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향하는 쪽으로
석사 생활 2년 동안,
나는 365일 중 360일을 일했다.
그것도 하루 17시간씩.
매일같이 ‘그만둘까’라는 생각을 품고 살았다.
정말 하기 싫었고, 너무 지쳤었다.
대학원에서 하던 일은 건설현장 막일보다 더 힘들었다.
실제로 인부들을 채용해 함께 일했지만,
야간작업이 필요하다고 하면 대부분 도망치듯 떠났다.
결국 남는 건 우리 대학원생이었고,
나는 그냥 해야 했다.
힘들었지만, 대학원 생활을 그만두지 않았다.
자존심 문제도 있었고, 주변의 시선도 의식됐다.
그게 맞는 선택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매일 그렇게 스스로를 밀어붙이며 버텼다.
혼란스럽고 괴로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졸업 후 취업한 회사도 비슷했다.
업계 특성상 야근과 특근은 기본이었지만,
나는 대학원에서 이미 단련되었었기 때문에 그냥 또 버텼다.
취업 후 몇 년간은,
일이 정말 많긴 했지만 나름 행복하기도 했다.
그래도 대학원보다는
몸은 덜 힘들었고, 돈도 나오고,
잘한다고 인정도 받았다.
그래서 나는 꽤 오랫동안,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나의 개인시간은 없었고,
그런 삶이 어느새 익숙해져 있었다.
힘들다고 느끼는 감각조차 무뎌졌고,
내가 뭘 잃고 있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넘겼다.
문제는, 그게 수년 동안 계속됐다는 것이다.
그 사이 나는 취미도, 내가 좋아하는 것도,
쉬는 날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게 됐다.
쉬는 날이면 하고 싶은 게 없어서 그냥 출근해 일했다.
할 줄 아는 게 일이었고, 머릿속도 늘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나라는 사람은 점점 희미해졌다.
어느 날, 회사 선배가 소개팅을 권했다.
마음의 여유도 없었고,
연애를 오래 쉬다 보니 혼자 있는 게 더 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반년 넘게 미뤘다.
하지만 그냥 한 번쯤 나가보자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지금의 와이프를 만났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만남이 내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와는 전혀 다른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
유튜브나 책, 커뮤니티에서 얻은 정보들을 자연스럽게 내게 소개해줬고,
나는 조금씩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그녀는 전혀 다른 가능성의 풍경들을 내게 보여줬다.
그녀를 만나면서부터 점점,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졌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내가 잊고 살았던 것들을 떠올렸다.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고,
글도 쓰고 싶었고,
내 삶을 내 손으로 설계하고 싶었다.
하지만,
회사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다 보니
‘하고 싶은 것’은 점점 많아지는데,
‘할 수 있는 시간’은 항상 부족했다.
그 불균형이 커질수록
마음속에는 묵직한 무언가가 쌓여갔다.
7년 차가 되던 해,
나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내가 하던 일은 석사 이상이 주로 맡는 전문적인 일이었고,
나는 잘하고 있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내 능력이 100이라면
회사의 기대치를 맞추기 위해
나는 항상 120, 150까지 끌어올려야 했다.
계속 그렇게 살다 보니 점점 내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회사에서 기대하는 역할과 책임이
내 마음을 짓눌렀고,
그 무게가 어느 순간부터는 감당되지 않았다.
"내가 대체 뭘 위해 이렇게 살고 있지?"
꽤 긴 기간 동안 생각했다.
많은 돈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대단한 성공을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내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두려웠다.
주변의 시선,
세상의 기준,
“지금 회사를 그만둔다고?”라는 반응들.
나 역시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었다.
그만두는 게 맞는 걸까?
이건 도망이 아닐까?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던 어느 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정신과를 방문했다.
진료 전, 심전도 검사를 받게 되었다.
그때, 외주사에서 전화가 울렸다.
검사 중이라 받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 심박수가 올라가는 걸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
그저 전화 한 통 왔을 뿐인데,
몸이 얼마나 예민해져 있었는지를 확인한 순간이었다.
검사 후,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면서
점차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무엇이 힘든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은
그 선택이 감정적인 충동은 아닐까 싶어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차분해진 이후에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퇴사”
조급함이 아닌,
정리된 판단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삶을
조금씩 시작해보려 한다.
더는 억지로 버티지 않고,
내 마음이 향하는 방향으로
살아가고 싶다.
이 글을 기점으로,
그 여정을 천천히 기록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