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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양 Nov 13. 2023

백화점 C 양 체험판_20

20화_ 나는 향수 시중드는 집사

-본문은 이해를 돕기 위한 약간의, 아-주 약간의 픽션이 들어간 faction이며 구독자 분들의 흥미를 얻기 위해 없었던 일을 꾸며내지 않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어제까지만 해도 울카디건을 입었는데, 오늘은 코트를 꺼내어 입고, 목도리를 둘렀습니다.

횡단보도에 보이는 학생들은 짧은 교복에 짧은 패딩점퍼를 걸치고 있는데, 춥지도 않나 싶다가도 저도 저 나이 때에는 저랬던 것 같아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지하철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제게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라고 해주셨고 순간 세상이 밝아짐을 느꼈습니다. 출근길에 한껏 찌푸리고 있던 제 미간이 부끄러워지더라고요.

저도 “행복하세요.”하고 대답하였지만, 이 정도 어휘력뿐인 어리숙한 제가 조금 머쓱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오늘은 유난히 회사 가기 싫은 날이어서 신발장에서 한참을 서있었어요.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는데 말이죠?

그렇게 무거운 발로 현관을 나섰는데, 처음 보는 할아버지에게 큰 힘을 받았네요.

오늘 이름 모를 할아버지가 건네주신 온기를 고객님께 나눠주러 오늘도 출근입니다!



향수는 여러모로 예민합니다.

일단, 알콜성 성분이기 때문에 화제에도 민감하고, 빛과 열기에도 민감한 품목이기에 매장에서 특별 관리를 합니다.


백화점 특성상 빛이 세고, 히터와 에어컨 바람 때문에 온도 관리에도 신경 써야 합니다.

향수 변향이 되는 가장 큰 요인이기 때문인데요, 늘 향수 주스의 색상을 살피고, 변향된 테스터들은 당연히 새로운 향수로 교체합니다.

(그러니까 향수는 욕실에 두지 마시고 빛이 들어오지 않는 서늘한 곳에 보관하시고 뿌리세요.)


바틀이 대부분 유리여서 고객들의 손자국이 많이 남아 수시로 닦고,

고객들이 시향 중에 실수로 떨어뜨리거나 세게 내려놓아 모서리에 미세한 파편이 생기기도 해서 고객이 다치지 않게 관리합니다.


향수 노즐 부분은 손이 많이 닿기 때문에 고객이 매장을 벗어나실 때마다 알코올솜으로 닦아냅니다.


향수의 반짝거리던 은색 뚜껑이 변색되어 속상하신 분들 많으시죠? 은세척제나, 립스틱, 치약등으로 닦아보세요. 다시 빛나는 은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수시로 안경클리너로 닦아 관리해 줍니다.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매대나 집기, 바닥재 대부분을 대리석을 사용하는데, 향수의 알코올성분이 대리석에 닿으면 뿌옇게 흐려지는 경우가 있어 물에 적신 걸레로 닦아냅니다.

매대의 유리 부분은 유리 세정제로 부분적으로 닦아내지만, 대리석 마감에 유리 세정제가 닿으면 탁하게 변하기 때문에 유의합니다.


제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조명을 사용하지만, 먼지들이 잘 달라붙기에 수시로 닦습니다.


벽장에 진열해 놓은 향수를 훔쳐가는 경우가 너무 많아 제품 밑에 접착제를 보이지 않게 붙여둡니다.

대부분 그런 벽장 진열용은 그냥 물이 들어있는 향수 모형일 경우가 많은데 그걸 모르시는 도둑분들이(?)  많이 훔쳐가십니다.


유통기한으로 표기되던 제품들이 제조일자로 표기해야 하는 법이 제정되면서, 판매 기한이 모호해지게 되었기에, (멀쩡한 제품이라 한들 고객 입장에선 당연히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제품을 구매하시길 원하기 때문이다.) 수시로 재고를 확인하며 본사와 반품을 진행시킵니다. 재고는 당연히 선입선출로 민감하게 관리합니다.


