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배우여서, 퇴사합니다. 240906
물론 아직도 과연 내가 매일 같이 하는 출근 루틴을 하지 않고 균형 있는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나처럼 생각 많고 걱정 많은 사람이 출근이 주는 단단한 쳇바퀴에 올라타지 않고도 달릴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크다.
온갖 걱정과 시름을, 꼭 해야만 하는 출근으로 이겨냈던 적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매일 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잠 못 들어도 그 생각 속에서 벗어나게 하는 건 아침이고 출근이었다.
아픈 머리를 쥐어 싸매고 ”일단 회사 가자 “라는 생각은 나를 일으켜주었다. 일단 회사 가서 바쁘게 일하다 보면 잊었으니까. 밤이 되면 곧 잘 반복됐지만, 그것은 강제성이 주는 안정감이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으쌰으쌰 하며 일어나서 세수하고 양치하고, 도시락을 싸고 커피를 마시며 버스에 몸을 싣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책을 읽거나, 눈여겨보는 배우의 작품들을 보며 여러 직장인들의 피곤한 얼굴들 사이에 묻혀 출근을 한다.
꿈속에 잠시 들어갔다 온 기분에서, 지하철 문이 열리면 백화점이다.
그렇게 출근 보고를 하고, 고객들을 맞이하며,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보고 별별 얘기를 다 듣고,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면 퇴근 시간이 오는데, 매일 같은 쳇바퀴가 날 끌어준다.
퇴사를 앞두고도 아직 며칠이 더 남았지만 뭐가 그리 두려운지 계획 짜기에 분주하다.
해야 할 일이 많고, 이제 완전한 프리랜서로써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과, 내게 허락된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 그 시간 동안 나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동안 회사를 핑계로 깊게 하지 못했던 배우로서의 역량 채우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멍청한 배우가 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무명 배우를 끝내기 위해 퇴사를 했다는 것.
소속사가 있지만 성공 여부는 오롯이 배우의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늘 혼자라고 생각했다.
혼자 가야 할 길이 참 거칠고 긴 것 같아 까마득하기도, 설레기도 하다.
몇 번이고 반복해 들리는 귀에 익은 백화점의 플레이리스트도 이제는 안녕.
더 새로운 것들을 보자. 익히자.
24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