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어떻게 결말을 낼지 궁금해서 15화를 건너뛰고 마지막화 후반부를 봤다. 주인공 커플의 헤어짐은 예정되어 있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작가가 그토록 말하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러니까 작가는 순간이어서 아름다운 청춘을 그리고 싶었던 거 같다.
의도는 참 좋은데 드라마를 보고 시청자에게 남은 건 순간이어서 아름다운 청춘이 아니라 분노와 배신감이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말은 작가의 영역이라고.
작품 중간에 이러쿵저러쿵하는 시청자들에게 필자는 중도하차를 권한다.
하지만 결말은 그 성격이 다르다. 단발성 그러니까 영화나 단막극이 아닌 장편 드라마, 연재 소설에서 결말은 그 성격이 달라야 한다.
단순히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게 아니라, 여태까지 드라마를 봐준 시청자들, 독자들을 어느 정도 만족시킬 수 있는 결말이어야 한다.
왜? 시청자, 독자들이 그 작품에 시간을 할애한 것에 대해 허무감이나 회의감을 느끼게 하지 않을 책임이 작가한테는 있다.
그게 끝까지 이야기를 함께해준 시청자, 독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리고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그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 일단 로맨스 드라마의 가장 큰 대전제는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듯이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오월의 청춘’에서 해피엔딩이 아닌 것에 대해 욕했던 시청자는 없었다.
또 ‘옷소매 붉은 끝동’처럼 역사가 비극으로 끝났을 경우처럼 작가도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그런데 ‘옷소매 붉은 끝동’은 사실이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본 시청자들은 만족했다.
왜냐면 작가가 여태까지 봐준 시청자들을 위해, 또 작품을 위해 충분히 괜찮은 엔딩을 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옷소매 붉은 끝동’은 감동적인 작품으로 남았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랑 다르게.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응답하라 1988’을 떠오르게 한다. 어남류, 어남택을 작가는 끝까지 가져갔고, 결론은 택이었다.
마지막화를 보고서도 결말을 못 받아들이는 시청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그것보다 더 심각하다. 희도가 이진하고 헤어지고 나서 누구랑 결혼했는지도 모른다.
희도와 이진의 서사는 저 멀리 날아가버렸고, 끈 떨어진 결말만 덩그러니 시청자들한테 남아있다.
가장 화가 나는 건 처음부터 두 사람이 헤어졌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명시하지 않고 계속 장난질을 쳤다는 거다.
남편에 대해서 보여줄 수 있었지만, 두 사람의 이별을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작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희도와 이진의 이야기여서 그랬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거기에는 장난질하려는 의도도 분명히 있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라면 굳이 현재 2021년 시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한때의 찬란함, 그렇지만 깨질지도 모르는 상태로 그냥 끝났어도 됐다.
그런데 굳이 굳이 작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솔직히 첫사랑의 아련함을 제대로 구현했는지도 의문이 든다. 백번양보해서 헤어지는 엔딩, 그래 할 수 있다 치자.
그런데 너무 두 사람을 끈끈한 사이로 만든 거 치고 헤어지게 한 이유가 궁핍했다.
사실 현실에서는 얼마나 깊은 사랑을 하든 별 같지 않은 이유로 헤어진다. 별로 사랑하지 않아도 관계가 계속되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가 쓰는 건 ‘이야기’이다. 현실적인 이유가 아닌 극에 맞는, 시청자를 설득시킬만한 이야기가 나왔어야 했다.
굉장히 결말이 뚝, 끝난 느낌이 든다. 유림, 지웅, 승완이 어떻게 사는지 현재 그들은 어떤 관계인지 나오지가 않는다.
그냥 제대로된 이별을 하지 못했던 걸 마음속으로 다시 제대로 이별을 되새기면서 끝났다.
그 중에서도 가장 최악은 현재 시점에 있다. 도대체 현재 시점이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현재 시점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두 사람이 헤어지는 엔딩이 그나마 차악이었을 거 같다.
그렇게 죽고 못살던 주인공 커플은 헤어졌는데 서브 커플들은 다 잘되어서 더 짜증났다.
진짜 아련하려면 다 헤어지는 걸로 가야하는 거 아닌가? 도대체 뭘 위한 아련함인가?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정말 드라마사에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작가가 절대 쓰면 안되는 최악의 엔딩으로.
파리의 연인,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응답하라 1988 정말 많은 드라마가 있었지만 이번이 제일 최악이었다.
앞으로 드라마 엔딩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그래 스물다섯 스물하나’도 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넘길 수 있을 거 같다.
향후 십년 내에는 이것보다 더 최악의 결말은 없을 것이다.
첫사랑을 아련함을 이런식으로 풀어낸 거 보면 정말 ‘그해 우리는’은 훌륭한 작품 같다.
시청자를 만족 시키면서도 ‘첫사랑의 아련함’을 정말 가슴으로 느끼게 했다.
종영한지 시간이 좀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해 우리는’을 떠올리면 울컥하고 아릿한 동시에 만족스런 미소가 떠오른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도 울컥할 것 같긴하다. 다른 의미겠지만.
마지막으로 소설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에 나온 말로 이 드라마를 평하고 싶다.
‘열광적으로 시작해서 침울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