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런던 여행의 시작, 엄마와 2층 빨간 버스

한국에서 묻던 질문, 영국에서 이뤄진 대답

by 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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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2층 버스, 엄마의 첫 런던

한국에서 여행 일정을 짜던 어느 밤,
나는 엄마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영국에 가면… 뭐 하고 싶어?”

엄마는 잠시 망설이다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빨간 2층 버스 타보고 싶어.
그거 타고, 런던 한 바퀴 돌아보고 싶어.”


그 말을 듣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엄마의 눈동자 안에는 어린아이 같은 설렘이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 소풍을 기다리던 아이처럼,
그 눈빛엔 잊고 지냈던 기쁨이 서려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첫 런던은,
그 바람을 따라 버스 11번에서 시작되었다.


숙소 앞 정류장에서 도착한 빨간 2층 버스.
엄마는 계단을 오르며 살짝 숨을 골랐다.

나는 한 발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가파른 계단이었지만,
엄마의 걸음은 조심스럽고도 단단했다.

마치 이 순간을 오래 기다려온 사람처럼.



우리는 2층 창가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창밖으로는 이국의 아침이 조용히 흘러갔다.
붉은 벽돌 건물, 검은 택시,
모서리가 둥근 우체통,
아직 채 깨어나지 않은 런던의 거리.



엄마는 말을 아꼈다.
대신 창문 너머를 오래 바라보며
가끔 손끝으로 유리를 짚고는 조용히 웃었다.


나는 그 순간 알게 되었다.
어떤 바람은 말 대신 눈으로 전해지고,
곁에 있는 사람은 그저 조용히 응답하면 된다는 걸.



누군가의 꿈꾸던 장면 한가운데에
함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울컥한 일이라는 걸.



그날 아침,
런던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오래된 바람이
조용히 실현되고 있는,
작고 반짝이는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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