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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양 Jul 10. 2023

백화점 C 양 체험판_3

3화 서로가 서로에게 한 거짓말

-본문은 이해를 돕기 위한 약간의, 아-주 약간의 픽션이 들어간 faction이며 구독자 분들의 흥미를 얻기 위해 없었던 일을 꾸며내지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한 거짓말>

아침에 울리는 이 웅장한 클래식. 오전 10:30 백화점 오픈 전부터 바깥에서 고개를 기웃거리는 엄마들과 이 상황이 매우 피곤하실 법도 한 유모차에 누워있는 아가들, 얼른 매끈한 대리석 바닥으로 미끄러지고 싶은 꾸러기 아들들, 두 눈에 피곤을 가득 담고 담배 한 개비와 커피 한 잔이 간절해 보이는 아빠들 까지. 완벽한 아침입니다. 그리고 제 눈도 반쯤 감겨있는 건 사실이지요.

한 차례 고객 환영인사가 끝나고 팀장님과 아침 인사를 나누고 나면  조용한 연주곡이 흐르는 하얀 공간 사이로 사람들의 말소리가 섞여 들어옵니다.


즐거운 소리도, 신나는 소리도, 고민의 소리도 한데 섞여  웅웅 거립니다.

"밥 먹으러 간 직원이 몇 시에 갔더라... 나는 몇 시에 밥을 먹을 수 있지..."라고 생각하며 손목시계를 빤히 봅니다. 오늘은 유달리 배가 고프네요.


저 멀리서 누가 봐도 이 매장에 용건이 있으신듯한 얼굴로 눈을 맞추며 다가오는 한 할머니.

'저분은 어떤 향을 좋아하실까? 요즘 경로당에서 시선 좀 끌만한 향기는 뭐가 있을까?

저 할머니를 내가 대왕 인싸 할머니로 만들어주겠다!'등 조금은 어이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전의를 활활 불태워 두 눈동자를 반짝였습니다.

환영 인사가 입술에서 마중 나가기도 전에,


“오늘은 그 언니 없네?”

“환영합니다~”

누가 보아도 '저 웃습니다.'라고 보이게끔 눈웃음을 오버해서 만들어 보입니다.

“여기 샘플을 내가 그때 받아갔는데 너무 좋더라고”

“네 고객님, 어떤 제품인지 기억하실까요?”

“응, 아직 내가 쓰고 있는 게 많아서 샘플만 좀 받아가려고”


매장에서는 샘플만 증정되는 경우는, 무료 샘플링 행사가 있을 경우, 샘플 쿠폰을 지참하신 경우, 생일이나 각종 행사로 인해 선택적으로 쿠폰이 발송된 경우입니다.

“고객님 죄송합니다만 제품 구매 시에만 샘플이 증정되고 있습니다. 저번에 아마 행사로 인해 증정받으신 것 같습니다. 궁금하시다면 회원 정보 조회 후 어떤 제품 증정받으셨는지 알아봐 드릴까요?”


“무슨 소리야 여기 매니저가 직원들한테 말해 놨다고 매장에서 받아가랬어, 해준댔어”


매장에서 구매 이력이 없는 고객에게 샘플이 증정됐을 리 없고, 클레임 방지를 위하여 직원들 간에 전달을 꼭 하기 때문에 아침 회의시간에 전달이 되던, 메모장에 명시가 되던, 필히 숙지를 하거든요.

그래도 혹여나, 내가 모르는, 혹은 매니저님이 전달하지 않으신 사항이 있으실까 하여 전화를 걸어봅니다.


“매니저님 휴식시간에 죄송해요. 고객님께서 매니저님과 얘기가 되었다고 샘플과 미니어처를 말씀하시는데 기억하실까요?”

“할머니이시지? 하얀 백팩 메고 계시고?”

“네! 아시는 분이신가 봐요? ”

“아 그 할머니 유명해. 다른 점도 싹 돌면서 자기가 매니저하고 얘기했다고 하면서 막내들한테 가서 샘플 뺏어 가는 걸로 유명하셔. 잘 처리해 줘요.”

