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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림 Feb 19. 2022

스물다섯 스물하나, 경우의 수2

사실 아련한 추억의 이야기에는 2-1)의 방향이 많이 나온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건축학개론,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 너의 결혼식, 라라랜드가 있다.


[2-1) 나희도는 딸의 친 아버지와 현재 결혼 생활을 유지중이고, 백이진은 과거의 추억이 되었다. 백이진을 보면서 청춘의 한때를 추억한다.]


그런데 나는 2-1)은 드라마라는 매체에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화에는 이러한 결말이 많지만 드라마에서는 이런 류의 이야기가 드문 것이 그걸 방증한다.


왜 드라마에서 압도적으로 남자주인공, 여자주인공이 잘 되는 해피엔딩이 많은 줄 아는가?


요즘 사회가 힘들어서? 그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그게 드라마의 해피엔딩 비율이 왜 그렇게 높은지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드라마는 영화와 다르다. 영화는 2시간이면 끝나지만 드라마는 2개월 이상 보고 런닝타임을 다 합치면 16시간 이상이 된다.


영화보다 8배 이상 긴 것이다. 짧은 이야기는 다양한 결말을 낼 수 있지만, 긴 이야기는 생각보다 다양한 결말을 내기 어렵다.


그 이야기를 같이 즐겨준 시청자를 결과적으로 배반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종영한 드라마 공작도시가 필자는 이러한 예라고 생각한다.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주인공이 아귀다툼에서 나오는 걸로 상황이 마무리된다.


16부까지 끝까지 본 시청자들은 ‘이런 걸 바란게 아니었다’며 분개했다.


시청자가 원한건 현실이 아니라 ‘대리만족’이었으니까.


현실이 삭막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드라마에서까지 말하지 않아도 된다.


드라마는 극 속에서의 리얼리티가 필요한 거지 진짜 ‘리얼’이 필요한게 아니다.


작가는 그게 현실이라고 항변할 수 있을지언정, 시청자를 만족시키진 못했다.


만약 내가 공작도시의 작가였다면 성진가를 몰락시키고, 다른 가문이 그 자리에 서서 같은 아귀다툼을 하는 걸로 그렸을 것이다.


복수를 하면서도 현실의 씁쓸함은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이야기가 많이 샜지만, 작가가 결말을 선택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다시 돌아와서 그렇다면 필자는 어떤 경우의 수가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등장할거라고 여기고 있냐하면 1-3), 2-2)이다. 


[1-3) 친구의 딸을 키우고 있어 성씨를 유지했다.

2-2) 나도희가 결혼 했으나 혹은 이혼한 상태고, 현재 시점에서 백이진과 다시 사랑에 빠진다.]


1-3)의 경우가 댓글에도 가끔 등장하는데 고유림의 딸을 키우는 것이 아니냐고 추측하는 시청자가 있다.


하지만 필자는 왠지 지승완일 것 같다. 지승완이 빨리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승완은 뭔가 삶에 미련이 없어 보인다고나 할까.)


근거는 없다. 그리고 사실 이렇게 예상해서 맞은 적도 없어서 오히려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2)는 이러한 유형의 드라마, 그러니까 아련한 추억과 현재가 교차하는 드라마에 많이 나온다.


필자가 작가라면 1-3)을 선택했을 것이다. 


일단 나희도 주변에 김 씨 성 남자를 등장시켜서 둘이 뭐 있는 거 같이 시청자를 잔뜩 교란시킨다.


그러다 지승완의 죽음으로 나희도가 그 남자와 더 가까워진거처럼 보이게 해서 시청자가 폭발직전에 이르게 한다.


그러다 그 화가 끝날쯤에 실은 딸이 지승완의 딸이라는 걸 오픈하면서 남편이 그 남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여지를 준다.


이런 라인을 취할 경우 지승완의 죽음으로 추억은 더 애틋해지고, 지승완의 분신인 딸은 그 애틋함을 울컥 차오르는 감정으로 증폭해 줄 수 있다.


필자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근거는 없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런식으로 경우의 수를 만들고, ‘내가 작가라면’하는 생각으로 고른 선택이 작품을 쓰는데 분명히 도움이 될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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