백화점 폐점 시 보안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지만, 매장에서 서랍장 키와 창고키를 사용해 늘 재고 관리에 신경 씁니다.


물류에서 갓 받은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향수가 깨져서 온다거나, 은 부분이 변색되어 오는 경우가 있어 고객 앞에서 제품 확인을 필수로 해드렸으나, 요즘은 모든 제품이 한번 더 랩핑 되어 매장으로 입고되므로, 고객 앞에서 직접 개봉하여 보여드릴 수 없어 교환 환불에 대한 조건이 개정되었습니다.


택배 서비스를 받으실 때 이중 에어캡 포장으로 힘씁니다.

제품 케이스 안에도 제품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장치가 되어있지만, 케이스 상자의 모난 부분들이 찌그러지진 않을까 에어캡을 많이 사용합니다.


선물 구매 시, 쇼핑백에 습지를 넣어 쿠션감을 주어 제품을 보호하고,  예쁜 시각적 효과와, 습지에 향수를 뿌려 쇼핑백에 넣음으로써 후각적 효과가 있습니다.


제조사나 제조국이 바뀌면서 제품의 향이 조금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민하신 고객들인 단번에 알아채시는데, 클레임을 막기 위해 늘 제조국과 제조사를 확인하고   글로벌 디자이너와 담당 조향사가 바뀌는 현황을 항상 공유합니다.

이러한 현상으로 충성 고객이 이탈하시는 경우가 꽤나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퇴근길>


회의를 마치고 나온 어두운 기운을 잔뜩 내뿜는 직장 상사, 어떤 말을 할 때 눈치를 보게 되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친구, 먹다 남긴 사과, 얼마간 손을 타지 않은 악기, 스트레스에 취약한 개복치, 장마철 돌린 빨래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예민하다는 것입니다.


남들은 아무렇지 않은 것 같은데, 같은 상황에 놓였지만 유독 힘이 드는 이런 내가 이상한 걸까라고 자책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건 안 좋은 게 아니래요. 예민해서 좋은 점은 너무나 많거든요.

어떤 장소의 빛이나 기운으로 그 장소를 기억하고, 노래를 들으면 그때가 생생해지고, 타지에서 우연히 먹은 음식으로 엄마의 손맛을 느끼고, 우연히 햇살 좋은 날 산책을 하다가 여행 간 나라에서의 따뜻하던 그 나라를 기억하고, 내 앞의 앉은 상대가 말하지 않고도 보여주는 사랑을 오롯이 느낄 수 있고, 어느 슬픈 날 옛날 사진들을 보며 행복했던 때로 금세 돌아갈 수 있어요.

가끔 이런 내가 밉고 힘들더라도, “난 왜 이렇지? “  하고 다그치기보다 ”예민한 게 아니라, 남들이 그냥 지나치는 행복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는 거야! “ 란 뜻이니 스스로 다독이고 뿌듯해하는 건 어때요?

남들보다 사소한 것에도 더 큰 감사를 느끼고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복 받은 일인가요? 저는 그 감사를, 그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 편안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 중입니다.



행복과 사랑을 정의할 수 없는 이유는 그만큼 너무 어렵지만 너무 도처에 깔려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도처에 깔린 행복과 사랑을 자신에게로 끌어오는 그런 날들이 되기를.
모든 것들이 생각보다 당신을 많이 사랑해.






이 포스팅을 쓸 때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쓰는데, 도움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인사이트를 보면 검색하다 들어오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누군가 어떤 필요에 의해 검색하다 들어오셨다면 반가워요. 오신 김에 백화점 일상 구경하고 가세요.

그리고 자주자주 봬요. 전 항상 여기에서 기다릴게요.


오늘도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


오늘의 추신.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캐럴을 들으며 야경을 보고 있자니 몇 년 전 크리스마스 공연을 하던 날이 생각나네요.  오랜만에 마음이 여유로워집니다. 이것 또한 감사할 일.
행복과 사랑이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까이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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