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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양 Nov 06. 2023

백화점 C 양 체험판_19

19화_고객이 내게 6시간 동안 욕을 했다.

-본문은 이해를 돕기 위한 약간의, 아-주 약간의 픽션이 들어간 faction이며 구독자 분들의 흥미를 얻기 위해 없었던 일을 꾸며내지 않습니다.  


안녕하세요. 지금은 마지막 원고 수정을 하는 일요일 밤, 비가 내리는 어두운 밤입니다.

길가에 바로 위치한 저희 집은 자동차 소리 때문에 안방 창을 잘 열지 않지만 오늘은 빗소리가 그리워 창을 활짝 열어두고 좋아하는 노래를 작게 틀어놓고 있습니다. 상처에 절여진 애처로운 어깨를 비가 다독여줍니다.


여러분들은 그간 안녕하셨나요?

저는 하루하루를 매우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백화점은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느라 온통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꾸미기 바쁘고, 저는 연말 선물을 준비하는 고객님들을 위한 행사를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고,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인생에 적응 중입니다.

또 며칠간 날씨가 좋아서 유니폼 동복을 입었다 다시 하복을 입었다 왔다 갔다 했어요. 목이 칼칼해 약을 챙겨 먹었고, 허리 디스크는 다시 도졌습니다. 그래도 웃으며 백화점으로 가볼까요?


19화_고객이 내게 6시간 동안 욕을 했다.


어느 날 할머니 한분께서 다수에게 선물하실 거기에 가장 호불호 없는 향수를 원하셨어요. 그래서 오랜 시간 고민을 하시다 많은 수량을 주문하셨습니다.


그런데 첫 구매부터 조금 삐걱거리기 시작합니다.


금액대별 기프트를 증정하는 과정에서, 고객님께서 구매 금액에 맞지 않는 무리한 요구를 하셨고, 저희는 이 요구를 들어드리지 않으면 큰손 고객을 놓칠 것 같아 감사한 마음으로 해드릴 수 있는 최대의 혜택을 모두 드렸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매장이 아닌 개인 휴대폰으로 연락이 오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직원들이 점점 지쳐갔습니다.


개인 휴대폰으로 연락을 주셨을 때에 그 직원이 휴무일 수도 있고, 매장 재고를 밖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없기에, 고객님께서 궁금하신 사항이 생기시면 언제든 편히 전화주시라 안내를 했었고, 메시지로 문의하셨을 때에 답변 뒤에 꼭 매장 번호를 캡션으로 메시지에 덧붙입니다.

그런데 아뿔싸. 짧은 몇 마디의 반말이 적힌 텍스트가 보이네요.


"너는 왜 나랑 문자를 하고 있는데 자꾸 매장으로 전화하라고 하니?"


불쾌하셨나 봅니다.


그러고 며칠을 걸쳐 고객님의 계속된 무리한 요구에 매장 직원들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거의 본품을 뛰어넘는 가격의 사은품을 요구하셨기에 너무나 오래 시달린 매니저님은 더 이상 이 고객님과 거래하지 말자 하셨고, 제 생각에도 더 이상 고객님의 조건에 맞춰 드리기 어려운 상황인지라 이번 거래를 마지막으로 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


며칠 후 그 고객님은 화난 얼굴로 매장으로 방문하셨습니다. 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점심시간 즈음이었는데 저는 직원과 식사 교대를 하려고 하던 참이었습니다.

이미 vip 라운지에서 직원들에게 저희 매장 욕을 시원하게 하시고 내려오신 뒤라 백화점 직원들을 등뒤로 거느리고 등장하셨습니다. 응대 테이블에 앉으셔서 본인이 불쾌했던 점을 얘기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밥대신 욕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고객들은 매장으로 오시다가도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밥도 못 먹고, 고객도 받지 못했습니다.


