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가 나를 지켜내야 하는 시간

부당한 업무지시에 대처하는 워킹맘의 자세 (1)

by 삐와이




"엄마도 엄마를 지켜야해요."

네 살배기 아들이 건넨 이 말이 복선이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내가 나를 지켜내야 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최근 회사에 대규모 인사발령이 있었다. 거의 모든 부서가 뒤엎어질 정도의 규모였고, 많은 직원들이 놀라워했다. 내가 있는 부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를 이끌어주고 격려해준 팀장님과 선배 직원들은 모두 다른 부서로 전보를 받았다. 떠나는 분들께 작은 선물과 함께 감사 인사와 위로를 건넸지만, 오히려 그분들이 남아있는 나를 걱정하셨다.

"이렇게 조직이 쪼개지면 남아있는 팀원들에게 일이 몰릴 수밖에 없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지켜준다'라는 말이 가슴에 박혔다.




새로 부임한 팀장님과 차장님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결을 보여주었다. 팀장님은 겸무로 CEO 집무실에 살다시피 해서 얼굴 보기가 힘들었고, 차장님은 그런 팀장님 역할을 맡겠다고 선언하셨다. 업무분장도 바뀌었다. 내 일에서는 귀찮지만 크게 힘들지 않은 업무 몇가지가 차장님의 몫으로 빠지고, 대신 선배 직원 업무는 쪼개져서 저연차 직원들에게 나눠졌다. 그중 80%를 차지했던 일은 내 몫이었다.

차장님이 개인 카톡으로 나를 회의실에 불러냈다.


"이전과 달리 부서가 힘든 상황이에요. 후배들도 어려운 상황이고... 상황은 점차 좋아질 거고 신규 채용 있으면 충원도 될 테니까, 한동안 힘써줬으면 해요."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당장 지난달부터 등원 시터님이 그만두시는 바람에 급여를 차감하며 육아기단축근로를 쓰고있었다. 아이들의 주기적인 병원 진료, 육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현실 때문이었다. 기존 업무는 집에 가져와서 아이들 재우고 겨우겨우 해내고 있었지만 여기서 선배직원의 업무 80%라니...


"제가 이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요."

"그럼 후배 직원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구요?"


말문이 막혔다. 네가 하기 싫다면 직접 아래 직원에게 짐을 지워보라는 뜻으로 들렸다.

내가 어필하는 모든 말들은 '본인이 나 정도 급일 때 이미 다 해봐서 안다'는 방패에 튕겨져 나갔다. '힘든 건 아는데 본인이 다 도와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는 껍데기뿐인 다정함에 헛웃음이 절로나왔다.

앞으로 계속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직속 선배와 싸워서 득 될 것 없다는 판단, 그리고 당장 사내 시스템업무 담당자가 부재하면 안된다는 현실적 판단에 '일단 차장님 의도는 이해했다. 당장 급한 일은 제가 빨리 배워서 하겠다'는 말을 하고 자리를 떠났다.

떠나는 선배 직원들은 이 부당한 업무분장에 나보다 더 분통을 터뜨렸다. 나라고 괜찮을 리 없었다. 당장 시스템 민원처리 방법이라도 알려달라고 떠나는 선배 직원을 붙잡았지만, 그 내용이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한쪽에서는 벌써 사내 시스템 관련 문의 전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신임 차장과의 면담 이후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갔고, 퇴근 시간이 되었다.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집에 도착했는데, 하필 그런 날은 아이들도 심하게 보채고 짜증 일색이었다. 훈육이고 뭐고, 나는 하소연하듯 아이들 앞에서 버럭 화를 냈다.

"너희들까지 진짜 왜 이래! 엄마도 힘들어! 제발 그만 좀 해”

결국 아이들에게 신경질적으로 화를 내고 말았다는 찝찝함에 침대에 누워 하루를 돌아보는데 아이들에게 화를 내면서 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세상이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야!
그때마다 그렇게 소리지르고 짜증낼거야?’


‘그래, 맞아. 마음대로 안된다고 절망하고만 있을거야?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거야?’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나니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도, 가만히 있어도 울그락붉그락 불이 나던 마음도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래, 기회가 온 것이다. 나는 나를 지켜내기로 했다.


본격 빌런 퇴치노력은 다음 쉼표- (8.11 발행)에서 계속됩니다


2025.08.08


※ 삐와이의 브런치 글은 인스타툰, 카드뉴스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D

https://www.instagram.com/ddol.mom_by/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11화프로불편러가 프로감사러로 살아가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