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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양 Jul 17. 2023

백화점 C 양 체험판_4

4화 저는 키오스크입니다.

-본문은 이해를 돕기 위한 약간의, 아-주 약간의 픽션이 들어간 faction이며 구독자 분들의 흥미를 얻기 위해 없었던 일을 꾸며내지 않습니다.  


<저는 키오스크입니다.>

어젯밤 무슨 생각이 그리 많았는지 이런저런 생각에 침대보를 자꾸만 매트리스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발이 차가운 것 같기도 하고, 목이 마른 것 같기도 하고, 야식이 먹고 싶은 것 같기도 한 긴 밤을 휴대폰만 껐다 켰다 하며 시간을 봤어요.

두 자리였던 숫자는 어느새 한자리가 되고 익숙한 새벽의 청소아저씨 소리가 들려오네요.

지금 잠들면 얼마나 잘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잠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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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다. 포근하다. 잠을 푹 잤다….. 유달리 햇살이 따뜻하고 새소리도 들리고 커튼이 반짝이며 흔들리고 있어요.

나가야 할 시간을 10분 남겨두고 눈을 떴습니다. 양치 세수를 하고 유니폼을 집어 들고 뛰쳐나왔어요.

매번 지나는 슈퍼에 오늘은 어떤 맛있는 과일이 들어왔나 구경할 여유도 없이, 산책하는 강아지에게 인사할 새도 없이 지하철 역으로 내달렸습니다.

분명 시계는 35분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잠깐 몇 발자국 걸은 사이에 5분이나 지나있어요. 제가 안보는 사이에 시곗바늘을 누가 빠르게 감은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요.

그래도 다행히 매일 타는 지하철을 용케도 놓치지 않고 탔어요. 오늘도 사람들이 북적이는 출근길이네요. 지하철 문에 꼭 끼어서 답답하지만 한 가지 좋은 점은 빠르게 지나가는 지하철 안에서 햇살이 가득 흩뿌려진 화려하게 잔잔한 한강도, 잘 다녀오라며 양손을 활짝 펴 인사하는 파란 나무들도 더 가까이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오늘도 저와 함께 고객 맞이할 준비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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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사이 앉은 먼지들을 닦아내며 우당탕탕 오픈 준비를 마치고 대기 자세를 하고 고객을 기다립니다.

지나가는 고객께도 놓치지 않고 시향을 권합니다.

오전의 매장에는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있어요.

한 가지 말해보자면,  첫 고객님 덕분에 기분 좋으면 그날은 온종일 기분이 좋달까요? 아침 첫 고객님이 오늘의 고객님들 성향이 정해지는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첫 고객님의 질문이 길을 묻는 질문이라면 온종일 길 묻는 고객들이 그날따라 유달리 많고, 오자마자 구매를 확정하시는 소위 “주세요”고객님일 경우 그날따라 판매가 수월합니다.


저기서 걸어오시는 저 고객님. 분명 저희 매장으로 오고 계세요. 오늘은 왠지 온종일 기분 좋은 날이 될 것 같아요.

"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시향 도와드리겠습니다. "

엄마가 들으셨다면 "엄마에게나 그렇게 예쁘게 말해!" 하셨을 거예요.

멘트가 끝나기도 전에 고객님은 블로터를 낚아챕니다.

"이 제품은 프랑스에서 재배한...."

휙 설명이 끝나기 전에 휙 다른 향수를 가리킵니다. 자랑하고 싶은 제품이 너무 많지만 고객님의 손짓에 따라 재빨리 블로터를 뽑아 가리키시는 향수를 블로터에 뿌립니다.

휙 다시 낚아채십니다.

몇 번의 무언의 응대를 주고받았더니 응대 테이블 위에는 향수의 얼룩이 흩날린 블로터들이 즐비하게 쌓였습니다. 채 1분이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의 이 첫 고객님은 말 한마디 없이 오직 손가락 몇 번의 터치로 키오스크 다루듯이 시향을 마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연하게 아무런 여지도 주지 않고 한마디의 추임새도 없이 빠르게 매장을 빠져나가셨습니다.


<오늘의 퇴근길>


오늘 아침의 침대에서 눈을 뜬 저도 참 바쁜 하루의 시작이었지만, 이 고객님께서는 참 바쁜 하루이신가 봐요.

사실 이럴 때는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서글픔이 밀려옵니다.

말을 잘 들어주신다거나, 의견을 잘 말해주시면 너무나 행복하고 더 빠르게 고객 니즈를 파악할 수 있기에 고객님께서도 만족스러우실 텐데, 그런 것이 잘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처럼 몇 번의 고갯짓과 손짓으로 모든 응대가 끝이 날 때예요. 이런 사례의 고객님은 듣지 않고, 말하지 않습니다. 웃지 않고, 눈 맞추지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에게 눈길 한 번이라도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마음 같달까요?

몇 년의 반복으로 마음이 단단해진 저야 이제는 "그런가 보다~"하고 넘겨버리지만 우리 직원들이 의기소침해져서 다른 고객님들 까지도 두렵다고 말할 땐 괜히 서글픔이 밀려옵니다.

막내 직원들은 곧 잘 입술을 삐죽거리곤 합니다. 하지만 이런 날에는 그 투정 어린 귀여운 삐죽거림이 곧 시무룩의 입술이 되는데 그걸 보는 게 더 마음이 안 좋습니다.  하얀 쇼케이스 같은 백화점 안에서 무표정이 웃는 표정이 아니라고 혼나던 어린 제가 겹쳐 보이거든요.

몇 번의 토닥거림과 달콤한 간식들로 마음을 풀어주려 노력하다 보면, "이제 괜찮아요!" 하며 금세 씩씩하게 웃지만, 그녀는 살면서 문득문득 오늘을 기억할 것이 자꾸 마음에 걸려 마음 한쪽이 뻐근해집니다. 작지만 나쁜 덩어리 하나를 그 친구의 마음에 하나 던져준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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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코트에서 음식을 고를 때에 점원을 부르지 않고도 몇 번의 터치로 주문이 되는 걸 보면 문득 두렵기도, 세상이 팍팍하구나 생각되어 갑갑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살면서 아무하고도 대화하지 않는 하루가 점점 더 늘어가는 이 시대가 두렵습니다. 빠르게 변화하고 성장해 가는 이 시점에서 어쩌면 당연하고 받아들여야 할 문제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인지 더 크게 다가오는 사람과 사람 간의 상처는 너무나 작은 균열에도 크게 번져버릴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상처 입고 아직 움츠러든 어깨이지만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며 7월의 햇살을 보고 따갑다고 조금 투덜거리고 비가 계속해서 내리면 지겹도록 눅눅하다고 조금 투덜거리며 이렇게라도 마음의 먼지를 툭툭 털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상처받아도 저희들은 휴게실에서 믹스커피 한 잔 마시고, 오래 서 있어서 퉁퉁 부은 다리를 툭툭 치며 다시 발 볼이 좁은 구두에 발을 밀어 넣곤 다시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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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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