"상품권 더 달랬더니 왜 더 안 주냐, 자꾸 이러면 다른 지점으로 간다, 내가 다른 지점에서 몇 백씩 사는데 여기까지 일부러 오는 건데 왜 안 해주냐, 샘플이 모자라면 너희가 쓰는 테스터라도 줘야 되는 거 아니냐, 무게를 재 달랬더니 저울이 없단 소리를 하냐, 왜 문자하고 있는데 매장으로 전화하라고 하냐, 매니저님도 나한테 그렇게 대하는 거 아니다. 은근히 기분 나쁘게 하더니 그게 능력이냐"


어떤 점이 은근히 기분이 나빴던 건지에 대한 말은 없으셨습니다.


그리고 여기가 무슨 노량진 수산 시장인가요? 전화로 쇼핑백 무게를 정확히 재 달라고 하셨거든요. 백화점 향수 매장에 저울이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저울이 없어서 정확한 키로수는 모르겠으나 혼자 들고 가시기에는 무거워 힘드실 테니 저번처럼 아드님과 함께 오세요~"라고 안내해 드렸는데 왜 키로수를 재주지 않냐며 화를 내셨죠.


저에게 기분 나쁘다며 휴무인 매니저님 휴대폰으로 전화해 고자질 아닌 고자질을 하셨는데,  결국 폭발해 버린 매니저님께서 "너무 감사하지만 저희 매출 신경 써주시지 않으셔도 되니 기존에 다니시던 매장에서 구매하시라"라고 좋게 구슬린 말을 또다시 불쾌해하시며 매니저님에게도 불똥이 튀었습니다.


담당자 내려오라고 소리치셔서 내려온 백화점 담당자에게 저와의 문자 내역을 보여주며 “이 직원에 나에게 이렇게 대한다.” 라며 얘기하시는데 타인이 보아도 문제없는 문자 내용이기에 백화점 담당자는 저에게 귓속말로 "저 올라가도 되겠지요?"라고 하시며 대충 마무리하라는 눈인사를 던지고 올라가 버렸습니다.


이젠 저에게 휴대폰 메시지를 보여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다른 매장 매니저들은 나한테 어떻게 하는지 알아?"


보여주신 메시지에는 온갖 하트 이모티콘이 가득했습니다.

고객님이 말씀하신 그 문자의 '다른 매장 매니저'는 저와 다르게 살가우신 분이셨습니다.


머리가 띵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거구나. 이 고객은 정확한 정보 전달보다, 자신에게 살갑게 대해주는 직원이 필요하셨던 겁니다.


저는 그렇게 응대 테이블에서 꽤나 긴 시간을 욕먹었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선 한마디 받아치고 때려치울까 싶기도 했고, 눈치를 살피는 보안팀들에게 간간이 괜찮다고 눈빛을 보내며 혼나고 있다 보니 밖이 어두워졌습니다.


네. 장장 6시간이 흘렀습니다. 같은 내용을 계속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도대체 뭘 원하시는 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저는 잘못한 게 없기에 죄송하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몇 달 동안 지속된 고객님의 턱도 없는 요구를 맞추느라 진땀 뺐던 시간들이 떠오르며 더더욱 빈말로라도 죄송하다 할 수 없었습니다.

감정을 억누르고 명확히 다시 한번 물었습니다.

“어떤 부분이 불쾌하셨는지 정확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별 말을 하지 못하셨습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날이에요. 매장을 벗어나시며

"나도 너 같은 딸이 있어서 아는데 죄송하다는 말이 그렇게 하기 어려운 말이냐. 내가 여기서 다신 거래 안 할 거고 내가 너 본사에 얘기해서 여기서 일 못하게 할 거야."라고 하시며 매장을 떠나셨습니다.


저 같은 딸이 있으시다면 이렇게 행동하시는 게 맞는 건지 의아했습니다. 그리고 전 고객님 딸이 아닌데요.

그 6시간 동안 자꾸 눈물이 날 것 같았고, 그냥 들이받고 싶었고, 6시간 동안 별에 별 생각을 다 했던 것 같아요.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매니저님께 매장 보고를 하며 눈물을 계속 쏟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거래를 오래 한 고객이라도 찰나의 순간으로 직원들을 평가해 버립니다.

