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척을 하며 살아온 나, 그 모든 순간 뒤에 엄마가 있었다.
나는 강인한 사람인 줄 알았다.
한없이 강하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왜냐하면,
일곱 살 때부터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집안 사정을 알기에,
그 어린 시절,
미술학원을 보내달라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어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고,
상과 문화상품권을 들고 집에 오자
부모님은 아이처럼 기뻐하셨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열심히 상을 타왔다.
글짓기, 그림, 각종 대회.
상품권을 가져다드릴 수 있다는 그 이유 하나로
몇 년을 악착같이 달렸다.
고등학생이 되어,
며칠을 고민한 끝에 처음으로 엄마께
미술학원을 보내달라고 말씀드렸다.
다행히 허락을 받았고 학원을 다녔다.
하지만 예술고 아이들과 일반고인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다.
스승의 날마다 한우를 건네는 부모들 사이에서
나는 조용히, 아무 말 없이
‘그냥 기분 탓이겠지’ 하며 2년을 다녔다.
입시 두 달 전엔 300만 원이 넘는 비용이 들었다.
말하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죄송한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
스무 살이 되자
더 이상 부모님께 손을 뻗을 수 없었다.
죄송해서.
그때부터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학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으로, 작업실로.
주말에는 일하고, 남는 시간에는 공부를 하며
매일을 바쁘게 살아냈다.
하고싶은 공부가 생기며
서울로 대학원을 진학했을 땐
자취할 형편이 되지 않아
최대한 시간표를 몰았고
저가 항공 비행기로 통학을 했다.
왕복 몇 시간의 시간을 감내하며,
2년 반을 그렇게 지냈다.
그리고 회사에 취직하고 몇달 뒤,
우리는 처음으로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때 모은 돈을 털어
TV, 냉장고, 건조기, 소파, 식탁 등
모든 가전을 엄마에게 선물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내가 강인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모든 시간,
나보다 더 단단했던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는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셨다.
어릴 적부터 내가 그림을 좋아하고
잘 그린다는 걸.
그래서 그 어려운 시절
고등학생이 된 내게 학원을 보내주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하셨고,
말없이 나를 지지해주셨다.
왕복 두 시간 거리의 학원을 매일 같이 다닐 때도,
시간이 나면 함께 동행해주셨다.
대학을 졸업하고 계약직 일을 마쳤을 때,
엄마는 조용히 용돈을 주며 말씀하셨다.
"우리 딸 믿어.
우리 딸이 가는 길이 정답이야.
직업에도 인연이 있어.
너를 알아주는 곳이 올 거야."
나는 강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저 강한 척,
어른인 척하며 살아가는
어린아이였을 뿐이었다.
지금은 안다.
진짜 강인했던 사람은
늘 곁에서 묵묵히 나를 바라보던 부모님이었다는 걸.
살다 보면 누구나 자신이 강하다고 믿는다.
그 믿음으로 하루를 버티기도 하고.
하지만,
정작 우리를 지켜낸 건
우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