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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양 Sep 29. 2024

백화점 개미의 서비스직 8년의 종지부.

무명배우여서, 퇴사합니다. 240929

일요일 마지막 출근길은

겨울냄새가 빼꼼했고, 하얀 뭉게구름이 많았고, 버스에 타서 내릴때까지 내내 버스에 사람이 없어 버스아저씨와 큰소리로 인사했고, 버스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병원에서 유제품 금지랬지만, 늘 마시던 라테를 포기할 수 없어 “마지막 날이니까!” 했고  ‘오늘은 아침 김밥도 먹으면서 카드 써야지.’ 하고 다짐했다. 마지막 날이니까 뭐든 다 해야지.


이어폰 속 피아노 선율은 아름다웠고 주말 지하철은 조용했다. 내가 월터 같았다.

나는 태연했고, 마지막 출근길은 생각보다 순탄하며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출근해서 간단한 메시지카드를 썼고 조금 실감되어 두근거렸다. 설렘이 아니라 걱정의 두려움이 더 적당한

말인 것 같다.


마음이 닿던 직원들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작은 선물을 좀 샀고 카드를 썼다.

몇 시간 뒤면 퇴사를 하니까.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응대하고, 회사에 모든 미련을 버리려는 듯 짐을 쓰레기통에 처박고 나머지 짐을 들쳐 매고 막내언니의 푸념을 들으며 정문밖으로 나왔다.

해는 지고 있었고, 아침과 같이 구름이 많았고, 하와이 같았다.


서울로 오자마자 온 이곳, 이 동네가 너무 좋아 일하고 살았던 정든 이 동네. 울고불고했던 이 동네.

숨을 크게 마셔 폐에 가득 담고 촌스럽게 사진도 몇 방 남긴다.

왜들 그렇게 퇴사할 때 오버하나 싶었는데, 남들 하는 건 하나도 빠지지 않고 해내는 멋진 나였다.


괜히 서글퍼질 수 있는 날이지만, 집 근처에 우연히 지인이 와있다! 어디든 있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다정한 위안이 된다.


메신저 최상단 핀고정이 된 몇 개의 단톡방이 없어지면 많이 허전하겠지?


정문을 나서는 때는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두렵고 설레는 걸음이었다. 괜히 비장하다.

무명배우여서, 퇴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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