“네 알겠습니다. “


알고 보니 그 고객님께서는 신입 직원들의 어리숙한 '컴플레인은 절대 안 돼!‘ 마인드를 이용해  샘플과 사은품 등을 그냥 받아가시는 분이셨던 겁니다.


“고객님 죄송합니다만 제가 전달받은 내용이 없어서요. 아마 중간에서 전달이 안 됐나 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다음번에 매니저님 계실 때 한번 더 방문해 주시겠습니까?”

“아니, 매니저랑 얘기가 됐다니까??”

대뜸 소리를 치십니다. 매장에 어수선하던 시선이 일제히 꽂힙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아침에 공들여 바른 파운데이션을 뚫고 나오고 있었어요.

“네 고객님. 저희의 불찰일 수 있습니다. 사과드리며 다음번에 더 좋은 서비스로 준비하겠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거짓말을 한 순간이었습니다.

.

.

어린 날.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은데 용돈이 모자랐던 초등생 C양은 아빠가 아끼시는 찬장 위에 숨겨진 깊고 오목한 와인잔에 모아두신 동전을 조금 꺼내어 슈퍼에 갔었더랬죠.


그 높은 찬장을 작은 발과 손으로 가전들을 밟고 기어 올라가서 동전을 빼낼 때에도 무서웠지만, 떳떳하지 않은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나서도 간이 조막만 한 아이는 아빠한테 혼날까 두려워 집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에 아이스크림이 묻었을까, 옷에 아이스크림 자국이 남았을까' 거울을 보려고 화장실만 들락거렸습니다.


다 알고 계셨던 아빠는 제게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거짓말을 했어요. 그 동전들을 다 셌을 리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가장 무서운 아빠의 얼굴을 보았고 세상에서 거짓말이 가장 나쁜 거라는 가르침을 오래오래 받았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실한 것은 어디까지가 진실한 것인가.

누가 보아도 '안된다.'라는 말을 '너무 죄송하지만 어렵습니다.' 혹은 '노력하겠습니다.'등 쿠션어를 사용하는가 하면,

고객 앞에서 엉엉 울어버리고 싶을 때도 눈물을 꾹 참으면서 '죄송합니다.' 하게 되는 것.

다 큰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저는 고객들 앞에서 가장 많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저의 거짓말은 달갑지 않은 이슈에 그저 호응하고 있었던 것.  사실은 그의 말은 너무나 틀린 이야기였고, 좋은 얘기도 아니었고, 그렇기에 듣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였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거짓말은 모호해지고,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은 더 잦아지는 것 같습니다. 나쁜 거짓말이던, 하얀 거짓말이던 말이에요.

.

저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자주 많이 하는 편인데, 어느샌가 속으로 삼키며 말을 삼킬 때가 종종 생겼습니다.

이 또한 거짓말이라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런데 그러고 나면 꼭 나중에 후회가 됐어요. 그냥 그때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할걸. 혹은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때 주저하지 말고 미안하다고 말할걸. 하고요. 그런 것들이 지나고 나면 마음속에 그렇게 오래 남아 저를 자잘하게 괴롭혔습니다.


“입은 밥 먹을 때만 쓰는 게 아니란다. 감사하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표현을 해야 아는 거야. 늘 과감하게 표현하렴.”이라고 하시던 아빠의 가르침이 자꾸 떠올랐거든요.

그걸 몸소 알게 된 지금은 상대가 듣건 말건 내 마음대로 사랑을 뿌리고 다니지만, 주위 사람들이 낯부끄러워한다 해도 사랑한다고 더 더 많이 말하는 제가 될 겁니다. 사랑한다고 말할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오늘의 퇴근길>

.

.

.

이제는 고객님께 독심술을 쓴 다음에 심리 게임까지 해야 하는 그런 직업인 것이다......


-오늘도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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