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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림 Apr 12. 2018

TV 드라마가 감당해야 할 것

‘나의 아저씨’ 당연한 논란

코미디언 유병재가 팬클럽에 ‘나의 아저씨’에 관한 호평을 올렸다가 팬과 설전을 벌이게 되었다. 일부 팬이 로리타 콤플렉스를 포장한 것, 폭력성을 미화한 것 등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또한 기자 간담회에서는 감독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드라마 논란이 한몫을 한 것으로 보였다.     


TV 드라마에 대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 이런 상황이 매우 웃기게 보일지도 모른다. 고작 ‘가상’의 이야기에 각종 논란이 따라오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TV 드라마가 갖고 있는 영향력을 봤을 때 이건 정상적인 반응이다. ‘나의 아저씨’가 영화였다면, 이런 말은 안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아저씨’는 TV 드라마이다.
   

TV 드라마는 영화보다 그 사회적 책임이 무겁다. 영화는 찾아서 봐야 하지만, TV 드라마는 틀면 나오고, 포털 사이트 등을 통해 쉽게 인터넷으로 그 영상들을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작가와 감독의 의도와 상관없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나비효과처럼 말이다.      


10년 전쯤 어느 초등학교 교사가 시험을 냈다.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 많은 초등학생들이 ‘침대’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 당시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다’라는 광고를 하는 업체 때문이었다. 짧은 15초 동안 하는 광고의 영향력이 이 정도다.     


그런데 주 2회, 8주간 하는 드라마의 영향력은 어떠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논란을 피해 갈 수는 없다. 당연히 감당해야 할 문제이다. 그럼에도 무언가 만들어 내는 유사 업계 관계자로서 안타까움은 어찌할 수가 없다. 작가가, 감독이 무엇을 의도했는지는 대강 감이 오기 때문이다.      


첫 번째, 로리타 콤플렉스. 이지안 (이지은)분은 세상의 보호를 받아본 적 없는 젊은 세대를 상징한다. 또한 박동훈 (이선균 분)은 기성세대 중, 그나마 기둥이 되어주는 존재를 상징한다. 박동훈은 이전에 이지안이 한 번 도 만나본적 없는 어른의 유형이다. 이지안은 박동훈을 만나 세상의 따듯함을 경험한다. 문제는 이지안의 박동훈의 관계에 묘하게 깔려있는 러브라인.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로 가져가기 위해서 이지안이 여자일 필요도 박동훈을 남자로 좋아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러브라인을 깔아주면, 이야기에 감정을 넣기가 더 쉬워지고, 주목을 끌 수 있다. 콤플렉스는 괜히 콤플렉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지안이 남자였고, 둘 사이의 러브라인이 없었으면 편성이 안될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폭력성. 보호받지 못한 아이는 세상을 유순하게 살아가지 않는다. 아니 살아가지 못한다. 짓밟지 못하면, 짓밟히니까. 이지안은 이광일 (장기용 분)에게 짓밟히고, 살아남기 위해서 박동훈을 짓밟으려고 한다. 어쩌면, 지안의 모습은 너무나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은 폭력적임에도 툭툭 감정을 건드린다.
    

하지만 안타까움에도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너무 쉽게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작가와 감독 모두, TV 드라마의 무게감에 대해서 몰랐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극에서 드러냈다. 극에 필요했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수위를 조절하든가 아니면 자극을 줄이는 방법을 고민했어야 한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그런 고민의 흔적들이 크게 보이지 않는다. 특히 폭력성 부분은 더 그러하다. 드라마 초반에 지안이 광일한테 맞는 장면이 꼭 그대로 나올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기자간담회에서 감독은 자극적인 장치는 수정, 편집하더라도 전체적은 흐름은 끌고 가겠다고 했다. 드라마 기획 단계에서 진작에 이루어졌다면, 논란보다는 드라마 자체에 대한 관심이 더 컸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감독의 말대로 앞으로의 드라마가 만들어 질 수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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