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못한 장면, 잊지 못할 풍경
런던에 오면 꼭 봐야 한다고 했다.
빨간 제복과 검은 모자를 쓴 병사들이
정해진 박자에 맞춰 걷는 그 장면을.
그날 우리는
교대식을 보기 위해 30분 일찍 도착했다.
햇살은 조용히 살결에 내려앉았다가
이내 등을 타고 흐르듯 뜨거워졌다.
나는 엄마에게
가장 좋은 자리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 마음 하나로, 광장 한켠에 조용히 서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음악도, 구령도, 발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행사가 취소되었다는 말은 없었지만
비공개 국가 행사날로,
오늘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날이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흩어지고,
남은 건
햇살 사이를 걷는 먼지와
말이 닿지 않는 고요함이었다.
엄마의 얼굴을 보았다.
아주 잠깐, 아쉬움이 스쳐갔다.
그 눈빛 하나에
내 마음 어딘가가 조용히 주저앉는 것 같았다.
마치 열에 휘어진 플라스틱처럼,
말없이 안쪽이 찌그러지는 느낌이었다.
“괜찮아. 사진도 찍었잖아.
엄만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어.
유튜브로 보면 더 잘 보이더라.”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웃으며 맞장구쳤다.
“그치? 티비가 훨씬 생생해~”
그 말들은
서툴지만 정성스러운 포장지 같았다.
속마음은 담지 못했지만,
그저 서로에게 따뜻해지고 싶어서 꺼낸 문장들이었다.
그때,
눈앞에 초록이 피어 있었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
런던 한복판,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던 듯
담요를 펴고, 책을 읽고, 아이들은 웃으며 달리고 있었다.
햇살은 나무 위에 살며시 내려앉아 있었고,
바람은 조용히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다.
“엄마, 우리 여기서 피크닉할까?”
“그래, 이런 데서 앉아볼 일이 또 있겠니.”
우리는 마트에 들러
비스킷과 과일, 오렌지 주스를 샀다.
잔디 위에 조용히 앉았다.
바람은 가볍게 옷자락을 스치고,
과일의 단내가 공기 속으로 번졌다.
햇살 아래에서 웃는 엄마의 얼굴을 보며
나는 아주 오래된 기분처럼,
잔잔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날,
놓친 장면보다 얻은 풍경이 더 빛났다.
우리가 바라던 시간은
다른 모양으로 우리 앞에 있었다.
꼭 어딘가를 보는 것만이
여행의 전부는 아니었다.
가장 반짝이는 순간은,
종종 아무 일도 없는 날에 조용히 피어나기도 했다.
엄마가 내 옆에 있었고,
나는 엄마 곁에 있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그날의 런던은
충분히,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