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전인가 친한 로맨스 출판사 직원이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웹소설 소설 보고 문단에서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하류 문학이래요.”
사석에서 문학 출판사 직원에게 직접 들었다며, 자조어린 그 웃음을 짓던 로맨스 출판사 직원을 필자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웹소설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웹소설 시장의 전체 매출이 지금도 비교도되지 않게 아기자기하던 시절이었다. 아니 지금이 너무 우람해진건가?
문단에서는 웹소설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그 불편함에 웹소설 업계 사람들은 예민하게 반응한다. 쌓여온 감정들이 있어서 웹소설 업계 사람들 중 문단쪽이면 대놓고 날을 세우는 경우도 있다.
웹소설에 대한 시각이 많이 바뀌면서 많은 문단 사람들이 웹소설로 넘어가기도 했다. 웹소설 작가지만 순문학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웹소설에 부정적인 문단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아직도 같다.
‘플롯, 설정, 캐릭터가 찍어낸 것처럼 똑같다.’
‘깊은 사유가 없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 말은 웹소설에 부정적인 일반 독자들도 할 수 있는 말이다.
문단의 평이 일반 독자들과 다른 점이라고 하면 필자가 잘 모르는 고급 어휘를 사용한다는 것 정도?
문단의 비판대로 웹소설은 플롯, 설정, 캐릭터가 찍어낸 거 같고, 깊은 사유가 없다. (물론 아닌 작품들도 많지만 일면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번 생각을 해보자 왜 웹소설은 다 똑같을까?
한 시청자가 로맨스 드라마를 보려고 한다. 정치, 기업, 사회문제, 거시적인 이야기가 주로 나오는 드라마를 보려고 할까?
물론 좋은 작품에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깔려있다.
하지만 시청자가 로맨스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명확하다. 사랑 이야기를 보고 싶어서다.
웹소설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웹소설 장르가 나뉘어져 있고, 그 장르에서 독자가 원하는 명확한 목적이 있다.
같은 플롯, 설정, 캐릭터는 그렇게 완성되는 거다.
그러니까 문단에서 하는 저 비판은 웹소설의 존재 가치, 태생을 부정하라는 말과 다름없다.
문단은 문단의 길이 있고, 필자는 그 길에 동의하지않지만 존중한다.
한가지 정말 부탁하고 싶은 것은 문단의 잣대로 웹소설을 판단하지 말라는 거다.
노래가 주류이던 사회에서 랩은 굉장히 생경하고 이상한 문화였다.
왜? 노래의 잣대로 랩을 평가했으니까.
새로운 매체가 생겼다. 그러면 새로운 기준의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공중파가 주류이던 시대에서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소년심판’이 나올 수 있었을까?
못 나왔다.
세 작품은 케이블이나 종편에서도 방영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TV라는 매체가 보수적이고, 그래서 저 작품들을 절대 담을 수가 없다.
오직 OTT라는 새로운 매체, 플랫폼 안에서 나올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지금 웹소설이 향하는 방향이 다 맞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문단의 기준을 웹소설에 적용하지 말라는 말이다.
웹소설은 한미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시대를 풍미하고 사라진 왕조들처럼 역사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쩌면 역사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살아숨시고 있는 지금, 바로 현재가 결국 시간이 흐르면 역사가 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