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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림 Oct 19. 2019

작가라면 한번쯤 느꼈을 순간들

어쩌다 발견한 7월 (웹툰 스포를 담고 있습니다.)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가 방영하기 전 등장인물 소개를 읽고 신박함에 무릎을 탁쳤다. 만화속 세상을 배경으로 설정하고, 거기에다 여주인공이 만화속 엑스트라인 설정이라니! 근데 확인해보니 웹툰이 원작이었다. 원작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거듭거듭 놀라며 작가가 천재임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만화 속이란 설정은 요새 판타지 관련 이야기들이 범람하기에 더 이상 특이한 설정이 아니다. 하지만 여주인공 은단오가 만화속 엑스트라라는 것과 자아가 생긴 은단오가 만화 세상의 법칙과 싸우면서 하루와 감정을 쌓아나가는 것이 굉장히 특별했다.    


앞에서 말한 것들이 특별한 이유는 인생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그렇기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엑스트라인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를 둘러싼 상황들과 갈등한다. 그것이 사랑이던 꿈이던 말이다. 또한 기존의 순정만화의 법칙을 비튼 느낌이기에 그 신선함은 배가 된다.    


오늘 여기서 쓰려는 것은 ‘어쩌다 발견한 7월’에서 보면서 작가라서 격공했던 부분이다. 이 부분 때문에 나는 작가가 천재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 자아가 생긴 캐릭터. 은단오는 자아가 생기면서 비로소 자신이 있는 세상이 만화 속임을 알게 된다. 가상의 캐릭터에 자아가 생기다니 참 만화적인 설정이다라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작가라면 이런 상황에 여러번 마주하다. 분명히 내가 만들어낸 캐릭터인데 내가 원하는대로 가지 않고 자기 멋대로 움직이고 말하기 시작한다. 만들어 놓은 길이 있기에 그쪽으로 몰아갈라치면 “난 이런 사람이 아니야! 니가 뭔데 이딴 짓을 하는 거야!!” 욕하는 소리가 귀에 생생하게 들려온다. 글이 유기체라는 소리를 들어봤을 것이다. 캐릭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캐릭터는 어느순간 작가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생명력을 가진다.    


두 번째. 캐릭터 ‘돌려쓰기’. 웹툰에서 은단오는 작가가 공모전에 쓰려고 준비해두었던 주인공 캐릭터를 다른 이야기에서 엑스트라로 썼다는 것이 후반부에 밝혀진다. 소위 ‘돌려쓰기’를 한 것이다. 캐릭터가 더 필요한데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해내는 것은 무리가 있고 그런 상태에서 예전에 자신이 만들어두어서 손에 익은 캐릭터가 생각난다. 그럼 ‘돌려쓰기’를 하게 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 보면서 찔렸다.    


세 번째. 작가의 무자비함. 사실 주인공을 가장 힘들게 몰아가는 것은 악역이 아닌 작가다. 악역 뒤에 작가가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캐릭터를 작가가 극한의 상태로 몰아간다. 오직 이야기를 위해서. ‘어쩌다 발견한 7월’에서 작가가 가장 잔인하게 굴었던 캐릭터는 이도화였다. 부모님이 저지른 죄 때문에 좋아하는 감정마저 죄스럽게 된 캐릭터였다. 이도화를 보면서 나는 내가 극한으로 몰아가 끝내 목숨을 버리고 잃었던 캐릭터들을 떠올렸다. 이야기를 위해서였지만 그 캐릭터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무겁다.    


여기까지가 내가 웹툰을 보면서 격공했던 부분이다.     


웹툰의 느낌과 드라마의 느낌이 많이 다르다. 웹툰은 애틋하고 비장하다. 드라마는 통통 튀고 귀엽다. 둘 다 나름의 매력을 갖고 있지만 웹툰이 조금 더 마음에 남는 이유는 여자주인공의 느낌 때문이다. 웹툰에서 은단오는 화살이 쏟아지는 전장에서 한사람만을 보면서 나아갔다. 그 느낌이 너무 강렬하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이렇게 만들기가 어렵다. 내가 각색을 한다고 했어도 웹툰의 톤으로 가지는 못했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웹툰의 톤을 살려볼 수 있지 않을까하고 기대한다. 만약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웹툰 특유의 애틋함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웹툰의 결말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야기가 실제하는 것이 아닌 소설 속이나 만화 속 상황이다, 라는 설정은 사실 굉장히 위험하다. 후반부에서 가상의 이야기란 설명이 자칫 공허함을 줄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웹툰에서는 굉장히 영리한 방법으로 그러한 공허함을 피해갔다. (이 부분 때문에 난 정말 작가가 천재라고 생각했다.) 드라마도 부디 그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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