출처 픽사베이


그런데 그 고객님께서 가시고 전 제 자신에게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왜냐고요?

건너편 매장 매니저님이 슬쩍 오셔서 하신 말씀 때문인데요.

"VIP고객이신가 봐요~? 사무실 직원들도 거느리고 내려오시고...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많이 구매하셨어요?"

왜 상황도 몰라주는 이런 말에 기분이 좋았냐고요?


6시간 동안 혼나면서도 저는 얼굴 찌푸리지 않고, 울고 싶지만 울지 않았고, 높아지는 언성과 굴욕적인 협박에도 저는 그저 <고객은 고객으로> 잘 대처한 것 같아서요. 그걸 다른 사람들이 알아봐 준 것 같아서요.

누군가 이 글을 보면 바보 같다며, 다음엔 그러지 말라며 저를 혼낼 몇몇 얼굴들이 떠오르지만, 제가 그 자리에서 제 성격대로 행동했다면, 매장에도 백화점에도 피해를 주는 일뿐이었을 겁니다.


<오늘의 퇴근길>

.

.

.

누군가에게 말로 상처를 준 적이 있으신가요?

우리는 가끔 사랑하는 사람에게 일부러 더 큰 상처를 주곤 합니다. 상처 주지 않으려, 상처받지 않으려 노력하고 재지만 결국엔 더 큰 상처를 주고 후회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요? 왜 사람들은 그걸 참지 못하고 후회할걸 알면서 그러는 걸까요?

어쩌면 믿었고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기에 더 큰 배신감에 진심이 아닌 말들로 더 큰 상처를 돌려주고 싶은 악착같은 마음이 투영된 행동임을 우리는 알고 있잖아요.

말이란 것은 칼보다 날카로워서 혀로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합니다.

조금 더 말의 중요성을 깨닫고 참았어야 하는데, 지난날들의 말들이 후회로 다가오는 밤입니다.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다면, 그 사람도 진심은 아니었을 겁니다. 당신을 사랑한 마음이 그릇된 방식으로 변해버린 것일 겁니다. 사랑해서 상처 준단 말이 아니에요. 성숙하지 못한 방법이었고 그 사람의 잘못임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성숙한 당신은 그걸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당신이 그 사람에게 홧김에 뱉어낸 모진 그 말처럼, 그 사람도 진심이 아니었으니 너무 아파하지 말고 이미 난 상처를 잘 돌보아 흉 지지 않게 약을 잘 발라줍시다.


마음의 상처는 괜찮은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급작스러운 뜨거운 염증으로 날 괴롭히고, 진물이 맺혀있다가도 한순간에 괜찮아지는 알 수 없는 치유의 반복이니 조금 더 신경 써서 자주자주 들여다봅시다.


첫인상이 결정되는 순간은 3초라고 합니다. 글자로 보는 3초는 짧은 시간 같지만 서로 눈을 맞추고 있는 3초는 얼마나 긴지 아시나요?

그 3초 동안 사랑에 빠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지만, 다신 보지 말아야지 하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매장에서 고객과 마주하는 시간은 3분이 되기도, 30분이 되기도 합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이 고객에게 최대한의 구매욕구를 들게 만들려 노력합니다. 그저 쇼핑을 나왔을 뿐인 고객님들에게 저희는 그 3분이 고객님들의 마음속에 스치는 따뜻함이 되길 바라며 늘 연구합니다.

“딸 같아서”라는 텍스트는 얼핏 다정해 보이지만 양날의 검이 됩니다. 고객님을 응대하고 있는 그 직원도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 딸입니다.

저희도 고객님께 최선을 다하여 최상의 만족도를 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카운슬러가 되겠습니다.


오늘도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


이 밤이 지나면 매서운 추위가 온다고 해요. 마음도 쉽게 추워질 수 있는 날입니다. 마음 챙기기에 마음 써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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