘 월세가 된 거예요. 우리 가족은 네 명인데, 네 사람이 한 방에서 자고 먹고 하는데 드는 돈을 내는 게 인생이에요. 그 돈을 벌고 저는 아이였으니 그 아이 학교도 보내고 뭐 그런 돈들을 버는 게 인생인 삶을 제 부모님은 사셨고, 저는 그 삶을 물려받아, 20대 초반이 지난 후 그 삶을 그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시대의 트렌드에 맞춰 대학도 나오고 무대를 옮겨 서울에 오니 하드스테이지였다고 하기에는 저는 자식도 없고 뭐 나 하나 몸 누이면 되니 하자면, 서울에서 20대 초반 여자가 혼자를 누일 곳을 혼자 힘으로 마련하려면, 뭘 해야 하지요? 다행히 요즘은 청년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각종 정책이 도입되고 있지만, 제가 서울을 떠나던 그때는 그런 게 없었어요.



그리고 이후로 달려오던 길을 이제 벗어났습니다. 로버트 푸르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저 같은 사람들에게 좀 좋은 위로인 수 있지만, 그렇다고 무게가 덜어지지는 않습니다. 하루가 주어지고 그 하루를 어떻게 쓰든 내 마음입니다. 하루종일 잘 수도 있고, 걸을 수도 있습니다. 하루종일 책을 읽어도 되고, 하는데,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주식창을 열심히 들여다봤습니다. 주린이에게 세상의 별처럼 많다는 주식은 하나하나 새롭고 지금 막 떠오른 주식을 누군가 팔고 누군가 사고, 그 1부터 10000까지의 숫자가 4만원부터 4억까지인데 이렇게 1초도 안 돼 많은 돈이 오가는구나 나는 25개를 사기 위해 마음을 이다지 졸이는데 이 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건가, 하면서요.



그러다가 누구는 4억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데 나는 1백만원에 흔들리는구나, 아니지 1백만원도 아니고 그것을 얼마에 사면 되는가 2천원 더 싸게 살 것인가, 2천원 곱하기 25하면 나오는 그 액수에 내 마음은 졸아들고 그 숫자는 2천에서 50으로 내려가기도 하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시는 이 주식이 사고 팔리는 광경을 열심히 들여다보지 말아야지, 내 하루를 거기 태우면 안 되겠구나 했습니다.  


제가 산 주식은 요새 참 핫한데요. 그 주식과 저는 뭔가 거대한 인연이 있나 하지만 누구는 4억도 던지고 하는데, 이거 참, 이 거대한 인연은 실은 그냥 제가 만든 환상인 것이지요. 거기서 얻는 이익이 또 얼마나 달라질 거냐 하면 자본금 자체가 적으므로 실은 소소한 액수일 테지요. 아, 어제는 거리의 누군가가 1천원을 행인에게 빌려달라 했는데 빌려주지 않아 살해했다는 뉴스가 나왔더군요. 여전히 세상은 1천원에 목숨이 오가는 곳이고(물론 분노는 더 오래된 데 있고 그 죽은 분을 잃은 세상의 슬픔은 더 깊을 것이나)  그런면에서 1천원은 적은 돈일까 많은 돈일까 4억은, 내가 투자할까 말까 망설이든 1백만원은 이런저런 질문 속에 하루가 갑니다.



그 사이 오늘은 강릉의 똥바람이 불어 거리의 표지판이 흔들리고, 누구는 하루종일 낚시를 하고, 저는 돈까스가 먹고 싶다는 친구와 파스타집에 가서 비싼 파스타를 먹고 각자 강릉페이로 계산합니다. 저희는 둘 다 수입이 그럭저럭이라 뭘 사고 그럴 처지가 서로 아닌 걸로요. 이런 더치페이 세계가 저는 편합니다.  


야 그깟거 얼마 한다고 내가 낼게

이런 말이 어떤 날은 더 불편해요. 호의일 때는 감사하지만, 그게 아닌 어떤 감정이 그 말 속에 섞이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엄마는 내가 너무 예민해서 살기 힘들겠다 하는데, 어쩔 수 없지요.



느낀 것을 느끼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아요. 느낌은 물론 정확한 것은 아니니까, 수치화할 수 없으니까, 얼마짜리 느낌인지 있는지 없는지 실은 알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돈도 실은 그런 게 아닌가, 얼마쯤 되면 많은 돈이고 얼마쯤이면 적은 돈일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이 마흔에는 얼마를 벌면 돼, 이런 기준이 법이나 신의 뜻처럼 정해져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거라면, 다들 거기를 향해 뛰어가겠지요. 모범생은 좀 더 열심히, 누군가는 좀 덜하더라도, 또 어쨌든 거기 가지 못하는 스스로를 재촉하며, 그런데 얼마라는 기준 같은 것은 실은 없잖아요. 나이 마흔에는 집도 있고 차도 있어야 해, 골프도 시작해야 해, 월수입은 얼마, 이런 기준이 세상에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게 아니어도 실은 되잖아요. 그렇게만 하면 다 되는 게 아니고요. 나이 마흔에는 몇 명을 도와줘야 해, 몇 명을 후원해야 해, 기부해야 해, 이런 기준도 또한 없지요. 나이 마흔에는 애가 하나 아니면 둘, 나이 마흔에는 남편 없으면 애인이라도, 이런 기준도 실은 없는데, 은근히 존재하지만, 실은 그냥 느낌 같은 거잖아요.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제게는 그 기준이 없는 것이라, 누군가 그게 있는 사람을 만나면 불편하기도 하지만, 탓할 수는 없구요. 우리는 다른 길을 갑니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요. 정해진 길은 정말 없는데, 그게 다행인데, 다른 말로 자유라고도 하는 것은, 어떤 날은 버겁고 어떤 날은 좋습니다. 세상만사 다 그렇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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