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스케치 #1

또 시작해버렸다

by BzyJun

화려한 내 일정 목록.


피아노, 일본어, 영어, 독서, 러닝, 헬스.

보기엔 참 그럴싸하다.


뭔가 열심히 사는 사람 같다.

그런데 실상은?


어떤 날은 피곤해서 쉬고,

어떤 날은 바빠서 못하고,

어떤 날은 그냥 안 하게 된다.


그래놓고 또,

어반스케치 강의를 신청했다.

기존 것들만 해도 벅찬데 말이다.


처음 수강신청할 땐 별 생각 없었다.

'재밌겠는데?'


그런데 개강 날이 다가올수록,

점점 후회가 밀려왔다.


'왜 신청했지?'




첫 수업 날.


별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어쨌든 문을 나섰다.


일단 가보고,

안 맞으면 그만두면 되지, 뭐.


강의실에 들어서니 대부분 기존 회원들이었다.

익숙한 분위기, 능숙한 손놀림.


다행히 나 같은 초보자들도 있었다.

처음엔 2명인 줄 알았는데,

한 분이 늦게 오시면서 총 3명이 되었다.


한 분은 평범해 보이는 아줌마였지만,

말투와 행동이 뭔가 테토녀스러웠다.

다른 한 분은 할머니였는데,

소녀같이 수줍은 분이었다.


수업이 시작됐다.

초보자들은 오른쪽으로 이동해 앉았다.


강사님이 유인물 8장을 나눠줬다.

앞의 2장은 어반스케치의 의미와 배경이고,

나머지 6장은 따라 그릴 샘플들이었다.


오늘의 목표는 3페이지.

기초적인 선 연습이었다.


"어반스케치는 긴 선이 필요 없어요.

작은 칸들로 충분해요."


A4 스케치북을 16등분으로 나누고,

그렇게 작은 칸들을 채워나갔다.


직선, 사선, 동그라미.

패턴을 반복해서 그렸다.


KakaoTalk_20251016_195435211.jpg


한참 그리던 중,

앞자리 할머니가 돌아보셨다.

"저기, 한 거 좀 보여주실래요?"


본인이 느리다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내 종이를 보여드렸다.


"전 여기밖에 못했는데.."

할머니가 소녀처럼 수줍게 웃으셨다.


나보다 조금 느리셨다.

그런데 그게 위안이 됐다.

혼자 헤매는 게 아니구나.


문득 옆자리가 궁금해졌다.


슬쩍 보니,

테토녀 아줌마는 시원시원하게

막힘 없이 그리고 계셨다.


'오. 빠르시다.'


역시.

내가 본 느낌이 맞았다.


벌써 3장을 다 채우고 계셨다.

나랑 할머니는 2장도 못 채웠는데 말이다.




수업이 끝났다.


시간은 빨리 갔고,

2페이지를 채 못채웠다.


'내가 느린가?'

뭐, 그렇게 중요하진 않지.

처음 하는 건데.


강사님께서

다음 수업까지 오늘 못한 부분 채워오라고 하셨다.


이런, 숙제라니.


그래도,

나오면서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가기 싫어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할 만했다.


잘하지 못해도,

천천히 해도,

괜찮았다.


결국은 걱정했지만 할 만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슬로러닝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